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전병호 역. 서울:김영사, 2023.-
인간과 인간을 잇는 자유와 공정의 민주주의를 향해
데이터의 시대에 관계론적 인간의 회복
인간을 위한 정치는 인간 위기의 극복과 진실을 향한 용기의 실천에서
책의 전제, 앤데믹과 인포크라시의 공격 시대
전염병이 휩쓸고 간 뒤, 코로나 19에 이어진 앤데믹(endemic)과 인포데믹(Infodemic)의 세계다. 앤데믹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면 인포데믹은 ‘데이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대이다. 앤데믹은 보이는 유해 질병이 잠입한 것이지만, 인포데믹은 보이지 않게 삶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두 바이러스는 모두 생활세계를 전방위적으로 침식한다. 삶을 안팎에서 총체적(holistic)으로 위협한다. 이제 인간은 질병이 아니라 데이터에 감염된 존재로 살아간다.
그런데 이 치명적 전염병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대조적이다. 앤데믹은 누구에게나 혐오, 배척, 탈출의 대상이다. 거리 두기와 비대면, 마스크 쓰기라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그것을 참아냈다. 그러나 정보 바이러스에 의한 인포데믹은 남녀노소 누구나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 친밀감을 느끼고, 경계하지 않으며, 더 많은 소유를 희망한다. 데이터는 바이러스라기보다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유익한 재료다. 데이터가 만들어주는 이미지의 가상현실 속에서 평안함을 만끽한다.
실제로 지난 2020년부터 3년간 이 세계는 이 대조적 세계를 직접 경험해 왔다. 지금도 앤데믹은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세계의 생명에 치명상을 입힐 위험성은 여전하다. 완전히 퇴멸시켜야 한다는 공론이 들끓고 퇴치할 수 있는 신약개발에 열을 올렸지만 쉽지 않다. 반면에 인포데믹은 삶을 위협하는 바이러스임에도 불구하고 약 30년 간 인류에게 생명을 고양하는 치명적 즐거움을 공급했다는 데 의의가 없다. 갈수록 더욱 누려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진다. 데이터 바이러스는 많을수록 행복하고, 할 수 있다면 무한으로 소유해야 한다는 욕구가 오히려 자랑스럽다. 이렇게 세계는 앤데믹엔 철저히 냉정하나 인포데믹엔 완전히 온화하다. 앤데믹은 박멸, 응징하는 시대이면서 인포데믹은 수용, 환호한다. 어쩌면 모순의 시대다.
책의 서술 특징, 데이터 지배 사회 진단서이자 인간보고서
재독한인철학자 한병철(철학, 전 독일 베를린예술대학)은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데이터(정보) 지배 사회’를 사회철학적으로 분석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 시대의 통치 제왕은 스마트폰이다. 그것은 인간 사회를 통치하는 제왕 바이러스이며, 시민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무력이다. 한병철은 이런 시대를 ‘인포크라시(Infokratie)’라는 자신의 신조어로 명명한다. 이 용어는 이 세계가 데이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대이며, 합리성 부재의 세계라는 것을 함의한다. 또한, 인포크라시는 정보체제에 의해 생활세계의 디지털화가 정치 분야에 영향을 미쳐 형성된 민주주의(27쪽)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그의 주장은 데이터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순간에 고유한 자유를 소실한 채, 정보 감옥의 시대에 스스로 갇혔다는 것이다.
이 책은 2021년 독일에서 먼저 출판된 후 2023년에 우리말로 번역되었다(전병호 역). 번역본의 제목은 『정보의 지배-디지털화와 민주주의의 위기』다. 그런데 이 제목은 오히려 원서가 지향하는 방향을 잘 드러내는 것 같다. 즉 인간 사회에 ‘과도하게 스며있는 디지털 문명, 그 정보의 지배 아래서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는다’라는 한국 정치 정황을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특히 번역본의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에서 암시하듯 이 책은 인포크라시의 구체적 현상과 그것에 의한 민주주의 정치사회의 위기를 주목한다. 나아가 사회적 정의와 거짓이 판단 불가한 시대 상황에 ‘던져진’ 인간에 유의한다. 이처럼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우리 생활세계에 창궐하면서도 철저히 은폐되어 있던 데이터 바이러스를 표적으로 삼는다. 민주주의를 숙주 삼아 숨어있던 바이러스의 정체를 추적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배하는 왜곡된, 가상의 정치체제를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그리하여 이 은닉된 바이러스가 창출해 낸 세계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는지를 비판한다.
이 책의 서술 특징은 바로 이 바이러스에 의한 세계의 전개 양상을 비판적으로 관찰한다. 우선 스마트 족의 등장이다. 그는 이 신인류의 정체성을 파악한다. 이 신인간류는 인간이면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또한 소속되고 싶어 하는 갈망의 대상이다. 저자는 그 이유도 제시한다. 인간은 이 발전된 문명에 자발적으로 순응하여 그 혜택을 최대한 하사 받아 누리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석과 함께 저자는 고발하듯 비판한다. 그 데이터 바이러스는 결국 삶의 활력 비타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치명적 전염병의 병원균으로 잠복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바이러스에 의해 세계 양상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전개된다. 즉 인간은 그 바이러스를 인지하면서도 자기 욕망 때문에 데이터 사회를 너그럽게 허용한다. 그 결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진실과 거짓을 분간할 정치적 장치가 소실되어 버렸다. 가짜가 ‘진실스럽게’ 펼쳐지는 왜곡된 사회가 된 것이다. 저자의 특장(特長)은 바로 이 점을 적확하게 ‘진단한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정치사회 질병 진단서이다. 또한, 이 질병 사회에서 삶의 자리가 변질한 것을 버려둔 채 그저 적응해 가려는 ‘인간의 변질’에 대한 관찰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요컨대 한병철은 우리 시대를 정보가 정치와 민주주의를 잠식한 현실을 ‘인포크라시(Infokratie)’라 명명하며, 인간이 자발적으로 데이터 감옥에 갇힌 시대라고 분석한다.
책의 서술기법과 주요 논지
책은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되었다. 저자가 대주제를 다섯 개의 소단락으로 나눠 전개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가면 저자의 주장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의 신개념인 ‘인포크라시’와 그의 정치사회 철학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제2장 인포크라시와 제5장 진실의 위기를 집중해서 읽는 것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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