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월 하면 떠오르는; Eastern Europe

22 Jun 30

by LUX


2014년 6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독일에서 지낼 무렵, 썸머 브레이크 기간에 룸메이트 언니와 나는 동유럽 여행을 가기로 한다. 무려 10박 11일 : 프라하~빈~부다페스트~짤츠부르크(할슈타트) 일정이었다.








1. 체코; 프라하


이른 아침 독일에서 체코 프라하까지 우리는 기차를 타고 넘어가기로 했다. 독일 서남부에서 지내던 우리는 독일을 대각선으로 뚫고 지나 프라하에 도착해야 했으므로 시간이 꽤 걸리는 거리였다. 집 앞에서 녹색 띠가 둘러진 S-bahn을 타고 나와 Europa Platz에서 갈색 띠가 둘러진 bahn으로 갈아타고 기차역에 도착했다. 문제는 bahn을 갈아타면서 일어났다. 카메라에 잘 부착해 두었던 내 렌즈가 bahn 바닥에 꼬꾸라면서 두 동강이 나버린 것.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해결될 때까지 신경 쓰는 나는 좌절했다. 이번 여행 내내 카메라 때문에 골머리를 썩겠다 생각하며 애써 문제를 꾹꾹 누르고 프라하로 가는 베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카메라를 가지고 독일로 향하면서 아빠랑 한 판을 한 터였다. 그 당시 비싸고 좋은 카메라였던, 지금은 쓰지도 않는 그 카메라를 왜 내가 가져가냐는 거다. 나는 당연히 가져가야겠다고 아빠한테 말했다. 좋은 풍경을 담아야 하니까. 아빠는 내가 가져가면 다른 가족들은 무슨 카메라를 쓰냐며 혼냈고 결국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쟁취했다. 그런 카메라가 두 동강이 났으니, 나는 엄마 아빠에게 혼날 생각에 앞이 아찔했으나 여행을 망칠 수 없고, 옆에서 내 사진을 모두 찍어주겠다며 걱정 말라는 언니의 말에 애써 잊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DSC00143.JPG


반대편 2층 베드의 남자가 늦게까지 독서 등을 켜고 누워서 책을 읽어서 나는 잠을 설쳤다. 사실 카메라 걱정이 한가득이라서. 그리고 기차에 타면 누가 들어와서 짐을 훔쳐 간다는 말에 무서워서. 하지만 별문제 없이 우리는 프라하에 도착했다. 도착한 프라하의 날씨는 구름이 잔뜩이라 비가 올까 걱정이었지만, 금세 개어 푸른 하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적색의 지붕들을 맘껏 보여주었다.





DSC00542.JPG
DSC00654.JPG


처음 도착한 동유럽 체코는 내가 여태까지 여행했던 다른 서유럽과는 느낌이 달랐다. 적갈색의 지붕들이 남유럽 같기도 했지만, 건물 곳곳에서 풍겨오는 양식들이 뭔가 러시아 같기도 하고. 프라하 성이 있는 언덕에 올라가서 내려다본 프라하 시내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푸른 하늘 아래 잔뜩 늘여 놓인 적갈색의 지붕들 그리고 그 사이에 푸른 나무들과 프라하 시내를 가로지르는 블타바 강. 프라하는 여름의 청량함 그 자체를 가지고 있었다.




DSC00157.JPG
DSC00197.JPG
DSC00182.JPG
DSC00238.JPG


잔디를 걷고, 골목을 걷고, 정처 없이 목적지 없이 걷는 게 얼마 만인지. 스마트폰이나 블로그 여행정보가 많지 않았던 때라 언니와 나는 호스텔에서 준 지도 한 장을 들고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다. 한 푼 두 푼 아낀다고 가방에는 빵을 넣고 손에 물을 쥐고 그렇게. 더우면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잔디밭에 앉기도 하고. 그러다 프라하 중앙 광장에서 펼쳐진 비눗방울 잔치를 구경하기도 하고.




