#19 로데의 증언과 데오빌로의 불안 재해석

내러티매진 Narratimagine-사도들의 길, 우리의 걸음

by 푸른킴

새벽, 아직 빛이 어둠을 허용하고 있을 즈음, 로데는 조금 흥분된 마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사실 어제 아침 다락방에 전체 모임이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는데, 로데는 모처럼 전체 모임이라 약간 흥분됐습니다. 디스마스도 자리를 비운 탓에 자신이라도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사람이 많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또 사람이 많을수록 양식도 많아졌습니다. 로데는 흥을 돋우는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사람 많고 먹을거리 풍성한 그 모임은 자신이 안식하는 시공간이었습니다. 언제나 이 모임을 기다렸고, 기대했습니다.


저녁, 평소보다 일찍 일을 마쳤습니다. 서둘러 나갔습니다. 디스마스는 집을 떠나기 전 혹시 자신이 오더라도 늦을 것 같다 했지만, 올 수 없는 상황이 더 확실해진 것 같았습니다. 어둑한 길을 따라 걸어 혼자 다락방에 도착했습니다. 곧이어 일을 마친 다른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모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방으로 올라와 평소보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기대와 달라 어색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밤길을 걸어 올라오는 사람 구경이 은근히 재밌다는 것을 요즘에서야 알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 속에 함께 있는 것이 좋아졌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자신에게 여러 사람이 함께 있고, 그들과 수다를 떨고 웃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이 공간은 그렇게 사람들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들 틈에 낯익은 사람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디스마스 인가 하고 자세히 봤지만, 아니었습니다. 그가 올 리가 없습니다. 그럼 누구지? 아, 데오빌로, 주인님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로? 혹시 자신을 찾으러 온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훅 밀려들었습니다. 완벽한 상태를 좋아하는 저분이 내가 없어진 걸 알고 불안해진 걸까? 디스마스가 없어서 그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이 모임에 오는 것만큼은 늘 아무 말 없이 허용해 주었습니다. 물론 오래전에는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어서 거의 체벌 직전이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저렇게 찾아 나선 것을 보면, 혹시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될까 마음이 힘들어졌습니다. 다행히 그는 아직 로데를 못 본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흘렀습니다. 놀랍게 그가 사람들 한복판에 앉았습니다. 처음이어서 조심스럽게, 하지만 과감하게 그 자리까지 나온 것이 그답다 싶었습니다.


거의 문이 닫힐 무렵, 누군가 급하게 문을 두드렸고, 문이 열리자 또 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들어왔습니다. 디스마스였습니다. 속으로 환호했습니다. 다행히 집에 일찍 오게 된 모양입니다. ‘주인님이 엄청나게 좋아하셨겠군.’ 로데 자신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궁금해졌습니다. 왜 주인과 같이 안 오고 따로 왔을까? 물으나 마나 한 질문입니다. 다른 일은 같이해도 여기까지 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디스마스보다 먼저 와있는 걸 보면, 주인에게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중간 즈음, 사람들 틈에 앉았습니다.


모임이 절정에 이를 즈음, 로데는 맨 앞자리로 나가 다시 자리를 잡았습니다. 선생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의 걸걸한 목소리는 어디서나 시원하게 다 들을 수 있습니다. 그가 말을 시작하려다가 한 사람을 지목했습니다. 바로 데오빌로 로데의 주인님이었습니다. 이미 한두 번 주인과 로데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로데는 가볍게 미소로 답했습니다. 마음은 조금 울퉁불퉁해졌지만, 이 공간의 매력은 누구와도 웃으며 인사를 나눌 수 있다고 다독였습니다. 상황은 그렇게 잘 끝났습니다. 베드로의 말에 따라 오늘 모인 안건도 잘 해결되었습니다. 로데는 모든 정리를 마치고 밤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얼핏 보니, 주인님의 방에 불이 켜져 있습니다.


