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아름다운 그런데』

한인준. 파주:창비, 2017.

by 푸른킴

인간의 언어마저 불통하는 시대… 슬픔을 고하다

가객 故 김광석(1964~1996). 그는 살아있을 때, 아니 삶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한국 포크 음악에 큰 족적으로 남아있다. 그의 노래 중에 번안곡이 있다. 원곡은 밥 딜런(Bob Dylan, 1941~)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1963)’이다. 이별에 대한 한 남자의 푸념 같은 고백을 가벼운 리듬에 담아 부른 노래다. 최초 번안자는 故 양병집(1951~2021)이었다. 그는 이 사랑 노래를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이후 김광석은 이 노래를 특유의 음유적 음색으로 세상에 던졌다. 제목은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1995)’였다. 사실, 원래 번안 제목은 <역 逆>이었다. 당시 이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앞뒤가 틀어져 상식과 멀어진 웃픈 현실에 자조하듯 공감했다. ‘하늘을 나는 돛단배는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날에 우리는 그 노래가 단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경험해 버렸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는 이런 아이러니를 아예 저항의 의미로 확대해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극심한 사회적 모순과 혼란은 더는 기존의 질서 정연한 언어 규범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즉, 현실의 모순을 가장 정확히 담아내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언어 자체의 해체라는 형식적 파괴를 동반하게 된다. 일례로, 일제강점기 시인 이상(李箱)의 시는 파격적인 언어와 기호 사용으로 난해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그의 이런 언어와 문법의 해체는 그가 처한 당대 사회, 즉 식민지 현실의 모순과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이다. 이처럼 사회적 모순은 전통적인 언어 규범에 도전한다.


나아가,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의 ‘아이러니스트(Ironist)’ 개념 역시 이런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중요한 개념이다. 로티에 따르면, 언어와 사회적 공동체는 다분히 우연성(contingency)의 산물이다. 따라서 사회적 아이러니, 모순의 발생은 기존의 언어 및 사회적 규범에 대한 파격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아이러니는 아이러니스트들을 양산한다. 이들은 전통 언어가 구축해 온 보편성, 문법성을 해체하고, 상상력과 새로운 언어로 연대를 형성하여 사회를 재창조해 나가려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이처럼 사회적 아이러니와 모순을 언어해체라는 주조음으로 다룬 문화의 한 예가 문학, 특히 시에서도 등장했다.


문장의 모순, 의미의 소멸

2017년 시인 한인준은 첫 시집 『아름다운 그런데』를 출판했다. 출판 직후 여러모로 세간의 화제였다. 모두 3부, 44편의 시로 구성되었다. 이 시집은 제목부터 난해했다. ‘아름다운’과 ‘그런데’라는 표현이 문법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목만은 아니다. 시집 속에 수록된 시 대부분은 내용을 종잡을 수 없었다. 시를 구성하는 형식도 이례적이었다. 각 행은 한 줄 한 줄 떨어져 있는 것이 많다. 한 구절이 마치 한 연처럼 보인다. 시의 형식은 그렇다 해도 내용은 아예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 문학, 특히 시(詩)를 글자의 정갈한 배열이라고 여기려는 사람들은 어떤 단어가 놓여야 할 자리(문법, 문맥)에 놓여있지 않다면, 대체로 ‘의미 없음’으로 판단하려 한다. 한인준의 시는 이런 전형적인 문법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니 그의 시에서 단번에 어떤 의미를 표출하긴 어렵다. 오랜 관찰과 되새김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런 시를 읽어보자.


가로로 잘못 덮은 이불을 세로로 바로잡다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둔 채로 나가는 겨울
닫아야겠지
먼 곳에서 가로로 잘못 덮은 이불을
그대로 놓아두는 사람들
의자를 뒤로 끄는 소리가 들려
소리만으로는 너는 앉을 것인지
일어날 것인지
나중에 오는 것들
나도 너처럼 바깥에 있는 줄 알았는데 -
「우리가 문을 닫으러 가는 동안에」 전문


앞서 소개한 시를 읽어 본 독자들은 이 시에 사용된 개별 단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각 단어가 상호 관련되어 만들어진 문장을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앞뒤 단어들은 이어진 듯하다가 단절되어 있다. 주어와 서술어, 명사와 부사어의 모든 관계가 제대로 호응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가로로 잘못 덮인 이불’, ‘문을 열어둔 채로 나가는 겨울’ 같은 표현이다. ‘문을 열고 나가는 주체’는 ‘겨울’이다. 시의 배경은 추운 겨울 우풍이 심한 어느 방 안이다. 시인은 이불을 덮다가 세로가 아닌 가로로 덮는 바람에 추위를 느꼈을 것이다(누구나 경험했을 수 있는데, 이때 발이 가장 먼저 추위를 느끼지 않는가). 그러다 발끝에서 문을 열어둔 채로 나가버린 것이 겨울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시인은 ‘닫아야겠지’라고 독백하듯 말한다. 시인의 말속에서 잘못 덮인 이불과 문을 열어놓고 나가버린 겨울이 조심스럽게 겹쳐진다.


