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울 미술관 개관 기념 퍼포먼스 <포옹>을 보고
“포옹은 차가운 관계의 문법 위에 새겨진 인간의 따뜻한 숨결이자,
타인이라는 우주와 격렬히 충돌하고 끝내 홀로 서는 단독자가 감당해야 할 가장 뜨겁고도 고독한 ‘몸의 문장’이다.”
1. 경계이자 통로로서의 몸
몸은 인간이 지닌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독자적인 우주입니다. 그것은 타인과 나를 구분하는 단단한 경계이자, 동시에 친밀한 관계를 허락하는 가장 내밀한 통로이기도 합니다. 지난 3월 21일과 22일,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은 개관을 기념해 퍼포먼스 시리즈 《호흡》을 선보였습니다. 그 가운데 오현택 안무의 <포옹>은 ‘몸’을 매개로 관계의 심연을 더듬어 들어간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치밀하게 설계된 배경음악과 다목적 홀에서 로비로 이어지는 유동적인 무대 구성은, 몸이 지닌 사회적·관계적 의미를 새롭게 비추어 보게 하는 뜻깊은 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2. 포옹: 위로에서 투쟁으로 변주되는 몸의 언어
공연은 퍼포머들이 로비를 유영하듯 오가며 관객들 사이에서 포옹을 연출하는 프롤로그로 시작되었습니다. 정해진 공연 시간인 오후 3시, 다목적홀에서는 몸과 몸이 맞닿는 하나의 평범한 ‘사건’이 펼쳐졌습니다. 어두운 홀을 가득 채운 음악과 조명 아래에서, 개인들은 서로의 온기를 건네며 조용한 위로를 나누었습니다. 홀 밖 기둥 사이에서는 마치 아름드리나무를 끌어안듯 서로를 다독이는 몸들이 있었고, 로비 한복판에서는 홀로 제 몸을 어루만지는 고독한 몸짓도 이어졌습니다. 한 사람에서 두 사람으로, 다시 또 다른 몸으로 번져가는 포옹의 확장은 관계의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드는 물결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깊어질수록 포옹은 다른 얼굴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한 접촉은 점차 거친 대결로 변모했고, 서로를 밀어내고 벗어나려는 몸싸움이 이어졌습니다. 엉키고 쓰러지는 몸들은 어느새 등을 돌리듯 대립했고, 두 사람의 갈등은 마침내 여섯 명의 격렬한 뒤엉킴으로 번져 누가 누구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혼돈의 장면에 이르렀습니다. 그 사이 음악은 정점을 향했고, 이윽고 다시 숨을 고르듯 가라앉을 무렵, 퍼포머들은 비로소 서로를 놓아주고 각자의 길로 돌아갔습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결국 자기 몸 하나를 이끌고 자기 길로 걸어가는 단독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공연은 그렇게, 하나의 포옹이 끝내 하나의 고독으로 되돌아가는 장면 속에서 웅장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3. 유동하는 공간, 흔들리는 관계의 거리
공연은 몸의 부드러움과 어둡고 단단한 공간, 복잡한 로비와 사람들 틈을 스미듯 흐르는 음악 사이에서 생동하는 몸의 실재(實在)를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시종일관 ‘역동적’이었던 퍼포머들의 ‘열정적’인 몸놀림은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유연하게’ 관람객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또 다른 관계의 결을 만들어냈습니다. 마치 잔잔한 수면 위에 갑작스레 파문이 일듯, 몸 하나로도 충분히 충만했던 고요하고 안정된 공간은 어느새 ‘끌어당기고 밀어내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공간은 더 이상 정지된 배경이 아니라, 퍼포머들의 움직임을 따라 ‘소용돌이치듯’ 살아 움직이는 장이 되었습니다.
관객들 사이까지 밀려든 퍼포머들의 격렬한 대립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공연의 일부가 된 듯한 ‘생생한’ 순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인위적으로 합을 맞춘 흔적 없이도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몸의 갈등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 이 공연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위태로운 접촉의 장면들을 쉼 없이 펼쳐 보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포옹’은 단순한 위로나 다정한 접촉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갈등과 대립, 때로는 갈라짐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서로를 껴안는 행위는 한순간 상대를 보호하고 다독이는 위로였다가도, 이내 상대를 붙들고 구속하는 압박의 형식으로 돌변했습니다.
따뜻함은 차가움으로, 차가움은 갈라짐으로, 갈라짐은 다시 상대를 붙잡는 무력처럼 번져갔습니다. 이 일련의 장면들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타인과의 친밀감이 과연 어느 거리에서 발생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어디까지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거부할 수 없게 되묻게 되었습니다.