불을 끄려고 데오빌로의 방에 올라왔습니다. 책상 위에 주인님이 읽던 편지인 듯, 펼쳐진 채로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뭔 편지를 이렇게까지 열심히 읽나 하며 지나가려는 데 한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다락방, 사건?’


사건이라고? 우리는 그저 말을 하고 우리가 배운 대로 했을 뿐인데, 사건이라고 이해하셨나? 조금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아침이 되기 전까지 좀 기다려야 했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도 눈을 좀 붙여야 했으니 말입니다.




늦은 아침, 데오빌로는 피로가 덜 풀린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자다 깨다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다락방 사건’에 대한 궁금증에 잠을 온전히 잘 수도 없었습니다. 꿈을 몇 번이나 꾸었는지, 분명 어디를 다녀온 것 같기는 한데,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시종 로데에 차를 하나 부탁한다고 말을 던지고는 서재로 들어왔습니다. 잠시 후 로데가 들어섰습니다. 평소에는 따뜻한 차를 올려두고서는 이내 문 쪽으로 서둘러 나갔는데, 오늘은 나란히 마치 함께 서 있는 것처럼 책상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데오빌로는 속으로 ‘무슨 일이지?’했지만, 말을 그냥 삼켰습니다. 로데가 가볍게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주인님! 어제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반가웠습니다. 그 자리에서 뵐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저는 너무 자랑스러웠고요.”

“아니 내가 어제 어딜 갔다는 거야? 나 여기 있었는데?”

“2층 다락방에 오셨잖아요. 저녁 무렵에”

“내가?”

“네~, 나중에 디스마스도 와주셔서, 더 놀랐지만, 이렇게 주인님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저는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로데는 답을 듣기도 전에 인사를 마치고 나가려 했습니다. 데오빌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로데는 늘 다니는 곳이니 누군가와 자신을 착각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보다 혹시 그 다락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잠깐, 로데~. 어제저녁 다락방에 다녀왔다고 했지? 근데, 혹시, 빵이 그렇게 많은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 그리고 그 우람한 사람이 뭐라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아 사람을 한 명 더 뽑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다음에 어떻게 되었지?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


“주인님, 방금 다락방에 가셨는지 모른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그렇게 소상하게 그 장면들을 기억하실까요? 하하”


순간 데오빌로는 자신도 당황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그 말들이 바로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모호했던 말, 장면, 사람들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로데를 보자마자 그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자신이 정말 어제저녁에 그곳에 다녀온 것 같기도 했기에, 더는 변명하듯 설명하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어제저녁 그 사건, 다락방 사건? 그걸 좀 설명해줘 봐”


“주인님, 사건이라고 하셔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저에게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고, 어쩌면 그것은 사건인데 제가 너무 평범하게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하는 반성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데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이날 모인 목적은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의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들은 선생 예수가 승천하시기 전에 40일간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때 예수가 예루살렘 떠나지 말고, 성령 세례를 기다리고 했고, 그 세례가 임하면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전진하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데오빌로는 이 말이 너무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하려다 좀 더 듣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다락방에 머물렀고, 그 틈에 너도나도 그 일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모였던 것입니다. 물론 평소 같으면 가까이하기에 먼 사도들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져서 누구나 그들과 함께할 수 있고, 거의 대등한 위치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주인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제자들의 수였습니다. 아실지 모르지만, 그들은 도데카라는 별칭이 있었습니다. 12명이라는 말입니다. 12명이 한 명처럼 다닌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그의 도데카’였던 것입니다. 자부심은 물론이고, 권위가 묻어나는 말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기도 했습니다. 그 틀을 깰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중 한 명이 불의의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선생을 배신한 것에 스스로 고통당하며 결국 자살했습니다. 12명에 1명의 결핍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결핍이 불안했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권위의 상실은 예수의 부재보다도 힘겨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불안했습니다. 그들은 1명의 결핍에 그들을 둘러싼 모든 사람의 격려와 응원, 지지를 잊어버린 듯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권위를 되찾고, 전통을 회복하며, 질서를 유지하자는 의도에서 1명을 보궐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럼 왜 베드로가 그 제안을 할 수 있었지?
12명이 완전하다는 것을 선생이 늘 말했나?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근거가 있었나?”