DSC00678.JPG
DSC00677.JPG
DSC00508.JPG
DSC00454.JPG


프라하의 노을과 야경은 신기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맑은 하늘에 점차 어둠이 내려앉고, 온 사방이 짙은 어둠에 잠식되었을 때 까를교를 걸으며 주변을 구경했다. 다리에 켜진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들도 있었고, 정처 없이 걷는 사람들도 있었고, 우리처럼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진 찍느라 정신없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상하게 비가 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내 기억에 프라하는 Adele - Million Years Ago, 라는 노래와 딱 잘 어울리는 그런 분위기의 여행지다.








2. 오스트리아; 빈


DSC00691.JPG


프라하에서 빈까지의 거리는 길지 않지만 우리는 여유롭게 하루를 썼다.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기차를 타고 빈으로. 독일어를 잘했던 언니 덕에 빈은 수월하게 여행할 수 있겠다 싶었다. 오스트리아도 독일어를 쓰니까. 빈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본 건물은 유명한 빈 대성당.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어딜 가나 공사를 몰고 다니는 나답게, 공사 중이어서 전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프라하에서 출발할 때부터 느꼈지만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이래서 썸머 브레이크를 주는 건가 싶었는데, 도착한 빈은 날씨가 더 더웠다. 습기 없는 더위는 따갑기까지 했다. 성당 앞에 잔뜩인 사람들을 뚫고 우리는 배를 채우러 출발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 감자 샐러드를 먹으러.




DSC00683.JPG
DSC00680.JPG
DSC00685.JPG


유명한 슈니첼 가게. 어렵게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우리 얼굴보다 훨씬 크고 접시보다도 큰 슈니첼과 함께 나온 야채샐러드와 감자 샐러드. 어딜 가도 저 감자 샐러드만큼 맛있는 감자 샐러드를 먹어 보지 못했다. 상큼하면서도 맛있고 꾸덕꾸덕하면서도 깔끔한 맛. 어떻게 설명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날이 더워서 지쳤던 우리는 시원한 곳에서 열심히 밥을 먹는데 누군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L오빠. 우리와 함께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는, 다른 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오빠였다. 여기서 얼마나 머무냐는 말에 며칠 더 있을 거라고 했더니 이따가 저녁에 보자고 했다. 그렇게 대충 약속을 잡고 우리는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DSC00704.JPG


호프 부르크 가는 길. 날도 더운데 말들이 불쌍해 보였다. 아, 빈에는 특이한 게 길거리에 있는데, 바로 동물들이 마실 수 있는 정확히는 말과 소등 가축들이 마실 수 있는 정수 시설이랄까? 거기에 말을 잠시 묶어둘 수 있는 버스 손잡이 같은 고철 덩어리도 건물 외벽에 붙어 있다. 이게 다 옛 합스부르크 왕조 시절에 생겨난 거라고 했다.






DSC00753.JPG
DSC00792.JPG
DSC00812.JPG


호프 부르크 뒤뜰 정원에는 모차르트 기념비와 드넓은 공원이 있다. 사진을 꽤 많이 찍었는데 모든 사진에 내가 있어서 첨부하기가 난감해 가져오지 않았다. 구글에 검색하시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아 그리고 프라하는 신기하게 온 정원에 장미가 가득했다. 길을 가다가 장미를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여름이 왔음을 장미가 말해주는 것 같아 그제야 나는 이 여름이, 썸머 브레이크가 실감 났다.





DSC00818.JPG


비엔나 필하모닉 - 관현악단,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유명한 빈답게, 오페라 극장 앞에 누구나 연주회를 관람할 수 있도록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옷차림도 그렇고, 연주회 티켓값도 그렇고 우리는 들어갈 수 없어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표를 구해서 멀끔하게 차려입고 들어가서 들었겠지만, 그 당시 우리의 주머니는 가벼웠기에 저 앞에서 그린티 프라푸치노 (유럽에서 저 당시에 오스트리아에서만 팔던 귀한 녹차프랍이었다.)를 마시며 꽤 오랜 시간 공연을 봤다.




