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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 Lisbon - Porto

22 Mar 31

by LUX

유럽을 몇 차례 방문하고 살아봤음에도 포르투갈은 왜인지 갈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모처럼 만의 휴가를 앞두고 망설임 없이 리스본행 비행기를 끊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고민에 봉착했는데, 돌아오는 항공편은 어디서 출발할 것인가였다. 휴가를 일주일 정도 얻었고, 포르투갈에 유명한 도시는 다 가보는 게 좋겠지? 싶어서 돌아오는 항공편은 포르투 출발 런던 도착으로 정했다. 고민이라고 할 것도 없는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는 내게 스페인과 비슷한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그들의 국기에 나와있는 '빨강 & 초록'처럼 뭔가 강렬한 인상의 국가. 어떤 곳일까 호기심 한 아름 안고 비행기에 올라탄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안전벨트 사인이 켜지며 착륙 방송이 들렸다. 착륙에 맞춰 등받이를 똑바로 하고 닫아두었던 창문을 여는 순간, 구름에 해가 가려 지상을 비추는 빛이 없음에도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는, 나를 반기는 주황 지붕들이 인상적이었다.


역시나 내 예상과 비슷한 곳이겠구나. 하며 짐을 챙겨 공항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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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로 향하는 길, 나를 마중 나온 건 주황색과 갈색 건물들이 아닌, 분홍색과 하늘색, 하얀색이 뒤섞인 알록달록한 건물들이었다. 게다가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노란 트램도 눈에 띄었다. 트램은 유럽에서 흔한 교통수단 중에 하나지만, 포르투갈의 트램은 언덕을 오르는 것도 있다는 것과, 누가 봐도 연식이 오래된 것 같은 트램이 운영 중이라는 게 특징이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가는 길이 그리 지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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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골목골목 사이에 위치한 숙소에 힘겹게 짐을 내려놓고 다시금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내가 여행을 가면, 아니 해외를 가면 어느 곳이든 유명 관광지에 공사하는 곳이 꼭 있었는데 리스본도 역시나였다.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제법 익숙해진 일이라 크게 마음에 두지 않고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여행을 가면 아침 일찍부터 조식을 먹고 밤늦게 까지 몇 만보를 걷는 한국인답게, 볼 것도 느낄 것도 - 내 예상을 와장창 무너트린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비롯하여 포르투갈 사람들의 모습 등 - 많은 이곳에서 나는 시간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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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잔뜩 깔려 있어서 날씨가 안 좋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맑게 갠 하늘에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다. 현지에 가면 꼭 현지 음식을 먹는데, 포르투갈은 섬나라에 살면서도 해산물이라고는 피시 앤 칩스 밖에 먹지를 못한, 해산물에 목마른 내게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 풍경에 정신이 팔려 사진을 찍다가 3시 브레이크에 늦은 점심 먹을 곳을 놓친 나는, 구글 맵 리뷰를 통해 별점 4.1/5 + 1000개 이상의 호평을 가진 식당을 발견했다. 마침 근처에 4/25 다리도 있어서 시간 강박과 계획 강박에 시달리는 내게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식당 앞에 놓인 빨간 자전거와 뒤에 잔뜩 서 있는 야자수들. 그리고 불어오는 바다 바람. 짠 내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야외 테이블에서 느긋한 식사를 즐기는 내내 나를 더 설레게 만든 모든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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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4/25 다리까지 걸어가는 중에도 주변에 널린 이색적인 풍경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대부분 낮은 건물, 생각보다 깨끗한 거리, 곳곳에 놓여 있는 많은 식물들과 평화로운 분위기. 건널목이 없어 돌고 돌아가는 길이 힘들기는 했지만 볼거리가 가득해 지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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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교통 + 입장권이 한데 엮여 있는 '리스보아 카드' 24시간 권을 이용해서, 4/25 다리 전망대로 향했다. 대게 붐비는 관광지와는 다르게 나와 친구를 포함에 그곳을 올라가는 사람은 겨우 5명. 26층 높이에 다 달아 저 멀리 놓여 있는 수평선을 바라봤다.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불어오는 바람은 더 거세졌지만, 분위기에 취해 추운 줄도 몰랐다. 옆으로 지나가는 차의 클락션을 배경음악 삼아 멍하니 서서 지는 해를 바라봤다.


