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 양영란 역(밝은세상, 2020)

by 푸른킴
이해 불가한 세계…그래도 당신의 삶을 노래하라
‘인생은 로망이다’에서 로망은 ‘소설’일까


새로운 로망과 연동하는 인생 소설의 세계를 모험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위의 인용한 글은 1994년, 가수 최백호가 자작곡으로 발표한 노래, “낭만에 대하여”의 가사 일부다. 평론가들은 이 노래에 담긴 ‘낭만’을 대체로 부재의 미학으로 해석한다. 즉 ‘잃어버린 것’ ‘다시 못 올 것’, ‘부재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라는 의미로 이해한 것이다. 이에 근거하면, ‘낭만’이라는 말은 손에 잡히지 않은 그 무엇에 대한 원초적 갈망, 부재하는 욕망, 동경하는 미래로 정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낭만은 로망roman의 단순 음차어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가 ‘로망’의 소리를 빌려와 낭만으로 옮겼을 때 딱히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낭만(浪漫)’이라는 말에는 감성과 감정이 ‘제멋대로’ 흐물댄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고 보았다. 일어날 수 없는 일, 도달 불가한 이상을 자기 삶에 자리에서 현실로 향유하고 싶은 갈망이 흐느적거리듯 배어있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 이후 ‘낭만’이라는 말은 세기의 전환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와 방향 없이 흘러나가는 어떤 감성의 향유로 깊이 각인되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낭만’을 단순히 물렁한 감성으로만 이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도재학의 연구에 따르면, 이 감성의 ‘낭만’이 로망의 동의어로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근대 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도재학, “근대어 ‘낭만(浪漫)’의 성립,”「형태론」 22-2(2020), 214-35.].


지난 2020년, 프랑스 소설가 기욤 뮈소(Guillaume Musso, 1974~, 프랑스 작가)는 ‘La vie est un roman’을 출간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그의 소설이 번역되었다. 그 제목은 ‘인생은 소설이다’(양영란 역, 밝은 세상, 2020)였다. ‘로망 roman’을 ‘소설’로 번역한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한가지 질문이 생긴다. 뮈소의 ‘로망roman’을 왜 문자적 대응어인 ‘낭만’이 아니라 의미적 비대칭 관련어인 ‘소설’로 번역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번역은 독자에게 어떤 문학적 의의를 남겼는가 하는 것이다.


뮈소의 로망, 그 이성적 개념에 대하여

뮈소는 ‘로망’이라고 썼고, 번역자 양영란은 ‘소설’(小說)이라고 옮겼다. 본래 뮈소의 이 책은 미로와 같은 인생을 소설가의 삶에 비유하여 추리하듯 풀어간다. 여기서 그가 선택한 용어 ‘로망’은 전통적 의미에 따르면, 프랑스 소설 문학을 통치하는 용어이다. 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풀이가 실려있다.


“‘로망’은 통속 『문학』이다. 12~13세기 중세 유럽에서 발생한 통속 소설. 애정담, 무용담을 중심으로 전기적(傳奇的)이고 공상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주로 운문으로 이루어진다. 1150년의 『테베 로망』 같은 작품에 기원을 둔다.”

