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걷기, 공간의 해체(2)

해체의 상징(1), 광장

by 푸른킴

길 걷기에 담긴 철학의 단서, 해체

나를 안식으로부터 안식으로 해방한 길 걷기는 ‘해체’라는 개념으로 철학의 단서를 제공했다. 철학 안에서 흩어놓음, 분해함이라는 해체(deconstruction)는 부서져 사라짐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재해석, 비판적 성찰’을 통한 의미의 창발을 함의한다. 해체 자체가 뺄셈이며 덧셈을 함의하고, 버림과 취함, 분리와 종합을 동시에 포괄하며, 벗어남과 돌아옴을 아우른다. 따라서 해체는 분열과 조화이다. 건강검진을 위해 옛 옷을 ‘벗고,’ 혹시라도 발견된 질병을 치유한 뒤 새로운 옷을 ‘입는’ 행위처럼 보인다.


이런 사유는 나의 길 걷기에서 수시로 경험되었다. 갇힌 공간에서 나와 열린 길 공간으로 옮기면서 이제 나는 주어진 규율보다 나 스스로 만든 나의 규율을 따라야 했다. 50분 걷고, 10분 쉬면서 몸이 오랫동안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자크 데리다의 탈구축에 가깝다. 또한, 정해진 예전의 순서는 무의미해졌다. 반면에 즉흥적 예전에 수없이 끼어들었다. 마치 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예전의 텍스트 같았다.

움베르토 에코가 말한 ‘도시는 하나의 텍스트다.’라는 주장처럼 길은 곧 내가 진행하는 예전의 무한한 콘텍스트였다. 길을 걷다 보면, 올라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그 길은 내려서는 순간이 있다. 산의 정상은 곧 하산을 의미하고, 평지는 어느 순간 오르막길에 직면한다. 숨이 빠지는 길을 걷다 이내 숨이 차오르는 상황에 직면한다. 기운이 빠지다 기운이 차오른다. 이 사이에 잠깐 쉼은 아주 미미하게 보이지만, 내 몸의 질서를 회복하는 핵심 장치다. 어쩌면 장자의 ‘무’의 상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와 (+) 사이를 균형 있게 이어주는 0의 기능 말이다. 이런 경험은 내가 닫힌 공간에서는 크게 경험하지 못한 상태였다. 안식마저도 피곤해지는 낭패를 겪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길 공간에서 안식이 해체라는 것은 마치 ‘있음의 없음’, ‘없음의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아도 다시 새롭게 전진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안식이 철학적 단서를 갖는 것은 길 공간에서 누리는 안식이 여러 철학자가 고민했던 그 해체의 개념과 충분히 연동할 수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길 걷기에서 되찾은 안식의 공간은 곧 해체의 공간이다. 그곳에서는 멈춤과 전진이 유기적으로 기능하고 자발적 규율과 자율적 행위 사이에 평형이 이뤄진다. 절망과 희망 사이를 균형 맞춰주는 무게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컨대 안식월의 길 걷기에서 나는 안식의 철학적 개념인 ‘해체’을 재정의할 수 있었다. 해체는 ‘허물어 바닥부터 새롭게 재건하는 창조적 낭비다.’ 이런 재개념화 된 해체는 자기 성찰이자 동시에 자기 재건에 수렴한다. 생명의 면모를 빌리자면, 태어남이 곧 죽어감이지만, 그 죽음을 향한 여정이 곧 새로운 자아의 창조인 것과 같다. 삶과 죽음의 동시성이다. 그러므로 내가 안식월에 길 공간에서 끌어올린 ‘해체’는 ‘예배 공간’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그 ‘닫힌 공간’의 벽을 허물면 동시에 ‘열린 공간’이 창발 한다는 확신의 프락시스다. 광장은 이런 해체의 의미를 일깨우기에 적절한 공간이다. 내가 해체의 길 걷기를 광장과 숲으로 이어간 이유다.

방향 없이 방향을 보여주는 해체의 상징(1),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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