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매진 Narratimagine-사도들의 길, 우리의 걸음
데오빌로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어쩌면 ‘땅끝까지’는 저 먼 나라가 아니라 인간이 가장 하찮게 여겨지는 땅, 창조주의 의지를 안다고 하면서도 자기 선택대로만 살아가는 땅,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무시하는 삶을 살아가는 땅, 결국 데오빌로가 사는 이 땅, 여기일 수도 있겠구나. ‘저기, 거기’일 수도 있을 거고. 결국이 우주 전체가 ‘그 땅’일지 모르겠네. 자기 집이 곧 그 땅일 수도 있을 것이고, 머릿속에 떠도는 저 상상의 나라도 그 땅일지도, 그런데 거기서 증인이 되라고?’(#11. 끝부분)
데오빌로는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일을 체계와 분석으로 접근합니다.
아무리 간단한 일이라도 인과관계가 맞지 않으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리기 전, 이해부터 하려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자기 삶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버텨왔습니다.
그때 마음을 쉽게 내놓거나, 감정을 가볍게 드러내면
곧바로 날카로운 화살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자기를 방어하려면 이성적이어야 했고,
모호하거나 피상적인 주장은 대면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자신에게 뭔가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래 굳어진 사고방식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땅끝’과 ‘증인’이라는 말 때문입니다.
게다가 ‘땅끝’이 저 먼 어느 오지만이 아니라 바로 ‘자기 발아래’도 포함된다는 것은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연듯 데오빌로는
‘Nowhere는 어느 곳인지도 모르는(No Where) 것에서 바로 여기로(Now-Here)’라는
경구를 떠올렸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구도 사실, ‘알 수 없는 곳으로 간다는 말은
곧 지금-여기’라는 말과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증인’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법정에 서는 일이 그들의 사명같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치열하면 법정에 서는 것이 문제일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달리 보면, 그 말은 뭔가 알고 있는 사실을
법정에 선 심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준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말하는 증인은 열정의 문제이지
지식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적 깨달음은 머리로 오는 것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가슴을 지나 손끝과 발끝에 이어지느냐는
새로운 궤도를 가질 것입니다.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L이 보내온 두 번째 편지의 앞부분 겨우 몇 개 구절인데도
그 내용은 상상 이상으로 마음을 역동시킵니다.
결국, 땅끝과 증인은 불가분의 관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의문은 여전했습니다.
‘신이 위대하다면 그가 직접 해도 될 일인데 굳이 왜 증인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달리 보면, 이런 모호한 화법은 어쩌면 제자들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이스라엘의 신이 행하는 통치방식은
거의 인간의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는 역설도 생각했습니다.
신의 의지를 인간의 선택으로 실현하는 파라독스말입니다.
편지를 잠시 덮었습니다.
데오빌로는 이 편지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강력한 흡인력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선생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그 비이성적인 사건으로부터
제자들에게 일어났을 다른 이야기들이 점점 더 궁금해졌습니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책상을 한 바퀴 가볍게 돌아
책꽂이 한쪽에 두었던 작은 테이프를 하나 꺼내 들었습니다.
언젠가 L이 보내주었던 노래 모음집이었습니다.
그중에서 한 노래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노래를 들었습니다.
‘성령이 강물같이 흘러 사람에게 닿았다’라는 가사가
단조로운 곡조에 실렸습니다.
오늘따라 마음 깊은 곳까지 물 흐르듯 다가옵니다.
아예 몸 길을 따라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때와 시기’도 모른 채 막연히 기다림 속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증인의 역할을 위해
그 작은 방에 모여 있었던 그들을 가만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왜 그런 기다림의 고통을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었을까?’
아마도 그들은 도피자가 아니라 바로 여기를 그들의 자리,
'당신들의 자리'로 알고 버텨냈던 사람들일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슬쩍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습격하듯 조금 딱딱한 바람이 온몸으로 밀려들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급히 창문을 닫았습니다.
순간 그의 뇌리를 스쳐 가는 생각하나.
'그러고 보니 그들에게는 '떠남'과 '새로운 출발'은
늘 같은 선상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다만 그들이 '떠난 자'의 삶과 이야기를
때와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기억할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