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윤동주 연구-실존의식과 서지자료를 중심으로』

-그날처럼 오늘도 바람이 분다, 절망과 더불어 실존하는 용기

by 푸른킴

실존과 저항의 기록, 그의 시는 곧 순례였다

시대 넘어 울리는 탄원의 노래가 절실한 때


갈림길에 서 있는 이들을 위한 윤동주의 시 쓰기,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나는 가끔, 현해탄의 배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을 윤동주를 상상한다. ‘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길은 여러 갈래다. 갈라져 있다는 것은 선택의 폭이 넓다는 뜻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어떤 것도 쉽게 선택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그 많은 길은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는 것과 같다. 사실, 갈림길에 들어서면 선택의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길로 곧장 가는 것이 지혜롭다. 나의 목적지가 어느 길의 끝에 있는지 확신이 서면 그 길로 과감히 들어서는 것이다. 주어진 길의 끝을 안다면 선택의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목적지를 아직 모른 채 갈림길에 직면한다 해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과감히 어느 길 하나를 선택하고 그 길로 끝까지 가보려는 용기를 스스로 일깨우면 된다. 그 모험의 길을 선택한 뒤에는 지체 없이 두 발로 그 길 속으로 걸어가면 된다. 길을 잃어버렸다 해서 불안해할 필요 없다. 그 길 어딘가에는 이정표가 있으니 말이다. 그 길의 이정표는 다름 아닌 내가 쓰는 나의 시(詩)다. 이 길과 저 길 중에서 어느 길이 지금 나의 가야 할 길인지를 나의 시가 알려줄 것이다. 가지 않은 길에서 절망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겠지만, 그 이정표를 따라 걷는 나의 길은 오히려 새로운 길이리라.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가도 나를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시인 윤동주는 ‘왜’ 시를 썼을까? 수많은 삶의 방식에서 그는 왜 ‘시(詩)’를 선택했을까? 왜 스스로, 험난한 시의 길을 걸으며, 자기 삶을 ‘언어(言)의 전당(寺)’에 가둬버렸을까? 그의 요절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어떻게 오늘날까지 끝내 살아있을까? 그의 시는 어떤 힘이 있어서 이 시대의 슬픔을 겨우 떠받치며 방황하는 나의 삶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을까? 그는 자기 습작 노트 표지에 남겨둔 “藝術은길고人生은짭다”가 빈말이 아닐 수 있음을 스스로 입증하려 했을까? 이렇게 그의 시를 읽는 ‘오늘도 바람이 별을 스치’며 나에게 묻는다.

김형태의 『윤동주 연구-실존의식과 서지자료를 중심으로』는 이런 나의 질문에 시의적절하게 답해준 저작이다. 무엇보다 이 연구서는 윤동주가 시를 선택한 이유, 목적을 추론하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뿐 아니다. 윤동주는 시를 통해 시대에 저항하려는 의지만 담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또한, 이 시인이 심오한 종교적 고백에 함몰되지도 않았다는 것도 밝혀준다. 오히려 이 시인은 굴곡진 시대를 버텨내야 할 ‘자신(self)을 위로하고’, ‘자신이 서 있는 이해 불가한 세계를 시의 언어로 조망’하려 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자연스럽게 나는 이 연구서를 탐독하면서, 윤동주에게 시는 가지 않은 길, 주어진 길을 부끄럽지 않게 걸어가도록 북돋는 위로이며, 자기를 찾아가는 길 위에 놓인 ‘이정표’였다는 것을 확신했다. 김형태는 말하기를, “윤동주 시의 보편적 가치는 저항성이나 문학사적 위치보다는 그의 시가 지닌 정신적 깊이, 즉 자기완성을 향한 치열한 실존의식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종교, 철학적 사유에 있다.(345면)” 이처럼 그는 시를 통해 자기가 걷는 그 길을 올바르게 선택했고, 그 선택을 끝까지 버텨냈다는 평이다. 그러나 그는 시의 궁극적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젊은 시절에 그 삶이 꺾여버렸다. 돌아보면, 그렇게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그는 시를 통해 ‘두 발 굳게 딛고 서 있는 담대한 용기’를 스스로 일깨워준다. 그는 악의 시대에 물들지 않도록 ‘주어진 길’을 걸으며 자신을 굳게 지켜낸 어떤 고요한 순례자로 여전히 남아있다.


본 연구의 성과: 윤동주 시를 구성하는 새로운 요소 세 가지

이 책은 전체 2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윤동주 시를 연구한 저자의 학위논문(2015년)과 그 이후 연구한 논문들을 덧붙였다. 2부는 윤동주 사후 그의 작품들이 수록된 여러 자료를 고증하면서 선행연구들의 주장을 재조명하도록 제안한다. 이 책은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저자의 탁월한 문장력과 함께 저자의 윤동주 시 연구 방법과 그 기본 논지가 선명하기에 윤동주의 시의 현대적 가치를 새롭게 토론해 볼 만하다.


