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13. 어느 이용소 앞
- 시작노트

by 푸른킴

어느 겨울 여행ㅡ

햇살 맑은,

스산한 도로


우연히

다시 만난 너


어떤 삶이 추억인 것은

지나치게 무심히 잊혀졌다가

어제처럼

삼색불꽃으로

살아나기 때문


"잘 있었구나"


1. 배경

동해안을 따라 가볍게 여행하는 중이었다. 맑은 햇살에, 가벼운 바람까지 기분 좋게 불어주던 오후였다. 신호등 붉은 신호에 차를 잠시 멈춘 사이, 길 건너편 낯익은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빨강, 하양, 파랑이 가볍게 돌아가는 저 삼색등. 이 낯선 도시에서 내 눈에 익숙한 건물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저 상징 하나로 그곳은 살가운 느낌으로 내 잊힌 기억을 다시 꺼냈다.


어린 시절에는 이용소를 자주 갔다. 훅 들어오는 뜨거운 물수건 냄새, 어른들이 면도하는 시간이 어린 내 눈에는 아주 묘하게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스포츠로 깎아주세요’라는 말을 꺼내면, 나이 드신 주인장은 어린아이가 앉은 판을 걸치고 팔걸이를 탁탁 쳤다. ‘올라가라’는 말이었다. 그런 시간이 꽤나 멋쩍었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사각사각 가위 소리를 들으며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을 보고 있으면 뭔가 아쉬운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머리카락을 다듬는 것보다 머리를 감을 때가 더 좋았다. 머리 감겨 주는 일을 전담하는 분이 늘 있었다. 그의 손은 신기하게 시원하고, 상쾌하게 머리를 감겨주었다. 머리를 말릴 때는 수건을 기술적으로 흔들어 털었다. 어린 나에게 그 느낌은 이유 없이 정말 좋았다.


그렇게 이발소는 내 어린 시절, 머리만큼이나 마음에도 곱게 다듬어진 추억의 공간이었다. 어느 날부터 헤어숍이라는 공간을 자주 다니게 되어 이용소는 기억에서 멀어졌고, 이제는 거의 드나들지 않는, 내 기억 속 먼 장소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자주 볼 수 없는 그 표지를 보는 순간, 마치 어제처럼 내 기억의 한 페이지가 가볍게 펼쳐졌다. 나는 급히 카메라를 들어 그 장면을 찍고, 그 사진을 다시 추억의 책장에 꽂아 두었다.


2. 사진

찍고 나서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니, 전체 구도는 조금 아쉽다. 운전대에서 좀 불편한 자세로 빨리 찍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이용소가 화면 오른쪽에 안정적으로 자리하고, 왼쪽에는 1/3 정도 여백이 생겼다. 건물 앞면과 측면이 만나는 세로선이 사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것이 그나마 맘에 든다. 결과적으로 사진은 세로로 삼 등분되어 안정적인 구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왼쪽과 사진 앞쪽은 어둑한 건물, 보도, 이용소 벽, 그리고 낮은 전봇대로 채워져서 건물이 휑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삼분할 구도에 건물과 도로의 선이 나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용소 입구 쪽으로 끌어간다. 또한 촬영 위치도 내 눈높이보다 약간 낮아서 내가 길을 걷다 문득 멈춰 서서 본 풍경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차 뒤쪽에서 늘어선 전봇대 그림자 덕택에 건물을 향한 나의 시선이 잘 살아나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 건물 앞을 지나가는 ‘나’의 느낌이 선명해졌다.


베이지색 건물 창문에 간간이 보이는 초록색도 이 사진에 활력을 준다. 따뜻하고 차분한 색의 조화 덕분이다. 그 밖에 붉은 보도블록, 도로의 회색, 그리고 이발소 기둥의 파랑·빨강·하양 삼색이 화면 전체의 색감을 조화롭게 해 주는 것 같다. 특히 내가 주목한 것은 삼색 회전등이다. 건물 앞면에 설치된 이 상징은 사진 속에서 작지만 강한 색채 포인트다. 마치 삼색 불꽃같은 이미지로 기억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인적 없는 도로와 닫힌 듯한 유리문, 그러나 자전거 한 대가 잘 세워진 모습, 이용소 입구 문에 새겨진 ‘스포츠’라는 문구 등은 이곳이 여러 사람들의 머리를 다듬어주는 공간이면서, 불현듯 내 어린 시절의 나로 되돌아가게 하는 추억의 장치였다.


