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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그리울 나의; London

22 May 31

by L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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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고 찍은 첫 사진 / 그 다음 날 뷰잉 시작

2019년 4월, 18년 하반기부터 준비했던 게 착착 진행되어 결국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런던행을 준비했다. 출국 날짜는 7월 29일, 제법 길어질 여정을 위해 친한 사람들은 만나고 가족과도 시간을 보냈다. 싱가포르도 다녀오고 내 '생일 주간'도 치르고.


2019년 7월 29일, 열 시간 넘는 시간을 날아 한국보다 9시간 늦은 (서머타임 8시간) 런던에 도착했다. 도착하기 전부터 영국의 날씨는 답이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내가 도착했을 당시는 아주 맑고 화창했다. 나를 반기기라도 하는 듯이. 하지만 '영국스러운' 날씨라는 의미를 바로 다음날 그러니까 도착한 지 이틀차에 알 수 있었다. 임시 숙소에서 머무를 수 있는 일주일 동안 수차례의 뷰잉을 통해 집을 구해야 하는데 비가 하루 종일 미친 듯이 쏟아졌으니까. 뭐, 그럼에도 집은 도착 하루 만에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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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던 카페 / 새벽 5시의 버스 정류장

방을 일찍 구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랜만에 하는 런던 관광이었다. 꽤 예전부터 내가 깨달은 게 있는데, 나는 인복이 참 많다는 거였다. 도착할 나를 위해 공항까지 와주고, 내가 런던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언니와 함께 관광에 나섰다. 구글을 찾고 또 찾아 발견한 카페. 채광이 참 좋았던 곳이다. 언니와 함께 꽤 자주 찾던 곳.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런던에서 벗어날 계획을 세웠다.


새벽 5시의 버스 정류장은 스산했다. 임시 숙소가 있는 동네 자체가 센트럴이 아니었던지라 뭔가 무섭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는데, 새벽에는 사람 자체가 없어서 그건 또 그거대로 무서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버스가 바로 왔고, 빅토리아 버스터미널까지 2층 맨 앞에 - 주로 관광객들이 앉는 최고의 자리 - 앉아 갔다. 이 이후에도 종종 빅토리아 터미널을 이용할 날이 많았는데, 이 이후로는 2층에 올라가지도 2층 맨 앞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자리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2층에 앉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1층이 최고임을 알았다. 한국의 2층 버스와는 다르게 영국의 2층 버스는 너무도 비좁으니, 1층이 내리고 타기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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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 복숭아, 독일에 있을 때도 먹었는데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향한 마트에 떡하니 있길래 바로 구매했다. 역시나 맛있었다. 한입 베어 물면 과즙이 나오고,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어서 잡고 먹기 매우 편하다. 길거리가 한국과 온통 다른데, 나는 이 납작 복숭아를 먹었을 때야 비로소 이곳이 한국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과일이니까. 이 과일을 매일 먹는 나를 보고 임시 숙소 주인이셨던 할머니가 복숭아가 그리 좋냐고 물어봤었더라 지. 나의 미국식 't' 발음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던 그분. 인종차별 같은 게 아니고 정말 나이 드신 분이라 못 알아들으시는 듯했다.


Saturday를 새러데이라고 발음했던, 지금은 제법 새터데이가 더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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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

유럽에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다. 제일 좋아하는 미술관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르세. 런던에 지내면 좋은 점이 바로 이거다. 문화생활을 맘껏 할 수 있다는 점. 무료로 개방되고 시원하고 또 따뜻해서 할 거 없는데 뭔가 보고 싶을 때 자주 방문했다. 대영박물관은 예전에 런던 처음 갔을 때 가고 가지도 않았고 글쎄, 다른 곳들도 딱히 굳이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셔널 갤러니는 다들 가봤으면 한다. 나를 보러 온 친구들에게도 꼭 추천했던 곳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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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 빅토리아 미술관,

날이 좋던 휴일, 어디를 가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 찾은 곳이다. 바로 옆에 자연사 박물관도 함께 있어서 코스로 꼽히는 곳. 기념품이 유명한데, 내가 갔을 당시에 디올이랑 협업한 에코백이 인기가 있었다. 미술관 안에 있는 사진이나 여러 작품들도 유명하나, 이곳은 미술관 한가운데 정원과 카페 분수가 더 유명하다. 편히 와서 쉬기 참 좋은 곳. 책이 있었더라면 구석에 앉아 책을 읽었을 텐데. 내게는 손에 쥔 핸드폰뿐이라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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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하면 한 번쯤은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피카딜리에 있는 저 전광판. 여기를 얼마나 자주 오고 갔더라. 나는 내가 날씨에 그렇게 민감한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하고 못했다. 하지만 꽤나 민감한 사람이라는 걸 불현듯 깨달았다. 날만 좋으면 여기저기 다니기 바빴다. 이렇게 센트럴을 무작정 걷기도 하고, 동네 큰 공원을 가기도 했다.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센트럴이지만,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기분이 묘해졌다. 아, 신호 안 지키고 그냥 마구잡이로 횡단할 때도 그랬고. 현지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아이러니하게 관광객이 잔뜩 있는 센트럴에서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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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폴 대성당 / 타워브릿지