간단히 저자의 연구 방법론과 서술적 특징을 고려하여 그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방법론은 두 가지로 파악할 수 있다. 하나는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A. Kierkegaard)의 실존의 삼 단계를 시 분석에 활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윤동주의 시가 심미적 실존-윤리적 실존-종교적 실존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분석했다. 다른 하나는 주석(exegesis) 방법론이다. 윤동주의 시를 연대기를 따라 분류하고 각 시를 시대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고려하여 상호문맥적(inter-contextually)으로 풀이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윤동주의 시를 인단 연대기적으로 재편한다. 이어 그 실증론적 의의를 분석한다. 끝으로 시의 내적 의미를 분석한다.


이런 방법론의 적용 결과 선행연구들과 본 연구의 차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키에르케고르와 윤동주의 관련성이 윤동주 시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에 깊이, 발전적으로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윤동주 시와 민족 종교적 관점이 융합되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적 기독교와 관계가 긴밀하다. 이런 차이는 이 연구가 윤동주의 시를 종교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당대의 사상적 흐름과의 관련성 속에서 그 정신사적 가치“(33면)를 드러내려 했다는 의도를 효과적으로 입증하는 적절한 결과를 도출했음을 의미한다. 한편, 본 연구의 서술적 특징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윤동주의 실존의식이 시의 저술 시기에 따라 발전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포착한다. 또한, 앞서 본 대로, 이런 시인의 의식(意識)이 당대 정치, 종교, 사회사상 흐름과 긴밀한 관계 속에 놓인 종교 철학적 사유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논증했다. 특히 유교 전통과 민족주의적 성향이 조화된 조선적 기독교와 관계 등을 적극적으로 문헌적으로 고찰했다(제3장). 이를 토대로 본 연구는 윤동주의 시 전체에서 이른바 서사적 전진(Narrative progress)을 찾아 최대한 재구성했다. 이런 서사적 진보가 시인의 실존의식 발전과 긴밀하다. 즉 윤동주의 시는 연대기적, 사상적으로 일관된 서사로서 시인의 절망이 심화하는 과정과 자기 ‘존재에의 용기’를 고양하는 발전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 발전은 초기 시의 심리적 실존단계, 중기 시(동시를 포함하여)의 윤리적 실존단계, 절필기를 지나, 후기 시의 종교적 실존 단계로 진화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윤동주의 이런 시작(詩作)은 다분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윤동주의 첨삭 노력은 그 예라 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 자기 시어의 수정과 반복적 첨삭, 시작 날짜를 적어두었다. 이로써 시의 내외적 완성도와 시의 배경에 대한 오해를 최소화했다. 다른 면에서 이런 노력은 시인이 자기 내면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는 시어를 찾아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를 통해 자기 시 안에 자기 시대의 종교와 철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자신의 정신사적 성과가 담겨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본 연구가 이룬 성과는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이는 윤동주의 시를 구축하는 세 가지 정신사적 흐름이기도 하다. 즉, 종교적(유신론적) 실존, 조선적 기독교, 고난의 신정론 등이다. 이 세 요소는 시의 창작 연대를 따라 긴밀하게 복합되어 시에 반영되었다. 첫째, 종교적 실존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 삼 단계를 따른 것이다. 윤동주의 시에는 한 인간의 절망적 실존에서 시작하여 끝내 지향해야 할 실존적 존재 완성의 단계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신 앞에 홀로 서는 ‘단독자(den Enkelte)’”(36면)를 실현하는 것에 있다. 둘째, 윤동주의 시 안에는 조선적 기독교와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1930년대 조선의 문화와 정신을 자주적 학문 대상으로 삼은 조선학의 발전에 힘입어 당대 기독교의 자주성을 회복하려는 운동이었다. “서구 근대의 보편주의와 정교이원론 속에서 민족적 주체성을 상실한 것에 대한 반향으로 기독교 안에 ‘조선적 가치’와 ‘민족적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것이다(38~39). 이른바 ‘조선산 기독교’의 발흥이다. 셋째, ‘고난의 신정론’이다. 이 사상은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계시된 ‘신(神)’을, 전통적 이해와 달리,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고통당하는 사랑의 신(神)으로 이해한 것에 기반한다. 이는 윤동주의 시가 궁극적으로 신학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동주는 그의 시 안에서 이런 사고를 짙게 반영한다. 즉, “사랑 안에서 고통당하는 신을 따라 타자의 고난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고통당하는 민중에게 메시아적 의미를 부여하고 제국주의적 폭력에 저항하며 역사를 변혁하고자 했다.”(40면) 이런 점에서 윤동주의 저항은 이 땅의 역사에 스스로 참여하는 실존적 신을 뒤따르는 시인의 고통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윤동주 시를 규정하는 세 가지 정신적 요소를 규명하면서 김형태는 자신이 천착한 전제도 분명하게 밝힌다. “윤동주 시의 ‘실존의식’은 본질적으로 종교적 사유를 내포하고 있다.”(17면)라는 점이다. 이런 전제는 그의 연구의 의도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즉, “그의 시에 나타나는 치열한 자기 인식과 자기 형성의 실존적 고뇌, 잃어가는 민족 전통을 복원하고 재구축하고자 하는 의지, 타자의 고통에 대한 슬픔과 그 고통에 참여하며 현실을 변혁하고자 하는 열정 등”의 정신적 가치를 우리 시대에 복원해 보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시도는 효과적으로 달성했다고 보인다.

동시(童詩)의 새로운 의의, 윤리적 실존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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