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수영, 시평론인 이어령, 그리고 나-
1이 글은 지난 2022년 3월 7일 나의 감상과 2026년 3월 7일 아침 다시 덧붙인 글입니다. 덧붙인 부분은 마지막 <검은 안식의 시학>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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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를 애도하는 마음이었을까?
나는 김수영 씨의 글을 다시 꺼내 읽었다.
세상은 아이러니해서
김수영 씨가 요절하던 즈음
이어령 씨는 청년의 생기로 상대의 글을 비평했을 것이다.
그들이 논쟁의 불씨를 지필 즈음에
세상에 태어난 나는 시대를 지나
여전히 그들의 글을 습관으로 읽는다.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고
나 자신도 이해불가한 상황이며
여느 사람들에게 공감되기도 어려운데
왜 나는 언제나
두 사람의 글을 읽고,
또 서로 엮어서 생각하는 것일까?
일면식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그저 글 몇 개, 책 몇 권 읽은 것이 전부인데
김수영 씨가 세상을 떠날 때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은 나이가 된 지금
이어령 씨가 세상을 떠날 때 나이보다 훨씬 더 적은 나이가 된 지금
무슨 이유로 그 두 사람은 여전히
내 안에서 하나로 묶여 봄날 씨앗처럼 소생하는 것일까.
1967년 말-1968년 3월
두 사람 사이에 의도하지 않은 논쟁이 있었다.
주고받은 글들이 여덟 편이었다 한다.
누가 이 논쟁에 불을 지폈는지
학자마다 다른 관점이라는 것이 재밌지만,
내가 보기에 아무래도
물꼬를 튼 사람은 이어령 씨인듯하다.
사실, 김수영 씨는 답을 할 차례에 꼬박꼬박 대응한 것 같지는 않다.
몰아붙인 쪽은 이 씨였고
미적미적한 쪽은 김 씨였다.
조선일보와 사상계를 통해 다뤄진 이 논쟁은
이름이 붙었다. ‘불온시’ 논쟁.
어찌 보면 ‘순수시’ 논쟁이라고 해야 할 듯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싸움을 건 쪽이
순수문학 주창자라 하던 이 씨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리라.
김 씨는 단 한 번도 자기 시가 ‘불온시’라고 명명한 바 없고, 이 씨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순수시’를 지향한다고 말한 바 없지만, 끝내 이 논쟁은 ‘불온시논쟁’으로 불렸다.
시간이 흘러 이 논쟁은 ‘참여 시와 순수시’ 논쟁으로 각색되었다. 불온시가 참여시가 된 경위도 불명하지만,
순수시가 여전히 순수시로 남은 것도 마찬가지다.
분명한 것은 이로써 한국문학사에서 순수와 참여라는 이름이 활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논쟁이 한창일 때
이 씨는 김 씨를 향해 ‘서랍 속에 넣어둔 불온시’를 비판했다.
김 씨는 ‘시를 서랍 속에 넣어둔 이유’는
이 시들이 아직 세상에 자유롭게 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묻어두면 무슨 참여시냐?’는 힐책에
‘참여할 여건이 될 때 비로소 참여한다’는 답이었다.
문학은 문학으로서 순수해야 하기에 시대와 상관없이 세계로 나올 수 있다는 자와
문학은 문학으로서 참여해야 하기에 시대가 받아들일 상황에 나올 수 있다는 자가
논쟁을 계속했던 것이다. 한 가지 차이는 있었다.
순수는 문학으로 시를 세계에 내보자는 것이었고
참여는 온몸으로 시를 들고 세계에 진입하자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것 말고는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들 둘 사이에 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문학에 문외한인 내가
오늘 이 논쟁을 떠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 두 주제는 편향된 답을 모색하기보다
언제나 함께 가야 하는 주제가 아닌가 싶어서다.
오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랬다. 물론 답을 내릴 여력이나 마음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두 사람의 논쟁을 다시 꺼내서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순수이든 참여이든 아니 불온한 시이든
이 논쟁은 여전히 삶은 편향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운다.
다른 한 가지 사실도 분명하다.