다섯 명의 우리는 서로 사진도 찍어주기도 하고, 서로 놀리기도 했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내게 26층 높이에서 바닥이 훤히 보이는 곳에 서서 사진을 찍는 건 정말이지 큰 도전 중에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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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전망 마감 5분 전, 다리를 나와 다시 걸었다. 이 근방에는 트램도, 버스도 없었기에 어느 정도 걸어가야 했다. 해가 완전히 모습을 감췄지만 하늘은 여전히 보랏빛이었다. 이상하지, 유럽은 무슨 연유로 하늘의 색이 이리 다양할까. 완전히 보라색이라고 하기 힘든 오묘한 색을 머리 위에 두고 우리는 가로등 빛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점심과 함께 마신 와인이 이제야 올라오는 걸까. 취한 것만 같은 기분에 발걸음에 흥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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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흥은 숙소 근처로 갈 때까지 계속 됐다. 무서울 법도 한 그라피티 가득한 지하도를 지나면서도, 완전히 검게 물든 하늘을 위에 두고도 나의 신남은 끝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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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 오면 다들 간다는 그 엘리베이터. 시내 중심에 있는 그곳. 기나긴 줄을 보고 우리는 내일을 기약했다. 물론 그다음 날도 오르기를 포기했지만. 대신 우리는 복작거리는 시내 중심을 좀 걸어보기로 했다. 장 보러 가는 겸.


어라, 이 냄새는.

친구와 나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군밤이다! 거리 곳곳에 놓인 군밤장수의 모습. 다만 우리의 군밤과는 그 모습이 달랐다. 하지만 냄새는 너무도 똑같은걸. 길에 퍼져있는 구운 밤의 냄새를 따라 걷던 우리는 '군밤 파는 저 행위가 한국에서 왔다, 아니다.'를 주제로 토론 한 마당을 펼쳤다. 아직도 그 토론의 끝을 맺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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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이었다. 11월, 핼러윈이 끝남과 동시에 모든 공간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유럽. 그중에서도 가톨릭이 국교는 아니지만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가톨릭이라는 포르투갈 역시 그랬다.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길을 지나가다 문 앞에 서 있는 산타클로스를 보고 소원을 말했다. 선물은 됐고, 포르투갈에 다시 오게 해달라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 땅이 맘에 들기 시작했다. 산타클로스 가게 바로 옆에 꽃 가게가 있었다. 북쪽 유럽에 비해 많이 따뜻한 리스본이라 그런지, 아니면 아프리카와 가까워서 그런지 꽃의 종류가 다양했다. 이름 모를 꽃이 뿜어내는 향과 군밤 냄새가 적절하게 섞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정말이지 이국적인 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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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유럽에 살러 왔던 때와 조금 다른 점은, 돈을 벌어서 금전적인 여유가 있다는 점이었다. 나이가 들어 체력이 떨어진다는 점과 금전적 여유가 반비례를 이루는 게 조금 안타깝지만.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몹시 피곤했고 대충 장을 봐서 와인과 함께 먹기로 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지만, 정말 너무 힘들어서 간단하게 미트볼 파스타를 해 먹기로 했다. 친구가 씻는 동안 파스타를 완성하고 담아냈다.


문제는 와인이었다.

코르크 마개를 열려고 하는데 왜 이리 열리지 않니. 도대체 왜 그러니. 말도 걸어보고 힘을 주어 빼보기도 하고 별의별 짓을 했지만, 이미 체력을 소진한 우리는 그냥 코르크 마개를 눌러 와인 병 안에 넣고 마시는 걸로 합의를 봤다. 와인에 반쯤 젖어 둥둥 떠다니는 코르크 마개의 모습은 마치 리스본의 분위기에 젖어 둥둥 떠다니는 우리의 모습과 같았다. 그렇게 리스본에서의 첫날밤은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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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일찍 움직였다. 리스본을 본격적으로 느끼고 눈에 담아볼 수 있는 날이었다. 날씨가 흐릴 거라고 아큐웨더가 말해줬는데, 생각보다 맑아서 트램을 타러 해안가로 가는 걸음이 가벼웠다. 아침에 간단하게 마신 커피와 빵도 좋았다. 알록달록한 건물이 오늘도 나를 반기는 것 같아 마주하는 건물들에 눈으로 인사했다.


안녕, 지난밤 잘 보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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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나와서 그런 건가, 관광지라서 그런 걸까. 비좁고 오래된 트램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마치 다들 행선지가 같다는 듯이 말이지. 수도원으로 오는 내내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한숨 쉬었는데, 그건 약과였다. 도착하니 이 앞에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훨씬 배로 많았다.