사진에서 보듯이 마침 이용소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옆 차선에 차량도 보이지 않아서 사진 찍기에 최적이었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테다. 하지만, 이제는 가벼운 발걸음조차 느낄 수 없어 괜히 안쓰럽다. 발길은 잔상만 남은 듯하다. 나의 ‘오래전 동네 이발소’도 이제는 다시 되찾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을 테다. 그런데 이 사진 속 이용소는 아직 그 추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삶은 흘러가는 듯해도 어느 순간 정지되어 맴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결국, 이 사진은 현재를 담았지만 나에게는 과거가 끌어올려진 우물터와 같았다. 현재이면서 과거, 또 지난날이면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장면이다. 요컨대, 이 사진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시간들을 겹쳐 보게 만드는, 기억을 호출하는 프레임으로 기능한다.


3. 시어

디카시를 연습하면서 나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사진과 시어의 비중이 어느 쪽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시(詩)라는 점에서 시어에 무게중심이 있을 수 있지만, 사진이 아니라면 디카시라는 장르가 성립할 수 없지 않은가. 만약 사진의 작품성이 보장된다 해도 시어가 단순히 사진을 해석하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면, 그러나 디카시의 본래 의의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디카시에 대한 나의 잠정적 결론은 사진의 수준과 시어의 해석이 잘 어울려서 궁극적으로 ‘철학(哲學)’의 개념을 이끌어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이때 철학은 사진이 이미지로 드러내는 것을 언어적 개념으로 전환하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도 유의하면서 말이다.


앞서 본 대로 이 사진에는 몇 가지 상징적인 이미지가 있다. 첫째, 겨울 오후의 낮게 떨어지는 햇살이 건물 벽을 비스듬히 스치며 드리운 긴 그림자다. 이 그림자는 우연히 담긴 것이지만, 사진의 가장 큰 시각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용소 입구에 걸린 삼색 회전등의 직접 발광 원색에 비해 검은색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이용소에 기울어진 이 외부의 빛이 이 사진의 기본 색조의 무게 중심을 잡아둔다. 그저 밝고 맑기만 한 공간으로 어둠이라는 새로운 빛이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진은 따뜻한 빛(노란 톤)과 차가운 그림자(푸른 톤)의 대비가 선명하다. 다시 말해, 밝음은 어둠에 의해 선명해지고, 어둠은 밝음에 의해 그 존재 가치를 부여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이 점을 대비라는 기법으로 구현하여 시어를 구성했다.


이 구성은 전체적으로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배경–재회–추억에 대한 성찰 등이다. 그리고 마지막 나의 안부 묻기를 인용 형식으로 분리했다.


1연: 시간·공간·분위기 제시

2연: ‘너’와의 재회

3연: ‘추억’에 대한 정의(어떤 삶이 추억인 이유)

끝: “잘 있었구나”라는 독백


그리하여 이 구조 속에 여행·재회·성찰·인사라는 작은 서사가 생겼다. 이제 이 시어들을 좀 더 읽어보자.

“어느 겨울 여행— / 햇살 맑은, / 스산한 도로”: 이 시의 배경을 구성하는 이 시어에서 나는 의도적으로 ‘어느’라는 불특정 지시어를 선택했다. 이런 표현은 나의 특정한 경험을 누구라도 떠올릴 수 있다는 보편화를 의도한 것이다. 누군가의 구체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누구나 겪었을 법한’ 어떤 겨울 여행이 이 시어에 담겨있다. 내가 본 그 거리에는 겨울 햇살이 맑게 퍼지고 있었다. 차 안에서는 바람의 차가움이 아니라 햇살 맑음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거리는 스산했다. 비어있었고, 멈춰있었다. '맑은'과 스산함은 반대어는 아니지만, 대조어로는 충분하다. 특히 정서의 대비가 뚜렷할 수 있다. 따뜻한 빛과 차가운 공기다.


