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2018
압축의 미학을 담은 ‘따뜻한 전기’
소재웅 작가의 『전자슈터 김현준』은 단순한 스포츠 전기를 넘어, 압축의 미학과 기억의 윤리를 담아낸 특별한 작품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인물의 생을 이토록 정직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기억해 주는 글쓰기가 있다는 것에 감동하고, 또 그것이 지닌 힘을 되새겨 나 스스로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1 스포츠 전기와 글쓰기의 미니멀리즘
소재웅 작가(도서출판 훈훈 대표)는 개인의 삶을 반추하고 글로 추도하는 글쓰기 전문작가입니다. 특히 상실과 치유를 주제로 한 글과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병행하며 슬픔의 온전한 다독임을 실천하는 작가입니다. 그는 첫 책을 출간할 때 ‘스포츠 전기’라는 낯선 분야를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개척했습니다. 이후 연속적으로 출판된 세 권의 책은 이런 ‘개인 전기’를 시적으로 담아내는 글쓰기의 한 미학적 정점을 잘 보여줍니다.
이처럼 그의 글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줄이는 힘,’ 즉 압축의 미학입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간명하며 그 대상에게 적확한 단어가 최종 선택됩니다. 이러한 밀도 높은 간결함은 작가가 인터뷰를 통한 경청을 작업의 핵심으로 삼는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인터뷰를 통해 포착한 핵심 단어는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객관적 정보를 전달만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아포리즘적 통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인물이 자기 삶에서-특히 스포츠라는 장르에서 건져 올린 그만의 분투를 작가가 해석하고 그것을 짙게 압착한 지혜로 독자에게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소재웅 작가는 화려한 수사나 과장된 묘사를 절제(Austerity)합니다. 이로써, 내용의 본질만을 남기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서술 방식을 취합니다. 장황하게 부풀릴 수 있는 이야기를 끝끝내 절제합니다. 이렇게 함축된 단어로 정리된 책은 작가가 독자를 향해 견지해야 할 높은 수준의 문학적 판단력과 깊은 윤리적 실천력이 균형 잡힌 필력을 입증합니다.
2. 크라우드 펀딩: 기억의 공동체와 참여의 미학
『전자슈터 김현준』의 출판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것은 나름 이 책의 가치를 더욱 깊게 만듭니다. 이 책을 포함하여 저자가 출판한 세 권의 책 모두 이 방식을 통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 사실은, 출판이 단지 저자 한 사람의 작업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마음과 응원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의 작업’ 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또한, 이런 펀딩 과정은 책을 단순히 판매를 위한 상품이 아닌, 독자들이 이 책에 담긴 인물의 삶이 세상에 나오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참여한 공동의 창작물로 격상시킵니다. 이 ‘위대한 마음들’의 후원은 이 책이 알라스데어 매킨타이어가 말한 ‘기억의 공동체(Community of Memory)’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어느 특정 인물을 기억하고 계승하려는 '서사적 자아'의 공동체 윤리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 책의 탄생 과정 자체가 '배려와 공존의 결실'이자, 작가와 후원자들을 통해 사라진 자가 다시 살아지는 신비로운 따뜻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3. 구성과 읽기 경험: 부담 없이, 그러나 깊이 있게
이 책은 전기치고는 분량이 짧습니다. 글이 간결하여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극적으로 서술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이 오히려 누구나 ‘부담 없이, 그러나 깊이 있게’ 어떤 사람의 삶의 ‘가치’를 자기 말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구조를 가졌다는 장점이 부각됩니다. 역설적으로 한 번 펼치면 마지막 장까지 자연스럽게 ‘쭉’ 읽히는 서사의 응집력이 대단합니다. 글이 간결하면 전기 문학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저의 편견이 무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시작은 전기의 주인공에 관한 역사적인 사진들입니다. 이는 단순한 자료를 넘어, 농구 역사의 한 장면과 당대 스타 김현준 선수의 정서를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독자 역시 이 사진들을 통해 그 인물의 삶이 남긴 흔적을 뒤따를 수 있습니다. 총 아홉 개의 장 사이에 배치된 일곱 개의 작은 에피소드는 가벼운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서술은 작가의 의도가 다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즉, 이를 통해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그 속에서 ‘인간 김현준’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역으로 글과 글 사이에 삽입된 사진들 역시 단순한 추억의 조각이 아닌, 불의한 사고로 삶의 길을 달리 한 그를 조용히 추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시각적 언어입니다.