이 수도원이 영화 해리포터 학교? (아마도) 모티브가 되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관광객이 많았던 거다. 들리는 대화로 유추해 보건대, 독일과 프랑스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들 사이에 섞여 입장을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먹구름이 밀려왔다. 맑았던 하늘은 어느새 회색 빛으로 물들었고, 아쉬움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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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니무스 수도원은 굉장히 화려했다. 건물 외관도 화려했지만, 내부에 스테인드글라스와 천장화는 정말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이었다. 날이 흐려져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해 들어오는 빛이 없어 아쉬웠지만, 종교가 없는 나도 홀리 해짐을 느낄 수 있던 곳이었다.


수도원 앞에는 그 유명한 에그타르트 맛집 - Pasteis de Belem 이 있었다. 나는 스타벅스로, 친구는 에그타르트 가게로 향했다. 시간이 없었기에 대충 길거리에서 점심을 때우자는 결론이었다. 에그타르트는 정말 맛있었다. 예전에 마카오에서 먹었던 포르투갈 식 에그타르트가 최고였는데, 직접 와서 먹으니 더 맛있었다. 마카오를 떠올리니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이 떠올라 찝찝하기는 했지만, 우선 입에 담기고 있는 이 설명 못할 맛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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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트램을 타고 벨렘탑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 역시 사람이 몹시 많았다. 리스본은 문화재 보호 차원인지 일정 인원이 들어가면 일정 인원이 다시 나올 때까지 관광객을 입장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무한 기다림에 들어갔을 때, 그 앞에서 바이올린 버스킹을 하던 분을 발견했다. beauty and the beast, 미녀와 야수 ost를 연주하시는데 너무 감미로워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한 줄도 몰랐다. 뒤이어서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델의 노래를 연주해 주시는데 줄을 벗어나 그 앞에서 감상하고 싶을 정도였다.


벨렘탑은 신기하게 우중충한 이 날씨와 너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한 성인을 기릴 겸 요새로 지었다고 했는데, 누군가를 기리는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유달리 심하게 부는 이곳 바람 때문일까. 씁쓸함이라는 감정과 참 잘 어울리는 문화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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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앞에 있던 와인을 팔던 트럭. 시간적 여유가 있더라면 찬 공기를 마시며 따뜻한 와인을 한잔하고 싶었다. 이래서 여행 스케줄은 여유롭게 짜야하는 것을. 뼛속까지 J인 내게 와인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와인이야 저녁에 마셔도 되는 거니까. 물론 그 분위기와 거기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다르겠지만. 아쉬움이 남아 꽤 한참이나 앞에 서서 고민했더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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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침에 트램을 탔던 해안가, 코메르시우 광장 쪽으로 왔다. 언덕에 올라 리스본을 보려면 이곳에서 골목골목을 지나 언덕에 올라야 했다. 날이 춥지 않은 탓에 우리는 젤라토를 먹기로 했다. 걸으면서 먹을 수도 있지만 광장에서 사람 구경이 하고 싶었다. 고양이들이 창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과 풍경을 구경하는 게 괜한 게 아니다. 정말 재미있거든. 광장 왼쪽에 위치한 가게 테라스에 앉아 피스타치오 젤라토를 먹었다. 부른 바다 바람에 실린 짭조름함이 젤라토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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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적지는 '산타루치아' 전망대. 날이 맑으면 정말 예쁘다는 말에 등산을 결심했지만, 오르는 내내 돌아갈까 고민했다. 끝도 없는 언덕을 오르고 올라도 전망대는 보이지 않고, 역시 좋은 걸 보려면 그만한 대가로 내 힘을 받쳐야 하는구나 깨달았다.


전망대로 오르던 길에 보았던 감귤나무가 신기해서 사진 찍었다. 얘네도 귤을 먹나? 오렌지만 먹지 않을까 싶었는데. 귤은 뭐라고 부를까? 호기심이 일었다.