“우연히 / 다시 만난 너”: 마침, 길 건너편에 삼색 회전 등이 눈에 띄었다. 차가 신호등에 걸려 있었기에 볼 수 있었다. 간판을 보니 ‘00 이용소’라 적혀 있었다. 이용원도 아니고 이발소도 아니고 이용소다. 낯설 것 같았는데 익숙했다. 잠시 주목해서 보니 문 입구에 ‘스포츠’라는 말도 선명하다. 내 어릴 적 당연한 헤어스타일이었다. 하여 나는 이 사진을 다시 돌아보며 ‘우연히’와 ‘다시’라는 말을 함께 붙여 적었다. 이날 내가 본 이용소는 우연이었지만, ‘다시’ 만난 친구 같았다. ‘너’라는 말은 저 이용소가 잊고 지낸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는 나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과장한다면, 숙명 같은 재회라는 말이다. 시어의 전략상 ‘너’를 선택한 것은 그 구체적 정체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생략과 상상’의 여백을 남기고 싶어서다. 이용소일 수도, 이용소에 얽힌 사람일 수도, 혹은 그 시절의 나 자신일 수도 있게 열어 두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나에게 이 추억의 장소가 마치 나와 인격적 교류가 있던 대상으로 상기되었다는 점이다.


“어떤 삶이 추억인 것은 / 지나치게 / 무심히 잊혀졌다가 / 어제처럼 / 삼색불꽃으로 / 살아나기 때문”: 하여 나는 이 대목에서 도대체 ‘추억’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개념정의를 해 두고 싶었다. 시에 어울리지 않게 다소 설명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추억은 정동(精動)의 문제이면서도 수면아래 가라앉은 무의식과 관계있다는 것이다. 내가 정리한 시어는 세 가지를 담고 있다. 첫째, 추억의 성립조건이다.‘지나칠 정도로 무심한 태도’다. 둘째, 추억의 시점이다. ‘어제까지도 잊힌 기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추억의 재발화 현상이다. 그것은 이용소의 삼색 회전처럼 내 몸에서 어떤 불꽃처럼 발화되는 것이어야 한다. 죽은 듯 가라앉았다 나도 모르게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살아나는 기억 이어야 한다. 결국, 추억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잊고 살았다’라는 후회와 자책의 감정, “어제처럼”이라는 시간 부사, 즉 그 오래된 일, 한참 전의 일이 지금 막 일어난 것처럼 선명해지는 의식, 마지막으로 ‘삼색불꽃’처럼 다시 점화되어 타오르는 기억의 불꽃이 겹쳐져 일어나는 새로운 경험이다.


“잘 있었구나”: 결국 나는 이 이용소를 멀리서 바라보며 또다시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담아 지난날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대신했다. 이 과거의 확인은 곧 그의 미래를 응원하는 인사이기도 하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저 이 말 한 줄에 그동안의 세월, 미안함, 안도감, 그리움을 실어보려 했다. 묵음(黙音) 같은 여운이 담겼다는 다행이다.


나는 이 시어들을 행과 연을 짧게 끊어 호흡을 잘게 나눴다. 사진을 보며 시어를 함께 읽어야 하기에 디카시의 시어는 장문보다는 단문이 어울린다. 특히 이 시어들은 혼잣말하듯 말하는 서정적 산문성을 담으려 했다. 의도적으로 개념 문장(“어떤 삶이 추억인 것은…”)과 이미지 중심 문장(“삼색불꽃으로 살아나기 때문”)이 섞여 있는 1세기 대표적인 서사 문학인 요한복음 제17장 1-5절을 응용한 것이다. 이 개념으로써 이 시어는 간단하나마 철학적 사유와 시적 이미지가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3. 의도