바로 그때 시의 초점은 이제 ‘소리’로 옮겨간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의자를 끌어당긴다. 시인은 경청한다. 상상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 소리는 의자에 앉으려는 것인지, 일어서려는 것인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상만으로는 그 행동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초점이 다시 옮겨진다. 다시 문을 닫으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과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겹쳐지는 장면이 그려진다. 이제 시인은 깨닫는다. 이 일들이 먼 곳, 문밖에서 일어난 듯했는데 그것은 착시이며 착각이었다. 문 안에 있는 자신이 문밖에 있는 줄 잘못 알았다. 이렇게 시인은 방 안에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는 추위에 마치 방 밖에 있는 것 같은 오감각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이런 초점의 변화는 이 시에서 어떤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 이미지는 선명하지 않다. 모호하다. 심지어 주관적이다. 이 이미지는 독자의 상상력을 견인한다.


문학적 장점: 언어 너머 상상력의 견인

이 시들에서 상상력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그 근원은 ‘단어의 관절’(음절)과 ‘문장의 배열’을 해체해 버린 시풍(詩風)이 가장 유력하다. 특히 이 시집의 대표 격인 ‘종언’ 연작시에서 이 기법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종언:있“의 첫 단락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 시는 이례적으로 시행을 구분하지 않았다. 산문시처럼 쓰여 전체가 난해하다.


“나는을 어쩔 수 없이 그러면과 청바지를 동시마다 입는다고 아예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후략)” (28쪽).


이 시는 첫 부분부터 어떤 의미도 곧바로 도출되지 않는다. 파악할 수도 없다. 모든 문장은 형태만 완성되었을 뿐, 완전한 파격이다. 단어들은 조화되지 못한다. 단어들은 형상만 남아, 마치 물속에 빠져 유영하는 것 같다.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다. 방향 없이 떠돈다. 규칙은 무용하다. 예측 불가한 시어의 무용(舞踊)만 가득하다. 그저 혼어(混語), 혼문(混文)의 모음이다. (물론 이런 명명(命名)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의미 파악은 언감생심이다.


이 단어들이 흐르며 떠돌다 어느 자리에 정초 한다. 시인이 지목한 위치다.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다른 단어들과 조우한다. 이 우연한 배열이 이 시집 안에 실린 모든 단어의 운명이다. 그리고 그 운명처럼 만난 만들어진 문장에서 어떤 이미지가 창출된다. 퍼즐 같은 단어 배열이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 속에 시인의 의도가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듯하다. 독자는 그 단어의 유영을 뒤쫓아갈 수 있다. 이 상상은 이 시를 반복하게 읽게 하면서 독자의 해석 욕구를 자극한다. 그러다 마침내 시인의 의도를 움켜쥔다. 이런 방식으로 시인의 지휘 아래 단어를 통해 의미를 상상하는 즐거운 놀이가 만들어진다. 같은 자재를 쓰지만, 완전히 창의적인 건축기법으로 구축된 새로운 ‘상상의 집’이 독자의 눈앞에 건설된다. 이 시집 곳곳에는 시인이 끼워 넣듯 배열한 질서 정연한(문법에 일치하는) 시들도 간혹 있다. 낯설지만 반갑다(예. 유적, 기대, 희망봉 등). 역설적으로 이 시들이 낯설다. 잘 다듬어진 이 시들은 험난한 시를 탐험하는 독자들에게 숨터를 제공하는 저자의 배려 같기도 하다. 그중 시 ‘희망봉’(86쪽)을 읽어보자.


겨울 점퍼를 사달라고 기도했는데 겨울 점퍼를 훔치고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폭죽처럼 쏘아 올린 내 표정이 어
두워질 때까지 나는 바다를 무릎 위에 가만히 올려두었다.


시행의 간격도 일정하고, 단어들의 배열도 문법에 적합하다. 시적 운율도 적절하다. 상상도 자연스럽다. 겨울 점퍼는 바다와 겹쳐진다. 그 바다를 훔쳐 무릎 위에 올려놓은 어느 가난한 시인도 떠오른다. 이 시집의 주조음을 이루는 모순적 언어배열에 근거한다면, 이 당연한 상상은 오히려 기적 같은 사건이다.


김효숙은 한인준이 “문법을 거역하면서 제자리를 이탈한 어휘들이 서로 어색해하면서 결합”(227쪽)하는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비평한다. 나아가 “비의미 요소들이 흩어지며 이동할 때의 파생물을 ‘의미’로 본 구조주의 언어를 실험 중이다. 비의미에 의미를 부여하여 말의 지위를 반어적으로 확인하기, 언어의 자발성을 문법으로 억압하지 않기, 이것이 한인준식 언어의 반항이다.”(227쪽)라고 분석한다.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특히 ‘언어의 반항’이라고 규정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인준은 단어를 비슷한 듯 이질적으로 배열하고, 아예 의도적으로 그 단어를 해체해 버림으로써 의미 파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효숙이 반항이라고 말하는 것은 ‘한인준의 시에 문장은 있어도 의미는 소멸한다.’라는 말과 연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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