호기심도 잠시, 나는 전망대를 위해 다른 대가를 받칠 뻔했다. 바로 내 지갑과 여권. 가방이 닫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열려 있던 것. 게다가 가방을 뒤로하고 있어서 정말 제대로 털릴 뻔했는데, 친구가 수상한 사람이 내 뒤로 오려는 걸 보고, 그 사람의 시선이 내 가방에 꽂힌 걸 보고 곧바로 내 뒤로 와서 가방을 닫고 그 사람을 경계했다. 그 덕에 런던에 내 여권을 들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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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언덕을 올라 드디어 도착한 전망대. 날이 아직 흐려 있어서 어두침침했지만, 전망대가 아니라 작은 공원 같았다. 분수도 있고, 벤치도 있고, 화단에 꽃도 가득하고. 전망을 굳이 보지 않아도 이미 입구에서부터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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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은 우리를 농락하듯 풍경을 감상하다 카메라를 들면 몰려왔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붉은 지붕들을 보고 싶었는데. 쉽게 허락되지 않는 풍경인가 보다 하고 아쉬움을 달랬다. 우리가 열심히 올라왔음에 작은 보상을 하듯이 구름 틈 사이로 빛이 내려왔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건물들, 푸른색과 붉은색의 조화.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한국에서도 길을 가다가 녹색, 붉은색, 파란색, 밤색이 수를 놓으면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는 나다. 그래서 가을 되면 사진 첩에 풍경 사진이 가득한걸. 여기서라고 다르지 않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셔터를 눌렀다. 정말 쉴 틈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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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하늘이 빛을 선사했던 그 순간.

이 잠시를 위해 오늘 이렇게 언덕을 오르고 또 올랐구나, 정말 잘했다 싶은 순간이었다. 자유롭게 이곳의 경치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참 외국은 바삐 사는 우리와 다르게 자유와 여유가 눈에 보이는 곳인 것 같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산타루치아 전망대 근처에 있는 드 솔 전망대까지 가기로 했다. 언덕 위를 또 누비고 걷는데 비가 쏟아졌다. 그래도 거의 다 와서 멈출 수 없다, 하는 마음으로 걷고 또 걸었는데 도무지 나아갈 수 없어서 근처에서 비를 피하다 비가 좀 잠잠해졌을 때, 알 수 없는 정말 계획에 없던 길로 언덕을 내려왔다. 하산 길에 언덕을 내려가주는 엘리베이터도 있었는데 그게 참 흥미로웠다.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을 찍지 못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언덕이 여기저기 있는 포르투갈 사람들이게 그런 엘리베이터는 일상이겠지. 평지에 사는 내게는 흥미로운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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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질 수 없는 와인, 그중에서도 화이트 샹그리아.

올리브 및 감자와 함께 구운 대구요리,

해산물이 잔뜩 들어간 빠에야와 비슷한 해물밥.


우연히 발견한 이 가게가 리스본 우리의 최애 가게가 될 줄은 몰랐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obrigado' 고맙다는 인사뿐인데도 친절하게 응대해 주는 식당 직원분들 덕에 음식을 더 편하게 즐기며 리스본에서의 둘 쨋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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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째 아침이 밝았다. 거의 매일 3만보씩 걷다 보니 카메라 앨범에는 세상 현실적인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냥 나라는 사람과 이곳의 존재만 들어있으면 된다. 보정은 필요하면 나중에,라고 생각하며 마구 찍었고 결과적으로 보정은 하지 않았다. 그냥 카메라에 담긴 대로 추억하고 싶어서. 추억은 원래 시간이 흐를수록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사진을 통해서 사실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가 분명히 있다.


씩씩대면서 광장을 가로질러 기차를 타러 향했다. 원래 타려던 시간보다 1시간 늦어서 그런지 기차에는 자리가 없었고, 결국 서서 신트라로 향했다. 근데 이제 문제는 성까지 가는 버스가 성을 안 간다는 것. 그래서 허겁지겁 내려서 페나성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탑승했다. 성은 산 높이 깊숙한 곳에 있는데 차마 밀려오는 멀미를 참을 수 없었다.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포기할까 백번 고민하며 산을 더 올랐고 마침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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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곡산장 아냐?

