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외
의사가 암이라고 결정을 내렸으니 그다음 해야 할 일은 병원 원무과로 가서 중증 등록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웃음이 났습니다. 말이 그렇단 것이 아니라 진짜로 웃음이 났습니다. 내가 암환자라는 걸 15분 전에 알게 됐고 여전히 암을 실감할 수 없는데, 앞으로 5년동안 내가 중증환자일 것이라는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니.<잠시만요, 조금 있다가 마저 슬퍼하시고 현실을 직시하세요>도 아니고, 왜냐고 따져보지도 못하고 얼떨결에 암환자가 된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됐습니다.
원무과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옆의 아저씨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보험에 필요한 서류 어쩌고 몇 장 어쩌고 하는 게 들렸습니다. 나도 내가 암보험을 들어놨던가 하며 들어놓은 보험을 셈해봤습니다. 보험을 따지고 있는 거야 말로 어이가 없었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를 떼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하루 만에 해결이 되지 않아 이 병원 저 병원을 왔다 갔다 해야 할 수도 있으니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는 혹시 몰라 번호표를 하나 더 뽑고 생각이 난 김에 보험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너머로 보험사 직원의 명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내가 금방의 일에 대해 설명하자 보험사 직원응 목소리를 솔쯤에서 미쯤으로 낮추며 말했습니다.
“아휴 고객님 놀라셨겠습니다. 완치되시길 기원합니다. 가입하신 보험 상품 확인해보고 요청드릴 서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나도 덩달아 목소리를 깔며 말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또 웃음이 났습니다.
이 와중에도 보험이 적용되네 안 되네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나는 꽤 이성적인 사람이었나 봅니다.
어쩌면 정신 못 차리고 슬퍼하기 전에 현실적인 문제로 정신 차리게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원무과와 보험사의 전략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신발도 벗지 않고 그대로 현관 앞에 드러누웠습니다. 내내 곤두서 있던 긴장이 식으면서온몸이 나른해집니다. 나는 암환자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