사진과 시어 분석에서 살폈듯이, 이 디카시는 하나의 생활철학 개념을 모색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추억이란 사건의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성찰하여 미래로 이끌어가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 디카시에서 보듯이 ‘사소한 동네 풍경 속에서, 잊혔다가 다시 살아나는 시간’은 이 세계와 나(I)가 관계 속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현존재는 시간과 공간이 연속된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간의 의미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속 이용소는 그저 나와 무관한 ‘동네 상가’ 일뿐이다. 하지만, 나의 디카시 안에서는 ‘너’와 재회하는 토포스이며, ‘추억이 다시 점화되는 장소’가 ‘된다.’ 여기서 ‘된다’는 방금 전까지 무관했던 것이 바로 이 순간 ‘유의미한 존재로 변화했다’는 의미다. 이것은 ‘시어’의 역할이다. 즉, 사진은 현실 순간의 기록이지만, 시는 그 현실에 개인의 정신사(과거의 사건과 현재 정서/기억과 미래의 기대)를 투사하여 새로운 의미 공간으로 전환해 준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나는 이 디카시에서 이 과거 추억이 어떻게 현재 사건으로 재점화 ‘되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지나치게 무심히 잊혀졌다가 / 어제처럼 … 살아나기”라는 구절이 그 예이다. 이 구절은 기억이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우연한 장면(이발소, 삼색 회전등)을 매개로 돌연 현재로 튀어 오른다. 창발 하는 것이다. 사진 속 삼색 회전등은 결정적이다. 이제는 퇴물처럼 사라져 자주 만날 수 없지만, 그것은 그저 오래된 장식품이 아니다. 시에서 말하듯 ‘삼색불꽃’이 튀게 하는 촉매제다. 기억을 점화하는 발화장치다. 이 발화는 그것의 추억을 간직하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특수한 매개체다.


또한, ‘너’라는 의인법의 은유는 나의 이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을 수 있다는 어떤 기대감 때문이다. 열려있는 구도는 새로운 존재의 여부를 확신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 속에서 ‘너’의 대상은 구체화할 수 있다(이발소, 자전거, 도로). 그러나 디카시에서 ‘너’는 한 두 개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보는 것과 사유하는 것 사이의 이 비대칭 덕분에, 이 디카시는 각자의 ‘너’를 투사할 수 있다. 즉, 나의 의도는 사진이 구체화의 장치를, 시는 보편화의 장치가 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디 둘이 한 디카시에서 만날 때 누구의 경험이든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나의 의도는 나의 경험을 “공유 가능한 추억의 장면”으로서의 재구성하는 것이다.


끝으로, ‘삼색 불꽃’이라는 시어에도 나의 의도가 있다. 이 말은 사진 속 삼색 회전등을 정교하게 받아 안으면서, 시와 사진을 하나의 상징으로 묶는 기능을 한다. 그리하여 겨울 햇살과 스산한 도로, 인적 드문 거리, 닫힌 이발소 문은, “어느 겨울 여행― 우연히 다시 만난 너”라는 정황과 정확히 맞물려, ‘우연한 재회’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내가 구현한 생활철학은 한마디로 우리의 삶은 언제나 어디서나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기억으로 되살아난다는 추억의 항구성이다. 물론 이 항구성에는 반드시 그 사건을 재점화하는 삼색 불꽃같은 영혼의 심지가 작동할 때 가능해진다.


4. 총평

나의 가족여행은 소중한 추억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함께 이 추억을 새로 만든다. 그러면 옛 추억도 다시 살아난다. 그 추억들을 녹슬지 않게 잘 닦아 다시 내 삶의 서랍에 담아둔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감독 빔 벤더스, 야큐쇼 고지, 2024)에서 빛을 머금은 낙엽을 모아둔 서랍처럼 말이다. 나의 디카시는 이런 추억을 하나의 사진과 어울린 시어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이다. 사진의 구체성과 시의 추상성이 균형 있게 담기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디카시도 사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시의 핵심 이미지(삼색불꽃, 스산한 도로, 겨울 햇살)를 직접 제공하고 있고, 시는 그 이미지에 시간과 감정, 사유를 부여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나의 언어는 절제되어 있고, 감정은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전달되도록 했다. 마지막 한 줄의 “잘 있었구나”는, 우리 모두 자신의 옛 ‘이용소’를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나의 디카시는 사진·시어·의도를 잘 담으려는 연습이 어느 정도 수행된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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