해가 뜨면 정말 예쁜 곳이라던데. 내가 갔을 때는 안개에 갇힌 정말 귀신이 나올법한 곳이었다. 입장료 따로 성 내부 입장료 따로라 우리는 그냥 외관만 구경하기로 했다. 이곳 역시 관광지여서 그런지 사람이 어마무시하게 많았고, 긴 이동거리로 몸은 지쳤으며, 머리와 옷은 비바람과 안개 때문에 축축하게 쳐져버렸다. 몸도 무거운데 옷 때문에 더 무겁고 얼굴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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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멋진 풍경이 보인다고 했는데, 아니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볼 수가 없었고 이곳이 얼마나 높은 곳인 이 체감도 안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천국으로 가는 길 같다고 했다. 정말 이곳에서 추락하면 죽는 건 사실이니까.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배경으로 양손을 벌리고 그 옛날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봤던 한 장면을 재현했다. 그것 기찻길이었지만, '나 돌아갈래!'라고 박하사탕이라고 설경구 배우가 나오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왜 그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날씨가 좋았던 아침 리스본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아니었을까. 신트라에서 찍은 모든 사진이 저렇게 머리가 잔뜩 쳐져 있고, 얼굴에 잔뜩 달라붙은 머리 때문에 앞모습으로 찍은 사진이 없어 속상하다. 구글에 '신트라 페나 성'을 검색하면 정말 예쁜 풍경과 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도 그걸 기대하고 간 건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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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을 하자면 우리는 포르투갈 여행에서 계획했던, 알아본 식당을 단 한 곳도 가지 못했다.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지. 신트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가려던 식당이 문을 안 열어서 그 주변에 아무 식당이나 들어갔다. 비바람에 지친 우리는 몸을 뽀송뽀송하고 따뜻하게 해 줄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어는 정말 부드러웠고, 생선 튀김은 피시 앤 칩스보다 배로 맛있었으며, 토마토 라이스도 입에서 살살 녹았다. 너무 맛있어서 한 입 먹고 감탄하고 또 한 입 먹고 감탄하며 그릇을 싹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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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고 긴 버스 여정과 멀미를 견디며 도착한 곳은 호카곶, 유럽 가장 서쪽에 위치한 곳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바다를 너무 사랑하는 나는, 멀미로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도착함과 동시에 텐션이 치솟았다.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걷기도 힘든 곳이었지만, 이곳은 뭐랄까. 영국 세븐 시스터즈와 멜버른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반반 섞은 곳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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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점점 걷혀가고 저 멀리 지평선 위로 보이는 푸른색에 내 마음이 더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탁 트인 바다와 아찔한 절벽 그리고 부는 바람. 모든 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것들이었다. 그 옛날 포르투갈이 항해의 시대를 평정했을 당시, 이곳이 세상의 끝인 줄 알았다고 한다. 포르투갈에, 리스본에 온다면 제발 꼭 방문하라고 모두에게 추천한 곳이 바로 이 호카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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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모두 걷힐 때까지, 거의 몇 시간을 이곳에서 그냥 서서 저 멀리 수평선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탁 트인 시야와 내가 좋아하는 색들로 가득한 곳을 내 눈에 그리고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차고 거센 바람도 모두 맞고, 이내 바다 내음이 코끝에 밸 정도로 그렇게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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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카곶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카스카이스로 이동했다. 해가 질 때쯤 도착한 이곳은 정말이지 맑고 뽀송뽀송한 날씨로 나를 반겨주었다. 바다 근처에 있지만 바람이 그리 불지 않고 떨어지는 볕이 매우 따뜻한.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바닷가로 달려가고 싶었는데, 계속되는 이동에 지치기도 했고 핸드폰 배터리도 충전해야 해서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갔다.


아이스크림 가게는 되게 유명한 곳이었다. 아이스크림이라고 하기보다는 젤라토. 커다란 곰돌이 인형이 앞에 놓여 있었는데 그 인형과 사진도 꽤 많이 찍었다. 가게에 들어서니 손님이 많은 게 딱 봐도 맛집이구나 싶었다. 가게 앞에 거대한 야자수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젤라토를 먹기를 몇 분. 곧 해가 떨어질 것 같아서 다급하게 걸음을 바닷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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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해가 한창일 때 바다도 아름답지만 해가 질 때의 바다는 더욱더 아름답다. 해가 떨어지며 바다에 반사되는 모습도 날마다 바뀌는 노을의 색도. 이곳에 노을은 주황색과 분홍색 그 사이 어딘가. 떨어지는 해를 붙잡고 싶었다. 조금만 더 머물다 가면 안 될까. 네가 하루 일과를 끝내는 모습이 누군가의 하루 끝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걸 안다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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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지 않아 밀려왔다 다시 멀어지는 파도가, 그리고 그 사이로 흩어지는 모래와 냄새, 소리 모두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바다가 주는 것들은 누군가에게는 다 똑같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글쎄 내게는 너무도 달랐다. 이곳의 바다는 솔직히 말해서 약간 비릿한 내음이 났다. 생선을 잡는 배가 잔뜩 묶여 있기도 했고, 글쎄 모르겠다. 아무래도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거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었다. 호카곶에서 들었던 거세고 빠른 소리와는 다르게 잔잔하게 다가왔다 멀어지는 파도가 나를 차분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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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마감하면서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도시에서 기계처럼 살아가며 그저 피곤에 찌들어 자고 일어나는 삶 말고, 하루의 마무리를 바다를 바라보며 할 수 있음에 감사해졌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에서 태어나 온통 주변이 바다인 영국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바다는 내게 가까운 곳이 늘 아니었다. 보면 이렇게도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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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하고 카스카이스를 떠나기 전, 바닷가를 따라 걸으며 기차역으로 향하다 멋진 광경에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묘한 빛깔의 카스카이스, 살면서 많은 바다를 경험했고, 렌즈에 담았지만 이런 빛의 조합은 처음이었다. 하얀 우유가 한 방울 떨어진 것 같은, 파스텔로 하늘을 칠한 것 같은 하늘이 내 앞에 펼쳐졌다. 감탄 말고는 한낱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잊지 못한 일몰과 함께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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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서 드디어 포르투로 가는 날, 기차역에서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때우는데 왜 비가 오죠? 비가 엄청 쏟아지지만 무사히 기차에 올라탔다. 포르투 여행은 친구 한 명이 더 추가되어 세 명이서 이루어질 예정이라 설렘이 더 가득했지만 내리는 비에 걱정 역시 가득했다. 아주 기나긴 기차여행 끝에 분명 오전에 출발한 것 같은데 오후에 포르투에 도착했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에서도 남쪽이라 춥지 않아서 핸드메이드 코트 입고 다녔는데, 포르투는 상대적으로 많이 위쪽에 있어서 추웠다. 포르투에 첫인상은 그렇게 흐리고 춥다, 그게 다였다.