이 설명은 로망이 ‘통속 애정 소설이며, 공상 요소가 있는 운문 형식의 문학이다’라는 것을 함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로망이라는 용어는 문학 장르라기보다는 기대와 실현 불가를 동시에 의미함으로써 사회 상황에 대한 야누스적 관용어(Janusian idiom)에 가깝다는 점이다. 비록 로망이 동경과 갈망을 시사하는 긍정 의미의 명사로 사용된다 해도 그 부정적 의미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로망은 ‘소설’보다 오히려 ‘낭만’과 더 밀접한 동의어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앞서 살펴본 ‘낭만’의 의미처럼 로망 역시 ‘일어나지 않을 일, 아니 일어났으면 하는 일에 대한 미래의 기대와 욕망’을 담고 있다. 심지어 로망은 불가능한 희망, 자기 갈망을 끝내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도 반영한다. 끝내 이룰 수 없는 미완의 버킷리스트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로망’이 단순히 ‘소설’에 대응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나의 로망’이라는 말은 나의 소설이라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 말은 내가 간절히 동경하는, 그러나 아직 이루지 못한 어떤 갈망의 대상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실현 여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망이라는 말 속에는 기대를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도 여전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로망’의 부정 의미는 점차 탈색되었다. 그리하여 이야기로만 가능한 가상현실을 반영하게 되었다. 누구나 생각은 하되 손에 잡을 수 없는 어떤 초현실적 세계를 동경하는 실현 불가능한 미래,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상 안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환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로망은 ‘이성(理性)이 도달할 수 있는 이상(理想)’으로 전환되었다. 이런 용어의 의미 변화는 ‘로망’은 우리 사회에서 오늘날 이상과 현실의 모순 감정을 대변하는 사회 현상 용어로 자리잡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감정과 이성, 희망과 절망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뒤섞인 삶을 그려내는 사회적 의미를 함의한 것이다. 소설과 대등어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양가감정의 사회적 용어로서 로망에 대해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즉 로망은 신비한 삶을 추동하는 감성으로서 여전히 인간의 삶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로망은 인간의 감성 뿌리를 자극한다는 확신이다. 그러나 뮈소가 말한 로망은 단순한 감성의 저장소만은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의 책만 보더라도 정처 없는 감성의 향연이 아니라 인간의 치밀한 이성적 사고작용을 정치하게 배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뮈소가 말한 로망은 이성적 영역을 함의한다. 또한 그 의미가 우리말 번역의 ‘소설’(小說)과 상관된다.


새로운 로망에 대하여

뮈소가 말한 로망은 이성적 영역이다. 사전적 정의에서 살펴보았듯이 로망은 통속에 근거하면서 ‘궁중’이라는 새로운 세계 안으로 시선을 돌린 전환 시대의 문학이었다. 귀족들은 이야기가 필요했다. 기사들은 음유시인이 되어 기사도를 바탕으로 자기가 구성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었다. 그들은 귀족들을 위해 사랑을 소재로 삼았다. 속어와 사투리로 이야기를 다듬어 통속적인 전기와 연애담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로망스’였다. 로망은 여기서 파생되었다. 궁중은 세계와 단절되었으나 로망의 도움으로 호기심을 충족했다. 자기 바깥 세계와 이어질 수 있었다. 시인과 작가들은 더욱 치밀하게 로맨스를 구성했다. 이제 음유시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상상은 불가피했다. 상상은 현실보다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 유용했기 때문이다. 로망은 상상하는 세계에 대한 기대와 절망감을 글과 노래로 승화시킨 문학이라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한편 문학이 ”인간 정신을 표현하는 한 형태“라는 평론가 故 김현의 간단한 정의[김현, 김주연 편, 『문학이란 무엇인가』(문학과 지성사, 1976)]에 의하면, ’문학은 정신세계를 현실처럼 다스린 이야기다‘라는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 여기서 문학은 인간의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이다. 문학은 완전히 수사적으로 ‘로망’을 새롭게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문학으로서 ‘로망’은 단순히 삶의 모방이거나 유희를 위한 새로운 결과물만은 아니다. 자신의 이상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들인 인간의 지난한 수고의 장(場)이다. 따라서 ‘로망‘은 문학이라는 관점에서 낭만과 단순하게 호응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성적, 철학적 문학에 상응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룰 수 없는 어떤 절망감을 배태하면서도 이성적으로 희망을 현실화하는 희망문학과 연동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로망은 문학에 의해 새로운 로망으로 전진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로망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이상의 현실화를 탑재한 로망이다. 감정과 감성에 천착하지 않는다. 당대에 저항하며 땅의 사람들이 겪는 삶을 옹호한다. 이런 점을 반영한다면, ’새로운 로망‘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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