4. 왜 김현준인가?- 작가의 선택: ‘사랑받는 사람’에 대한 존재론적 평가
작가가 수많은 인물 중 김현준 선수의 전기를 쓰고자 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는 사랑받는 사람이어서 그랬다.” (36쪽)
이 대답은 매우 함축적입니다. 한 존재가 세상에 미친 긍정적 영향력을 압착한 존재론적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그를 한마디로 ‘사랑이 많은 사람’이 아닌 ‘사랑받는 사람’으로 잠정적으로 규정합니다. 이는 곧 그가 타인에게 정서적 공명(Resonance)을 일으킨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즉, 그가 언제나 누군가를 ‘먼저’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를 소개하는 단어들, 즉 ‘절정, 혁명, 낙관, 비범, 조화, 절제, 균형’은 그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어’들입니다. 그는 먼저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사랑함으로써 그에게 응답했습니다. 이처럼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 사이에는 저 따뜻함이 옹골차게 들어있는 단어들이 살아있습니다. 작가는 바로 그 사이에 놓인 단어를 찾아 한 사람의 생애에 별처럼 새겨 둔 것입니다.
5. 전기 장르의 위험과 메타픽션적 절제
알다시피, 전기는 단편적 정보, 감정선, 작가의 해석이 왜곡을 만들 수 있는 본질적인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소재웅 작가는 이 위험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누군가의 삶이 자기로 인해 ‘미화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런 의도가 ‘전자슈터 김현준’과 ‘자연인 김현준’을 억지로 일관되게 묶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의 절제는 책의 형식에서 가장 빛을 발합니다. 책을 펼치면, 책의 왼쪽 면에는 작가의 평가가, 오른쪽 면에는 그 근거가 되는 인터뷰 원문이 실려 있습니다. 이 방식은 실제 주인공과 작가의 해석을 대비시켜 줍니다. 독자에게 ‘이것은 사실이고, 이것은 작가의 해석이다’라는 이정표를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이른바, 메타픽션(Metafiction) 서술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내용적으로 서로를 보완하면서도, 독자가 검증의 미학을 통해 균형 있는 시선을 유지하는 등대 역할을 합니다. 한 사람의 전기를 절대적으로 신봉하기보다 그 삶의 상대성을 먼저 인지하며 읽게 도와주는 매우 적절한 편집적 장치입니다. 따라서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이 전기는 미화될 위험을 얼마나 정직하게 다루고 스스로 잘라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기꺼이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 책의 의도에 부합되어 그 의미를 훨씬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6. 결론: 기필코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삶
작가는 이 책을 ‘사하라(사랑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출판사에서 출판했습니다. 이 출판사는 작가의 오랜 숨은 뜻을 펼치도록 도운 단체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그곳과 함께하며 거의 1년에 한 권씩 책을 출간해 왔습니다. 이 단체의 모토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몸소 보여주도록 지지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생을 세상에 소개하려는 작가의 의지는 이 출판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투영되었습니다. 작가 자신의 삶 역시 여느 사람들의 손에 들려져 마치 살아있는 전기를 써가는 것 같은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출판 배경은 독자에게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라는 고민에 대해 자기 성찰적 답변을 남깁니다. 바로 ‘머뭇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전제가 있습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작가에게서 이렇게 변주됩니다.
“난, 기어코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9쪽)
누군가 당신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은 사람만이 다시 누군가에게 보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말속에는 이 책이 바로 ‘당신의 고민 뒤에 당신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누군가는 항상 있다.’를 일깨워준다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요컨대, 이 책은 일반적인 전기 문학과는 결이 달라 화려한 내러티브의 부족이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따뜻함을 절제하듯 정직하게 담아낸 ‘여백의 미’ 같은 전기 문학이라는 장점이 단점을 잘 다독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독자를 위로합니다. 타인은 물론이고 자기에 대한 환대(Hospitality)와 윤리적 책임을 실현하려는 글쓰기의 좋은 보기이기 때문입니다. 그 의의를 생각하니 개인적으로도 기분 좋은 독서였습니다. 이 책은 당신의 삶을 응원하는 누군가가 바로 옆에 있음을 조용히 들려주며, 당신 또한 다른 사람의 생을 기억한다는 것의 윤리적 무게를 되짚어볼 소중한 기회를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