리스본에서 포르투갈에 언덕은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만이었다. 포르투는 거대한 언덕으로 이루어진 동네였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는데 친구에게 얼마나 짜증을 부렸던가. 정말 미안했다. 언덕 때문에 이번 여행을 포르투갈로 정한 게 조금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리스본 숙소도 언덕 위라 힘들었는데 포르투 숙소는 더욱더 힘들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한숨 돌리고 바로 사과모드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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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친구가 가져온 짜장라면을 끓여 먹고 숙소를 구경했다. 숙소는 2층으로 되어있었는데 2층에 넓은 거실에 큰 소파와 TV 그리고 침대가 있었다. 온냉 모두 되는 에어컨도 있었고. 1층은 큰 식탁과 화장실, 주방, 침실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더우면 절대 못 자는 나는 1층 냉방에서 자기로 했고, 추우면 못 자는 둘은 2층에서 자기로 했다. 그렇게 합의를 보고 우리는 셋이 나란히 맞춘 목도리까지 목에 두르고 밖으로 나섰다.


아까도 추웠는데 역시 밤이 되니 더 추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절대 얇지 않았으니까. 더 추운 런던에서 왔음에도 이곳에 추위는 다른 의미로 새로웠다. 강바람이자 바닷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언덕을 하산하다 유명한 에그타르트 집이 보였다. 홀린 듯이 우리는 들어갔고 포르투에서 조인하게 된 친구가 쿨하게 결제한 덕에 맛있게 먹으며 언덕을 마저 내려갈 수 있었다. 다시 오를 생각을 하면 아찔했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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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잔뜩 젖어 있는 바닥 그리고 곳곳에 놓여 있는 가로등, 이 두 가지가 굉장한 분위기를 이뤄냈다. 여기가 포르투갈이라고 말을 해야 포르투갈인지 알지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길거리에 울려 퍼지는 자동차 경적 소리와 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파두 공연 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뤘다. 가을밤은 구슬퍼져 가는데, 젖은 길 위의 물웅덩이를 피하는 내 발걸음에는 흥이 실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펼쳐 들고 싱잉 인 더 레인을 듣고 싶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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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향한 곳은 상벤투 역, 역 내부의 사방에 장식되어 있는 벽화를 보기 위함이었다. 언젠가 걸어서 세계 속으로 에서 이곳이 나왔던 게 기억났다. 2만 개가 넘는 타일로 이루어진 벽화였는데, 아줄레주 벽화라고 한다. '아줄레주'는 작고 빛나는 돌이라는 아라비아어인데, '아줄'이 포르투갈어로 파란색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연이라고 하던데 신기했다. 대관식 모습, 전장의 모습 등 다양한 것들이 타일 위에 그려져 있었고 거대한 크기라 카메라 렌즈와 눈에 한 번에 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 그리고 기차역이다 보니 오고 가는 사람들과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에 치여서 오래 서서 보기가 힘들었다. 내일도 있으니까, 내일을 기약하고 우리의 최종 목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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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루이스 다리, 해가 떠 있을 때의 모습 - 해가 질 때의 모습 - 해가 진 후의 모습, 이렇게 세 번을 봐야 한다는 모 블로거의 말에 해가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춘 후에 먼저 찾아오게 되었다. 낮에 기차역에서 숙소로 이동하면서 보기도 했지만, 밤에 보니까 다리 위의 조명 그리고 건물들의 조명이 강에 반사되면서 그 모습이 마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을 연상하게 했다. 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카메라에 담기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 밤의 안타까움은 다음날 해 질 녘의 안타까움보다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이때는 알지 못한 채 포르투에서 첫날밤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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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자마자 창문부터 열었다. 와, 날씨 무슨 일이야! 너무 좋잖아! 신이 나서 2층에 올라가서 친구들을 다 깨웠다. 당장 일어나! 날씨 엄청 좋아! 공기도 상쾌하고 창으로 들어오는 볕도 너~무 좋았다. 친구들을 재촉해서 어제저녁에 숙소에 들어오면서 사온 요구르트와 빵 과일을 대충 먹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내가 날씨에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는데, 유럽에 살다 보니 그것도 영국에 살다 보니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독일에 살 때만 해도 아무 생각 없었는데, 왜냐면 날씨가 늘 좋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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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아래서 봤던 동 루이스 다리를 볼 수 있는 숨은 전망대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정작 다리 사진은 하나도 찍지 않았지만. 