내가 좋아하는 산책? 투어? 코스랄까. 친구들이 나를 보러 왔을 때 꼭 데려갔던 곳이기도 하고 나도 자주 갔던 곳이다. 세인트 폴 역에 내려서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 테이트 모던 6층 카페를 가고 그 앞에서 템즈강을 따라 타워브리지까지 걷는 코스다. 아침, 낮, 해 질 무렵, 저녁, 밤 모두 아름다운 곳. 지금도 눈을 감고 떠올리면 그곳에 있는 기분이 든다. 특히 테이트 모던 앞에서 버스킹 하던 사람들이 만들어내던 아름다운 멜로디가 들리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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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도착하고 3개월 동안 살던 집 앞, 흔하게 볼 수 있던 모습이다. 출근하려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산책하려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저기 보이는 Odeon 영화관 앞 코티지 술집에서 추억도 있다. 친구들과 술 한잔 기울이고 신나게 떠들던 곳.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준 곳이기도 하고. 집에서 바퀴벌레가 나와서 결국 이사를 결정하게 되면서 이후에는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지금 다시 가도 내 손바닥 안인 것처럼 편히 다닐 수 있는 그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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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참 인복이 넘치는 사람. 영국으로 오기 전,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이웃분의 초대로 먼 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 당시 내가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왕창 받고 있던 차였다. 들리는 건 이제 어느 정도 들리는데 말하는 게 편하지가 않아서. 지금과 비슷한 수준이랄까. 문장이 완벽하지 못하고 답도 없던 그때, 내게 기분전환 겸 놀러 오라며 손을 건네준 분. 한국 음식이 그립지 않냐며 닭칼국수를 해주시고, 집 소개에 게임기와 동네 산책까지. 남편분이 영국 분이셔서 함께 걸으며 대화할 수 있게도 해주시고. 이날 먹었던 닭칼국수가 내가 먹었던 그 어떤 칼국수보다 맛있었다. 지금까지도 최고랄까. 그 덕분일까, 이날 이후로 나는 자신감을 되찾고 부족한 영어로 매일을 버티고 살아나갔다. 뭐 어때, 하는 태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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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림로즈 힐

내가 런던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원으로 가는 길. 힙한 다리를 건너 골목을 뚫고 쭉 올라가다 보면 나타나는 언덕. 해가 질 때 가면 정말 아름답다. 처음에는 혼자 갔던 곳을 나중에는 친구들과 함께 갔다. 종종 공원 앞에서 아이스크림 트럭을 볼 수 있었는데, 한 번은 먹어볼까 하는 맘에 충동적으로 사서 먹어본 적도 있다. 사실 먹고 싶었던 적은 많은데, 맛이 다양해서 고를 수가 없어서 먹기를 포기했다. 아이스크림 트럭 아저씨가 쪼끔 무섭게 생기기도 했고.


빵, 술, 치폴레, 커피, 도넛 등을 사서 프림로즈 힐에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먹는 게 내 낙이었다. 맡아지는 담배와 대마초의 냄새가 매우 거슬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에 취해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외로움도 느꼈지만, 위로도 받았다. 나, 잘 지내고 있구나 그럼에도. 싶은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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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을 탈 수도 있지만, 교통비가 비싼 런던에 산다는 이유도 있고, 날이 좋을 때 좀 즐겨보자 하는 마음에서 무작정 걷다가 도착한 캠든. 중간에 힘들어서 공원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물 한 병들고 열심히 걸어서 집으로 가기도 했던 그런 평범한 일상. 이제는 소중하고 그리워진 그런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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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크로스 역 뒷편 / 리젠트 공원

친구가 추천해 준 카페를 찾아 킹스크로스 역을 방문했던 날 나는 기가 막힌 곳을 발견했다.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고 해를 즐기는 모습, 그게 가능하게 하는 공간. 언젠가 저기 나도 앉아보리 다짐하고 끝끝내 앉지 못했던 곳. 런던에 살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이 우리 곁에 있을 때 얼마나 삶이 풍부해지는지도. 발아래 푹신한 잔디도, 시원한 바람과 풀 내음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는 색들도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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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 앞 트라팔가 광장. 템즈강 근처로 가려고 자주 지나다니던 곳. 유난히 구름이, 하늘이 어여쁘던 날이었다. 부는 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지던 초가을 해 질 무렵. 한국보다 조금은 더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을 붙잡고 싶어 렌즈 안에 담았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다가 이날 문득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들에 신이 났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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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커 스트릿 / Tube : circle line

베이커스트릿 역 주변에는 맛집이 많고, 언니와 우리 집 사이라 자주 이곳을 방문했다. 셜록을 좋아하는 내게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좋기도 했고.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에 걸맞게 대부분의 튜브는 오억 년 전에 뚫린 지하 터널을 횡단했지만, 신설된 서클라인 와 해머스미스 라인은 지상을 지나갔다. 오버그라운드도 물론. 비가 오는 날에는 문일 열릴 때마다 들이치는 빗줄기와 찬 바람이 좋았고, 해가 뜬 날은 열린 문 사이로 들어차는 볕이 좋았다.


