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매진>제주에 가면ㅡ제주 4.3희생의 날

신앙과 이념의 폭력에 희생당한 이들을 기억하는 날

by 푸른킴

제주에 가면
산지등대에 서서
아름다운 석양아래
하얀 불 켜지는 제주항을 내려다보곤 한다.
고요한 먼바다를 내려다보고
길을 걸어 팔각정에 올라
억지로 바다 뒤로 숨으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해를 바라보곤 한다.
사라봉 넘어 별도봉으로 이어진
그 생존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현무암 아름다운 바다는 그날처럼 살아있고
그 바다 정원삼아 오밀조밀 살았던 사람들
느닷없는 화마에 형체도 없이 사라졌어도
기억의 터 오롯이 살아있는 곤을동 마을.

사라져야 할 이유가 왜 죽음이어야 했는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 마을 어린아이와 나이 든 어른과 집안 살림 도맡았던 여인이
낮과 밤이 한 두 번 바뀌는 사이에 바람처럼 스러졌다는 것을
바다는 쉼 없이 오가며 중얼거린다.
길을 걷는 이 발 끊은 지 오래지만,
마을은 돌부스러기 속에서도 기억의 토포스로 아직 살아있다.

제주에 가면
맑은 에머랄드 빛 살아 숨 쉬는 함덕바다 돌아 서우봉에도 오른다.
오름 중턱 허리를 휘감아 난 산책로 따라 걷다가
조랑말 한적하게 경계서는 검은 숲길로 들어서고,
다시 봉우리 위로 숨차게 올라 하늘을 만나고,
다시 유채꽃 흐드러진 길 끝에 서서
더 넓고 푸르러진 바다 내려다본다.

그 옛날 저 절벽 어딘가에서
동백꽃잎처럼 떨어진 북촌 마을 사람들이
오늘도 파도에 밀렸다 쓸렸다 할 것 같다.
그 밤 서우봉 아래 북촌은 그렇게
숨은 자들과 찾는 자들 사이에 끼여
한낮 친구가 한밤 죽음전령으로 밀어닥치는 공포에
잠들지 못하고, 숨을 쉬면서도 죽어가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제주에 가면
절물을 향해 잘 닦인 길을 따라 봉개동 마을을 지난다.
그 길에 한 교회가 있어
일부러 차를 내려 방문하고 싶다가도
마음은 늘 접어두곤 한다.
그래도 그 지나는 길에
옛 역사를 지나친 적은 없다.
토벌의 선전을 위해 함명교회라 이름 지어졌던
이 교회는
한라산 중산간 마을이 불타오르고, 사라질 때,
토벌대의 살상의 전략 위에 생겨났다.

끝내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그 슬픈 이야기를
기도 속에서도 담지 못한 채 마음에만 묻어두어야 했던 이유였다.
결국 ‘봉개’라는 이름 되찾아
옛 태생적 한계를 넘어선 삶으로,
봉개교회로 소생했다.
어쩌면 그 아픈 이야기는 교회밑바닥에서
숨 쉬는 씨앗으로 남아, 결국 꽃을 피웠다.

잠시 숨고르고 나면
이제는 누구라도 힘들이지 않고
마음 편히 찾을 수 있는
4.3 평화공원 지나
장생의 숲길을 휘돌아 절물오름에 올라
지긋한 한라산을 올려다보고
중산간 아래 바다까지 내려다보면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만나는
저 바닷물결 5km, 그 산과 바다로 경계 지워진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섬 어디는 행복한 땅이었을까 싶다.

제주에 가면
그 죽음의 터에서도
동백 찬란하고 유채 화사한 벌판은 여전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땅에서
그날 토벌대는 무슨 이유로,
무장대는 어떤 연유로
낮과 밤을 교대하며
바다와 바람을 벗 삼아 살갑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증오의 폭력으로 분풀이를 했을까.
이유를 물어야 하고 답을 들어야 한다.
사과해야 하고, 몸 안팎으로 보상받아야 한다.
시인 이산하의「한라산」(녹두서평 1, 1987)이 아니라도,
소설가 현기영 님의『순이삼촌』(창작과 비평, 1978)이 아니어도,
소설가 황석영의 의『손님』(창비, 2001)이 아닐지라도
올레를 걷기만 해도, 바다를 보기만 해도,
한라산을 오르기만 해도, 오름을 내리기만 해도
총과 죽창무기든 자들 앞에서 맨손으로,
오갈 데 없이 방향을 잃은 채 갇혔던 이들,
삶이 멈춰버린 이들의 생명에 대한 공포를 모른척하지 않을 수는 없으리라.

제주에 가면
여기가 4.3의 터라 하고,
저기가 그날 흔적이라 한다
돌아서면, 아픔이고, 마주하면 슬픔인데
여기에 표지를 세우라고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
그 길 숱하게 걸어보니
아무래도 발 닿는 곳 모든 제주는
'사삼섬'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일흔여덟 해 지난 오늘,
여즉 그날을 온전히 기념할만한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백비는 쓰러진 채 이름 없이 누워있고,
아직도 국가는 오래전 사과 한 마디 유물처럼 보여주고 뒷짐 진 채,
겨우 손 내미는 사이
그날 서북청년단은 물론이고,
그들을 떠밀었던 이들은 아직도 정당한 척 침묵한다.

제주에 가면
나는 멋진 카페와 아름다운 풍경과
맛 좋은 먹거리를 찾아 나서는 여행을 늘 즐긴다.
덧붙여 이 모든 즐거움의 뿌리에
폭동도 아니며, 민중항쟁도 아닌
어쩌면 이유 없이 ‘희생’당한 땅의 사람들
‘아픔’이 새겨 있을 테니
나는 나의 여행이 끝까지
‘제주 4.3 희생’의 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이 날이 있었다는 것을 지나치지 않고
가볍게라도 기억하는 것으로
나의 작은 책임이나마 다하려고 할 뿐이다.

*사라진 마을 곤을동 터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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