쨍한 햇빛에 반짝이는 적색의 지붕들, 중간중간 보이는 녹색의 키가 큰 나무들 그리고 그 위에 끝이 없는 맑고 푸른 하늘. 춥다고 느껴졌던 포르투가 맞나요? 더워서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야 할 정도였다. 이미 내 텐션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고, 따뜻한 온기를 만끽하며 포르투의 전경을 감상했다. 내가 좋아하는 알록달록한 색들이 내 시야에 한가득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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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 기숙사 계단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그 서점을 보러 가는 길, 어제 봤던 상벤투 역이 보였다. 밖에도 벽화가 있는 줄 몰랐는데.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여유롭게 젤라토를 들고 걷는 길,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포르투갈은 확실히 내가 방문했던 다른 유럽들과는 다르게 고유의 독특한 무언가가 있었다. 야자수나 온화한 날씨, 언어들이 스페인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건축물들은 아랍틱한 느낌도 있어서 독특한 장관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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렐루 서점, 해리포터 덕후는 설레기 시작했다. 긴 줄도 문제가 없죠. 입장료를 받는 게 웃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두면 서점 입장에서도 손해니까. 내부에서 사진을 정말 많이 찍고 싶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그 계단'은 크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로 사진을 찍기도 애매하고 구경을 충분히 하기도 애매했다. 캐리어 무게만 아니면 포르투갈어로 된 해리포터 - 혼혈왕자 (해리포터 책 중에 내 최애, 영화는 아즈카반의 죄수) 한 권 사 가고 싶었는데 사도 읽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정말 정신이 없어서 후딱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람이 적었더라면 다른 책들도 좀 보고 뭐라도 사가지고 나왔을 텐데,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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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나와 우리는 'Porto'라고 쓰여 있는 이 동상도 장식물도 아닌 조형물을 찾아 헤맸다. 위치가 자주 옮겨져서 관광객들에게 찾는 즐거움을 준다고 하는데, 사실 전혀 즐겁지 않았다. 왜냐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 앞에 있었고, 서로 찍겠다며 난리 치는 건 기본, 몇몇이 거의 전세를 내고 있었다. 나, 이런 거 못 참죠? 무례한 것들은 어떻게 혼내야 한다? 한국어로. 한국어는 발음이 세서 그냥 말해도 가끔은 욕같이 들린다는 동료들의 말을 믿고 아주 큰 소리로 다 비키라고 소리 질렀다. 적당히 해야지. 전세 냈냐고요. 가끔 이럴 때마다 서양 애들은 왜 본인들이 더 잘났다고 우월주의에 빠져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실제로도 아시아에 똑똑한 사람이 많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도 성적 탑을 찍는 건 아시아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이었다 (중국이 치고 올라온다는 말을 듣고 악착같이 했다. 절대 질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잡다한 모든 세상에 대한 지식이 많다, 기본 교육이 잘 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 그런 건 아니다.) 물론 서양애들은 소득의 격차처럼 학습의 격차가 커서 그렇다지만, 외국 살다 보면 정말 기본 지식이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매일이 낫 디사포인티드, 벗 서프라이즈! 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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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늦가을, 겨울이 오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날이 온화해서 그런지 피어있는 꽃들을 보고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단풍이라니. 영국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들이라 눈에 최대한 많이 담으려 노력했다. 이렇게 말하면 영국은 꽃도 안 피냐고 하겠지만 이 계절에 꽃이나 낙엽은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미 거센 바람에 낙엽은 다 떨어졌고 꽃은 지역의 위도에 따라 2~5월 사이에 잠깐 폈다 사라지는 것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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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해산물만 먹고 가겠다는 우리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 또 우리는 해산물 가게를 찾았다. 빠에야는 아닌데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저 해산물 밥은 포르투갈에서 그 어디에 들어가서 시켜도 성공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싱싱한 해산물과 짭조름한 양념. 