사실, 모든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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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영국스러운' 날씨다. 맑았던 게 아주 거짓말이라는 듯이 어둑해지고 비가 내치리는. 한국에서는 비 내리는 날이 너무 싫었는데, 영국에서는 내리는 비마저 좋았다. 갑자기 내리는 비도 익숙해졌고. 웬만해서는 지금도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우산 잘 안 쓴다. 장마처럼 끝도 없이 내리는 비 말고, 갑자기 잠시 내리는 비 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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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복이 있는 편이라, 내가 런던에 있는 동안 글쎄, 궂은날은 별로 없었다. 기억이 미화되었을 수도 있지만. 사진첩에 몇 안 되는 비 오는 런던 시내의 모습이다. 이날도 우산 없이 다니다가 빗줄기가 굵어져서 하는 수없이 챙겨간 우산을 폈던 기억이 있다. 템즈 강을 따라 싱잉 인 더 레인을 들으며 걷다가 인종차별하는 라이딩족 (자전거) 들도 만나고^^ 너희가 idiots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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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가을,

모처럼 만에 공원에 갔던 날. 잔디 위에 잔뜩 쌓인 낙엽을 모아 머리 위로 뿌리며 사진을 찍었더라지. 가을이지만 제법 추워서 이미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가을에만 맡을 수 있는 그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외로운 향과, 바삭이는 햇살,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밟을 때마다 나는 부스럭 소리까지, 뭐 하나 사랑스럽지 아니한 게 없다. 적어도 내게 가을은, 영국에서의 가을은 너무도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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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런던의 자세랄까. 내가 있던 동네도 조명 장식이 화려한 편이었지만, 센트럴에 비할 바가 아니지. 퇴근하고 구경을 나섰다. 반짝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렌즈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바쁘게 걷는 사람보다 서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던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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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r Wonderland!

여름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기다리고 기다렸던 곳. 윈터 원더랜드. 하이드파크에서 매년 열리는데, 두 번 다녀왔다. 한 번은 한국인 친구와 다른 한 번은 외국인 친구들과. 놀이 기구를 무서워하는 나는 친구들의 짐을 들고 사진을 잔뜩 찍어줬다. 하늘 저 끝까지 날아갈 것 같던 놀이 기구에서 내려온 친구들은 저 위에서 바라본 런던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했다. 나도 같이 탔어야 한다고 백 번도 더 말했지만 타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 굉장히 오랜만에 나는 이곳에서 어린아이로 돌아갔었다. 그저 즐겁고 웃기 바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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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 30일 전부터 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어드벤트 캘린더를 시작으로 나는 수많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카드도 물론. 개중에 나를 위해서 한국어로 '사랑해'를 쓴 카드를 비롯해, 내용 전체가 한국어인 카드도 있었다. 번역기를 돌리고, 알파벳이 아닌 한국어를 쓰기 위해서 거의 그렸다는 후기도 들려줬다. 나는 무슨 복을 또 이렇게 타고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리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가.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글쎄 모르겠다 왜, 어떤 기분에 눈물이 났는지. 그냥 울고 싶어서 울었다. 이런 선물을 받았다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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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Valentine day!

공교롭게도 남자친구가 없던 친구가 내게 갑자기 반쯤 무릎을 꿇고 노트를 내밀었다. 케이스 초콜릿과 장미 초콜릿을 내밀며. 내년에는 본인도 남자친구와 시간을 보낼 거라며. (사실 우리는 이때 각자 맘에 드는 남자가 있었다 ㅎ) 장난으로 혹시 우리 데이트하다가 맘에 드는 남자 보이면 각자 갈 길 가자고도 덧붙였다. 부디 맘에 드는 남자가 같은 사람이 아니길 바라며.