“사실 베드로는 보기에는 전형적인 어부이면서도 틀을 존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전통과 권위가 흔들리는 것에 꽤 불안해했습니다. 자신이 수제자로 불린 이유가 무엇인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그 치밀한, 틀을 지켜내는 보수적인 힘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날도 그는 미리 시편 69편과 109편에서 그 근거를 찾아왔습니다. 물론 유다 죽음의 이유도 명확히 정리해 두었습니다. 물론 어제는 그 말을 길게 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의 말 중에서 아주 의미 있는 말이 바로 ‘우리의 수 가운데’라는 것입니다. 이 수가 바로 12입니다. 그는 이 ‘12’라는 말이 선생 예수의 입에서 나온 것을 들었기에 더욱 확신했습니다. 12에서 빠진 1은 완전한 결핍이고, 그것은 사도들 전체의 불안감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채워야 했습니다. 결핍은 채워야 한다는 것이 전통과 전례를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이라는 것을 저 같은 사람도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인님은 더 하시겠죠?”


그래서 어제저녁 그 사도의 보궐을 잘 마쳤다고 했습니다. 문득 사람들이 내세운 사도 후보의 자격이 생경했습니다. ‘처음부터 선생을 따라다닌 사람,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 너무 엄격한 조건이었습니다. 과연 후보가 있을까 싶었는데, 이미 두 명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바로 추천되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결국, 한 명이 채워졌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선출 결과입니다.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요셉’(그의 별명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이라는 유명한 사람을 지지한 것 같았는데 최종 선출은 겨우 이름만 알려진 ‘맛디아’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데오빌로가 신기하게 여긴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선출 직전에 베드로가 ‘기도’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여러 사람의 마음을 통찰하시는 주, 당신이여”라는 말에 놀랐습니다. ‘마음을 알다니? 어떻게?’ 돌이켜보면 자신은 한 번도 누구에게 마음을 내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기도한 뒤에, 그 결과는 전혀 예측 못 한 사람이 선출되었다는 것에 베드로보다 데오빌로의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지병같이 자신을 습격하는 ‘불안’에 대해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소득이 있다면, '불안'에 대해 조금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기도해도 불안한 결과라면, 불안은 도대체 인간에게 무엇일까? 혼자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렇다면 저 ‘기도’는 신에게 그들의 요구를 성취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던 말인가? 그들의 간절함이 그들의 기대를 관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사실, 나의 삶이 어렵고 힘겨울 때 노래가 나를 위로해 줄 때가 많았다. 그것처럼 기도 역시 어떤 돌파구를 열어주는 도구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들에게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니란 말인가? 분명 그들은 그들의 결핍이 불안했을 것이고, 그것을 완전하게 보완되도록 기대하는 바가 있었던 것 같은데,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잖아. 그럼 그 새롭게 뽑힌 이가 그들의 결핍을 완벽하게 채워주었을까? 섭섭하다는 것도 결핍이라면 결핍인데 말이야.

반대로 베드로의 기도는 겉으로는 아니더라도 속으로는 자기 사심을 채우려 했던 것은 아닐까? 유스도, 요셉의 선출되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 말이야. 은근히 그들도 서로를 차별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렇다면 이 기도는 두 가지 사실이 명쾌해지네. 첫째, 불안 해소를 위한 요구가 아니다. 둘째, 기도하는 자에게 완벽한 응답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불안은 여전하다는 것인데, 그런데도 그들이 불안하다고 말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치 불안한 상태는 당연하고, 그것에 신의 의지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어떤 장치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불안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고, 그 정도를 자신이 조절해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불안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불안을 완전히 떨쳐 낼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불안은 불편한 상태가 아니라, 안전한 삶으로 가는 필수 준비물일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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