새우 버터 볶음과 구이 사이에 있던 것도 와인과 함께 먹으니 껍질 까는 귀찮음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술술 들어갔다. 슬프게도 지금은 저 맛들이 생각나지 않지만, 그 당시 썼던 일기를 보니 굉장히 맛있어서 한 입, 또 한 입을 먹을 때마다 감탄을 했던 게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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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점심을 먹고 우리는 동 루이스 다리 옆에서 노을과 야경을 보러 출발했다. 끝도 없는 언덕에 숨이 턱턱 막혀왔지만, 뒤를 돌아 올라온 곳을 보면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강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놓인 길의 끝과 끝이 언덕과 강인 곳에 사는 기분은 어떨까.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가 강으로 뛰쳐 내려가게 될까, 일을 끝내고 해 가질 무렵에 맥주 한 캔을 사고 강가에 앉아서 한 잔 기울이려나. 언덕이 정말 불편할 수도 있지만 이곳만의 낭만을 사람들에게 선사하지 않을까, 하면서 등산의 힘겨움도 즐기기로 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내게 맨날 있는 일이 아니라면 더 즐겨야 하는 게 맞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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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보이는 저 아래 강가에서 꼭대기까지 올라와 동 루이스 다리를 지상철을 타고 넘어왔다. 우리가 막 도착했을 때 해가 지기 시작했는데 그 장관은 말로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저 계속 친구들과 감탄사를 연달아 쏟아냈다. 날이 맑을 때보다 구름이 살짝 끼어있을 때가 더 예쁘다는 지나가는 사람의 말에 그런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넋을 놓고 바라봤다. 해가 점점 내려앉을수록 짙어지는 색에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카스카이스에서 봤던 보라색의 노을과 또 다른 느낌의 노을. 불어오는 차디찬 바람에 코가 다 빨개지고 손이 다 얼었지만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하늘을 잠시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포르투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내겐 이 사진에 보이는 풍경이 되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이 도시에 내려앉을 때까지 우리는 멍하니 서서 이 장관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렇게 포르투갈 여행이 끝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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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추위와 한참 싸우느라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짐을 차곡차곡 싸고 에어비앤비를 정리한 후에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마지막 만찬은 역시 해산물. 숙소 근처 골목에 있는 식당 오픈시간 보다 일찍 가서 기다린 끝에 우리가 갈망하던 문어요리가 나왔다. 아, 화이트 샹그리아도 빠질 수 없지. 낮부터 거하게 술을 마시며 여행의 추억들을 꺼내었다. 맛있는 음식도 술안주로 좋았지만, 제일 좋은 건 역시 며칠간의 추억이었다. 끝도 없이 들어가는 술에 영국으로 가는 길이 걱정되었지만 아무도 붙잡은 술잔을 놓을 생각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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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은, 약간의 인종차별에 지친, 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흔히 있던 인종차별이 거의 없던 여행이었다. 포르투갈어를 못한다고 꼽을 주는 사람도 없었고, 동양인이라고 주문을 안 받는다거나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없었다. 미친놈 보존의 법칙상, 중국어나 일본어로 조롱하는 것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동양인이 흔한 곳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불편함도 두려움도 없던 일주일, 오히려 돌이켜보면 나를 그리고 우리를 환영해 주고 따스하게 반겨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게다가 그리웠던 해산물도 일주일 동안 충분하다 못해 넘치게 먹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매일 다른 하늘의 색에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일주일 내내 들떠서 보냈던 것 같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세계테마기행의 열혈 시청자인 나는 두 프로그램에서 포르투갈이 나올 때마다 호기심이 차올랐었다. 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미지의 세계였던 포르투갈은 내게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닌, 방문자들이 흔히 말하는 반전이 있는 곳이 되었다. 꼭 다시 방문해서 더 많은 포르투갈을 경험하고 느껴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한 달 살이도 해보고 싶다.


Ver você de novo!

See you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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