삶은 온몸으로 부딪지 않으면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
온전한 자가 진실에 근접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에 근접하려는 자가 온전해진다는 것.
편견 같지만 이 씨의 순수는 언제나 스마트한 매끄러운 언어를 동반하려 하고, 김 씨의 참여는 언제나 뭉특한 거친 언어를 수반했던 것 같다.
그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유라면 그것이 그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이었던 것 같다. 그 둘 사이에 편향된 가치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유치한 것이다.
김 씨가 ‘시여 침을 뱉으라’고 말했다해서 그를 폄훼할 필요가 없다.
이 씨가 ‘장미밭의 전쟁’이라고 자기 논쟁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다고 해서
그를 존앙할 필요도 없다.
그 두 사람은 혼돈의 시대를 함께 살았고,
뒤엉킨 가치관을 온몸으로 부대끼면서
그렇게 자기 세계를 가꿨다.
순수와 참여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온몸으로 겪어내야 할 당위적인 행동일 뿐, 어떤 경향은 될 수 없다.
순수로써 참여를 제압하려 하고,
참여로써 순수를 억압하려 하는
갈라진 세계가 위험할 뿐.
아울러 정작 경계해야 할 것은
순수답지 않은 순수
참여답지 않은 참여
무엇보다
가장 위장된 순수참여는
인간에 대한 공정한 예의가,
법과 질서와 공의와 정의라는 가치가 왜곡된 상태로
결핍된 것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그 결핍된 가치를 읽어낼 수 없는
자기 편향으로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것이 문학이든 정치이든, 종교이든
다르지 않다.
문학에서 중요하고, 책임져야 할 자리는
시인, 작가보다
평론가다.
정치에서 중요하고 책임져야 할 자리는
국민보다
정치가이다.
종교에서 중요하고 책임져야 할 자리는
신앙인보다
사제다.
돌아보니 나는 종종
겉이 날카로운 이 씨의 글보다
속이 우묵한 김 씨의 삶에
한참 머물렀던 것 같다.
다시
절기처럼
그들의 생이 소환되는 세월이 돌아왔다.
시대는 달랐지만, 두 사람의 치열했던 논쟁은 무상하게 모두 흙으로 돌아갔다. 저 너머의 적막으로 한 사람은 느닷없이, 또 한 사람은 느릿하게 사라졌다. 빛과 어둠, 순수와 참여는 한 흙으로 섞였다. 달리 말하자면,
시인에게,
침을 뱉자고 외치던 김 씨의 절규도,
흙바람 속, 장미밭의 전쟁을 설파하던 이 씨의 수사도,
결국은 저 검은 안식으로 함께 들어섰다.
나에게 그들은 치열함으로 견인되는, 정돈된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그려낸 문학적 예술가라는 점에서 같은 자리에 세울 수 있는 문우다. 그들은 같은 뜻 다른 언어로, 모든 진리 투쟁은 궁극의 '공(空)'으로 나아가는 지난한 문학함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또한, 문학의 생은 그 지극한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자기 언어로 그려내주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보여준 논쟁의 불꽃은 화려하게 보였으나
그 아래 드리워지는 그림자는 깊고 아늑했을 것이다.
그들이 떠난 뒤 비로소, 다시 읽는 그들의 세계가
검은 안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소란했던 시대의 문장들을 문학의 사유로 되살려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온전한 자리,
그 안식의 심연에서
거침과 매끄러움은
비로소 하나의 씨앗으로 죽어, 끝내 싹을 낸다.
하여 나는 다시,
문학의 양단을 한 매듭으로 묶어 정리한다. 한끝은 온몸으로 부딪쳐 진실에 닿는 여행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 끝은 그 모든 부딪힘을 잠재우고 고요한 어둠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복원하는 과정이라고 말이다.
겨울 끝, 봄이 막 시작한다. 그들이 유산처럼 물려준 검은 안식의 품 안에서
내일 다시 깨어날 불온한 생(生)의 씨앗마저도
오늘 나를 따뜻하게 감싸줄 평범한 하늘의 은총이라는 생각을 가만히 보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