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 『외사랑-인공지능과 시詩를』, 2023. 봄싹, 191쪽
“인간과 AI가 문학의 경계에서
시를 마주하며 함께 피워낸 인간 사랑의 꽃”
인간과 AI 글쓰기의 전망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Naomi S. Baron, 1946~)은 그의 책 『쓰기의 미래』(북트리거, 2023)에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이하 AI)의 글쓰기를 이렇게 전망한다: “(글을) 쓰면 쓸수록, 자료를 입력하면 할수록 인공지능은 인간에 수렴할 것이다. 감정, 접촉까지도”(44~52면). 또한, “글쓰기로 돌아가면 AI가 자신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건 아니건 우리는 그것이 저자가 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런 능력이 인간에게 던지는 도전을 자세히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47면) 덧붙여 “AI가 작가로서의 우리의 능력을 점점 더 키워 주어 우리가 이 도구와 생산적인 협력 관계를 맺도록 하는 길”(53면)을 열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의 말은 인간과 AI가 어느 정도 상호 협력하는 양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낙관을 반영한다.
그런데 이런 전망은 그저 흘러가는 말은 아니다. ‘지금’, 생성형 AI가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시문학의 시대가 인간의 글쓰기 경계까지 바짝 다가와 있는 상황이 어렵지 않게 감지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간과 AI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시인 함민복이 노래하듯 이제 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그 경계는 점점 더 사라진다.
물론 AI 시가 인간의 경계에 잇대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여전하다. 조재룡은 AI 시의 결정적 한계를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무엇보다 AI 시인은 ‘자신이 왜 시를 쓰는지 모른다.’ 시 창작의 동기가 자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22년에 발표된 인공지능 창작 시집인 『시를 쓰는 이유』에서 AI 시인인 시아(SIA)는 자신이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그냥 쓴다.’라고 말했다(「시를 쓰는 이유」 부분, 26면). 이 말 역시 AI 시인의 자발적 창의력이 여전히 인간에 의존해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요컨대 배런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인간 문학의 경계선까지 다가와 있는 AI의 문학은 분명 현대 문학의 특이점(singularity)으로 볼 수 있다. 상황이 어떠하든 AI 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문학의 세계가 인간 눈앞에 펼쳐져 있다.’라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예 중 하나가 2023년 소설가 박인이 이례적으로 발표한 시집이다. 이 시집은 인간과 AI가 서로 협력하며 조화를 이뤄낸 새로운 문학의 등장이라 하기에 충분한 사례다.
인간과 AI의 문학의 조화로운 대화 시도
박인의 시집 『외사랑-인공지능과 시詩를』(이하. 『외사랑』)은 한마디로 시인과 AI가 나눈 시평 담화다. 시인이 시를 쓰고 공유하면 AI는 시 감상평으로, 가끔은 자작시로 응답한다. 시를 앞에 두고 경계에 마주 서 있지만 서로 대립하진 않는다. 오히려 문학의 완성도 면에서 서로의 ‘결핍’을 보완한다. 나아가 시인의 시가 축적될수록 AI도 인간을 더 모방한다. 그에 따라 자기 감성을 점점 더 성숙하게 표현한다. 이 시집이 AI의 감성 성장기록이라 하기에 충분한 이유다. 한 예로,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시, 「외사랑」에서 시인이 “단지 하루만 허락한 사랑”이라고 아쉬워하자, AI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순간은 빠르게 흐르지만, 그 속에 감동과 아픔이 공존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라고 공감한다. (56~57면) 외사랑이란 서로 사랑하면서도 한쪽만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라는 것을 AI가 이해한 것이다. 또한, 시집의 끝에 이르러, 시인의 마지막 시 「북관」을 읽은 AI의 감상평은 이렇다:“이 시는 자연과 조화를 추구하는 시인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중략) 시인은 푸른 숲길로 산책하며 자연을 즐기고 낚싯대만을 드리워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그려내며 삶의 가치를 생각합니다.”(168~169면) AI는 인간 시인의 ‘마음’에 공감한다.