4. 기술의 문법 위에 덧입혀진 인간의 숨결
이 작품의 연출적 의의는 서서울미술관이 자리한 금천구의 지역적 맥락과 함께 볼 때 더욱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IT 산업단지라는 장소성과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이라는 성격 속에서, 이번 퍼포먼스는 단순한 신체 움직임의 전시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운드와 조명의 공학적 설계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몸의 감각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무대를 효과적으로 조직해 냈습니다. 미술관 전체를 포위하듯 스피커를 통해 증폭된 퍼포머들의 거친 호흡과 손끝의 미세한 떨림은 관객에게 시각적 인상을 넘어서는 물리적 진동을 전달했고, 그로 인해 몸은 단지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떨리고 감각되는 존재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차가운 기술의 문법 위에 인간의 체온과 숨결을 덧입히며, 미래의 미술관이 지향해야 할 하나의 휴머니즘적 방향을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제시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히 흘려보내던 가장 원초적인 관계의 끈을,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되돌려 준 것입니다.
5. 갈증의 시대, 사라지지 않는 샘물로서의 몸
개인적으로 <포옹>은 사순절의 시간 속에서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사순절 다섯째 주를 지나며 마주한 이 공연은,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치며 몸을 내어준 인간 예수의 호소를 새롭게 떠올리게 했습니다. 누구 하나 포옹해 주지 않은 채 내쳐진 예수의 모습이 이 공연에 겹쳐집니다. 비단 예수뿐만 아니라 삶의 깊은 아픔을 지닌 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거창한 말이나 멀찍한 위로가 아니라,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건네지는 따뜻한 포옹일지도 모릅니다. 목마른 이에게 신 포도주를 건네거나, 혹은 위로를 가장한 조롱을 서슴지 않는 시대 속에서, 적절한 거리를 지키며 감싸 안아 주는 포옹은 실로 ‘사라지지 않는 샘물’과도 같은 위로가 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현대 현상학 철학자이자 몸의 지각을 통해 관계를 사유했던 메를로퐁티(1908~1961)에게 몸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지각의 중심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포옹은 몸을 ‘보는’ 행위가 아니라, 몸을 통해 서로를 ‘느끼는’ 행위입니다. 포옹 속에서 타인의 온기와 무게, 미세한 떨림을 감각하며 말보다 앞서는 하나의 언어를 경험합니다. 그것은 이성의 언어가 아니라 감각의 언어이며, 설명보다 먼저 수용과 용납을 실천하는 몸의 철학입니다. 나와 너의 경계가 잠시 느슨해지고, 분리된 두 존재가 서로의 떨림을 나누는 그 순간, 포옹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깊은 이해를 건네는 몸의 문장이 됩니다.
성서의 장면 또한 이 몸의 언어를 오래전부터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호세아가 전한 “내 팔로 안았음에도”(호 11:1-3)라는 고백이나, 신명기의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신 1:31)라는 모습은, 하나님의 행동 속에서 어느 순간 사랑은 말보다 몸으로 먼저 건네지는 위로였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에게도 사랑의 감정이 응축된 포옹은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정직한 위로의 행위였습니다.
6. 물리적 접촉을 넘어선 형이상학적 포옹을 향하여
이토록 강렬한 신체의 언어에도 불구하고, <포옹>이 '포옹'이라는 행위를 지나치게 물리적인 차원에만 국한하여 탐구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우리는 이미 디지털 관계망을 통해 물리적 거리가 무의미해진 시대를 살고 있으며, 때로는 몸이 닿지 않아도 마음의 결이 맞닿는 '살가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이 작품이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이라는 공간적 이점을 활용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 즉 형이상학적인 포옹의 순간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멀리 떨어진 가족들 사이에 영상 메시지나 SNS 스피커를 통한 비물리적 포옹의 효과, 또는 현장에서 호흡 소리의 증폭을 넘어, 관객과 퍼포머 사이의 데이터 흐름이나 심박수의 동기화 등을 시각화하거나, 혹은 물리적인 충돌 없이도 서로의 존재를 깊이 감각하는 '비접촉의 포옹'을 시도했다면, '포옹'이 지닌 관계의 심연을 더욱 다층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리적 신체의 한계를 넘어선 '보이지 않는 포옹'의 형상화야말로,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미래 미술관이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일지도 모릅니다.
7. 봄 햇살처럼 따뜻한 선물을 받은 날
이번에 관람한 <포옹>은 기계적인 소외와 멀어진 거리감에 익숙해진 우리를 다시 서로의 곁으로, 가장 가까운 자리로 이끌어 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따뜻한 봄의 햇살이 가득한 날, 인간이 지닌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독자적인 우주가 조금 더 넓어진 선물 같은 봄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