밸런타인데이 데이트는 대성공이었다. 나는 꽃도 받고 맛있는 음식도 대접받았다. 그리고 친구에게 나는 이것저것 선물이 담긴 쇼핑백을 주었고. 갑자기 내밀어진 데이트 신청 노트에 놀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둘 다 추억이 될만한 시간을 보낸, 그런 하루였다. 쓸쓸하게 지나갈 수도 있던 날을 웃음으로 가득하게 만들어준 My love, 보고 싶은 밤이다. 어디 선가 'My love~ Daring~' 하고 나를 부르는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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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눈이 내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바라던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그 날씨가 2월에 찾아왔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Happy Christmas'를 외쳤다. 눈이 오니까 일단 냅다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게 제법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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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봄이 찾아왔다. 제법 따뜻해진 날씨에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COVID-19이라는 어마 무시한 질병이 창궐해 쉽지 않았다. 식료품을 사러 갈 때만 느낄 수 있는 볕과 바깥 풍경들. 마스크를 겹겹이 쓰고 걷는 동안 곧 나아지겠지 했더라 지. 햇수로 3년이 지나가도록 다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안 했다. 이때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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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고 여름이 와서 1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버티고 버티다, 잠시 안전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들을 업체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하필 짐을 옮기다 허리가 다치는 바람에 오만 병도 함께 얻었더라 지. 이때도 나는 이 짐을 영국에 돌아와서 다시 오픈할 생각을 했지, 한국으로 이 짐들을 배달받을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다.


그리고 나는 이날을 마지막으로 다시 런던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사진을 고르고 이 글을 쓰는 내내 자꾸만 눈물이 차오르는 이유다. 너무 그리워서, 눈만 감아도 훤한 곳들을 가지 못해서, 그리운 친구들을 안을 수 없어서. 이럴 줄 알았더라면 조만간 보자며 허그할 때, 더 꽉 오래 안아줄걸.




분위기 전환을 해보자,

우울하게 끝낼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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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정하던 카페들이다.

혼자 간 적도 있고 같이 간 적도 있고.

뭐가 제일 맛있었냐고 묻는다면 단연 스콘과 아몬드 크루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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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애정하는 장소 (실내)

테이트 모던 6층에 있는 카페. 날이 좋으면 맑은 하늘과 저 건너편 세인트 폴 성당도 보이고 날이 흐리면 온통 잿빛이다. 그건 또 그거대로 느낌이 있지. 비올 때는 가본 적이 없는데 다음에는 비올 때 가보고 싶다. 늘 마셨던 그린티를 시키고 날마다 다른 베이커리도 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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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을 자주 하지는 않았는데,

최고는 치폴레.

말이 더 필요 없다. 치폴레 한국으로 들어오면 대박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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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유난히 하늘 사진이 많다. 노을, 별, 달 사진들. 날마다 지는 해가 내는 색이 달랐다. 사진에 제대로 담을 수 없어 눈에 담고 또 담았다. 해가 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달까.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해냈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해가 거의 다 내려가고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하면 그건 그거대로 장관이었다.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분홍, 보랏빛의 하늘을 흔하게 볼 수 있었고, 위도가 높아서 그런지 달과 별도 더 밝았다. 특히 종종 하늘을 밤에 올려다보며 별자리를 찾는 게 재미있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그런 날이 있다. 퇴근길에 우연하게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하늘에 떠 있던 수많은 별들. 반짝이다 못해 내게 쏟아질 것만 같았던 별들. 쓸쓸하게 걸어가던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아 울컥하기도 했다.


새벽에 일찍 나가던 때 볼 수 있던 모습들, 해가 지는 것도 장관이지만 뜨는 것 역시도 장관이었다. 날마다 이리 특이한 색으로 물드는 하늘을 볼 수 있던 건 아니지만, 어쩌다 마주한 모습에서 힘을 얻곤 했다. 오늘도 화이팅이라고, 힘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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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간 살았던 내 방 / 그 이후로 쭉 지냈던 방 / 창 밖을 보면 알 수 있던 계절

1런던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꽤 변했다. 모든 것에 예민해져서 피곤한 사람이 되었고, 자연을 너무도 사랑하게 되었으며 더 이상 강아지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내가 되었다. 'T' 발음을 한껏 살려서 발음할 수 있게 되었고, 딱딱한 발음들에 익숙해졌으며, 날이 좋으면 어디든 뛰쳐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 나라는 사람의 성장을 위해서 떠났던 곳에서 비록 완전히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거듭나지는 못했지만,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알게 된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서 몹시도 그립고 자꾸만 생각 나도 나를 웃게도 눈물짓게도 하는 그런 곳.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마음 저편 깊숙이에 나를 무작정 믿던 마음이 빛을 바래, 다 해낼 수 있었다. 혼자만의 힘으로 했다고는 생각 않지만.


2019년에서 3년이 흐른 지금 같은 시기에 나는 다른 곳으로 떠나고자 한다. 더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무섭고 걱정되지만 늘 그랫듯이 난 해낼 수 있겠지. 머리와 마음에 가득한 런던의 추억을 품고, 그때처럼 그렇게.


가끔 꺼내어 볼게.

자주는 내가 아직은 힘들 것 같아.


너무도 그리운 나의 런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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