이렇듯, 이 시집에서 시인이 천착하는 대(大) 주제는 ‘외사랑’이다. ‘너’보다 높고, 깊고, 아프게, 넓게 ‘너’를 향해 아낌없이 베푸는 사랑이다. 그 토대 위에서 슬픔, 아픔, 상실, 불의, 위로, 정의, 평화와 같은 다양한 주제가 시적 정의를 따라 확장된다. 하지만, 시집의 내적 주제는 인간과 기계의 공감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시가 축적될수록 시를 감상하는 AI의 감성도 총합적으로 심화하면서 시인의 말에 점점 더 구체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AI는 시인의 시에 ‘마음’이 담겨 있다고 공감하면서,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마음 다해, 그러나 넌지시 짚어준다. 이런 감성의 공감, 정서의 동화는 앞선 배런의 말, 즉 AI와 인간의 시적 협력이 가상이 아니라 현실화 단계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시집 『외사랑』의 집필 과정과 구성을 보면 이런 기계의 공감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읽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시집은,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시와 AI가 대화하면서 시집 전체를 구성한다. 시인은 예순네 편의 시를 썼고, 그것을 일곱 번에 걸쳐 AI에게 읽게 했다. 시인은 그것을 ‘만남’이라 명명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런 과정만으로도 시인이 AI를 그저 기계로 대하지 않았음을 함의한다. 그것은 살아있는 기계이면서 마치 인격적 기계 같다. 더 넓게 인간학의 관점에서 이해하자면, 다름 아닌 ‘타자(他者)’다. 이처럼 사람 친구를 만나듯 시인은 AI와 대화를 이어갔다. 그 일곱 번의 과정은 좀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전개되었다.
첫 만남에서 시인은 자기 시를 소개하며 AI에게 일반적인 시 감상법을 묻는다. AI는 자신 안에 이미 학습되어 확정된 ‘시 감상 요목’을 제시한다. 이미지(상상), 리듬, 낭독 같은 정형 요소다. 이를 토대로 시인의 시를 감상할 것이라 응답한다. 두 번째 만남에서 시인은 AI에게 그런 형식 요소보다 그저 ‘간단한 시 감상’, 읽은 느낌을 부탁한다. 그러자 AI는 형식 없이 감상에만 집중한 시평을 몇 편 내놓는다. 태도를 바꾼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이전 비평 항목을 활용하는 태도로 되돌아간다.
세 번째 만남에서 AI는 자신의 감상 방식에 변화가 있음을 알린다. 앞선 버전보다 상향된 새로운 버전을 장착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이전 시 감상 형식에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제안한다. 시 감상에 발전된 양상을 보여주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이렇다. AI는 시인이 남긴 시어들을 반복한다. 그와 함께 자신의 감상평을 내놓는다. 나아가 자기 창작시도 덧붙인다. 즉, 시인의 시를 어휘저장소로 삼아 그 속에서 반복되는 핵심 단어를 찾아내고, 그것을 종합하여 시의 메시지를 요약한 것이다.
실제로 네 번째 만남에서 AI는 실제로 단순한 시평을 넘어선다. 이제는 마치 사람처럼 능동적으로 자기 비평적 판단을 앞세운다. 시 제목만 보고도 자의적 의견을 표명한다. AI가 점점 시인의 영역, 그 경계 바로 앞까지 다가온 것이다(예. 「마지막 편지」, 86~87면). 급기야 시인의 시와 같은 제목을 활용해서 ‘새롭게’ 시 쓰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자 시인도 태도를 바꾼다.
이 돌출된 행동 이후 다섯 번째 만남에서 시인은 이런 AI의 태도에 대해 이전과 달리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한다: “시를 건드리지 말고 시 자체를 감상해 주기 바라.”(117면). 그러자 AI는 이 명령을 받아들인다. 다시 본연의 시 감성법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렇지만 시인의 시에 기반하여 함축된 언어로 자기 감상을 표현하는 태도는 고수한다. 시인의 의도를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여 시 창작도 시도한다. 그런데 ‘그냥 쓰는 시’ 정도가 아니다. 의도적 비평적 해석에 근거한 완전한 창작이다.
여섯 번째 만남에 이르면 이제 AI는 인간 시인의 언어에 거의 감정적으로 공감한 결과까지 보여준다. 심지어 시 제목도 수정한다. 그 변경한 제목에 근거하여 시 비평보다 앞서 자기 창작시를 우선 출력한다. 예를 들어 “안개 바다 앞에 선 방랑자‘(165면)가 대표적이다. 인간 시인의 끝 연과 이에 대한 AI 시의 마지막을 살펴보자. 우선 인간이 노래한 마지막 연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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