DSC00829.JPG
DSC00830.JPG


빈의 야경은 웅장한 느낌이었다. 늦은 저녁에도 하늘은 밝았고 푸른빛으로 가득했다. 온 건물들이 황금색 띠를 두르고 있었고, 프라하에 비해 건물이 자로 잰 것처럼 딱딱 떨어지는 게 깔끔한 느낌이었다. 또 정처 없이 이번에는 세 명이서 빈 시내를 구경했다. 공교롭게 모두 Lee 가 family name이었던 우리 이 남매는 부다페스트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그렇게 헤어졌다. 헤어지고 숙소에 돌아갈 때까지도 저 푸른빛의 하늘은 어두워질 줄 몰랐다.




DSC00915.JPG
20140609_105056.jpg
DSC00872.JPG
DSC00871.JPG


쉔브룬 궁전. 정말 날씨가 너무 좋았다. 구름 한 점 없는 게 아쉬울 정도로. 물 한 명을 손에 쥐고 뙤약볕 아래에서 언덕을 올랐다. 내려다보는 궁전과 그 앞 공원이 장관이라는 말에. 올라가는 길에 있는 폭포에 풍덩 빠지고 싶었다. 번외의 이야기지만, 유럽은 물이 중력을 거슬러 위로 솟아나는 조형물인 분수를 많이 쓰고, 동양은 물이 중력을 따르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 조형물을 많이 쓴다고 한다. 맞는 말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DSC00951.JPG
DSC00947.JPG
DSC00954.JPG
DSC00956.JPG


이름하야 뙤약볕의 폭립. 유명한 이 가게를 오기 위해서는 도나우강을 양쪽에 끼고 다리를 건너 먼 길을 걸어와야 했다. 결국 우리는 음식을 먹기도 전에 더위 먹고 말았다. 두통이 오기 시작했지만 멈출 수 없는 식사. 나중에 생각해 보니, 우리는 인종차별을 당했던 것 같다. 안쪽에 시원한 곳 많은데 우리는 볕이 쏟아지는 밖에서 식사를 했고, 서버가 매우 예의가 없었으며 화만 냈으면서 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땐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화가 나는 그런 상황. 그럼에도 폭립은 정말 맛있었다.





DSC00960.JPG


벨베데레 궁전, 유럽에서 봤던 많은 궁전들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그런 곳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겨울에 지냈던 별장?이라고 알고 있다. 쉔브룬은 여름에 쓰던 곳이고. 이 궁전이 아름다워서 기억에 남고 내가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꽤나 높았던 이곳의 입장료를 우리는 내지 않고 얼떨결에 입장을 했었어서 기억에 남는다. 표를 어디서 사는지 몰라서 여기저기 헤매던 우리는 때마침 도착한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 함께 궁 안으로 입장하게 되었다. 입장해서도 우리는 한참을 표는 어디서 사냐고 헤매다가, 우리가 이미 표도 없이 들어왔음을 깨닫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 그냥 운이 좋았다 생각하자 결론 냈다. 그 상태로 우리는 유명한 클림프의 작품 '키스'와 다비드의 '나폴레옹'을 보고 헐레벌떡 나왔다. 물론 기념품인 엽서를 사는 것도 까먹지 않고. 그렇게 궁에서 나와 언덕을 내려가면서도 우리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뙤약볕에서 고생한 걸 이렇게 보상받는 걸까? 운이 너무도 좋은데? 하면서. 굳은 티켓 값으로 맛있는 거 사 먹자! 하며 더위 먹어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덥고 뜨거웠던 빈에서의 추억,

숙소 예약도 잘못해서 다급하게 예약해야 했던 숙소,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음식들의 향연,

동유럽 중 최고의 도시를 꼽으라면 나는 빈이라고 답하겠다.








3. 헝가리; 부다페스트


DSC00987.JPG
DSC00988.JPG
DSC01007.JPG


부다페스트, 동유럽에서 해가 지는 시간과 해가 지고 나서가 가장 아름다운 도시. 내가 감히 그렇게 부르고 있다. 정말 잊지 못할 야경을 내게 선물해 준 곳. 공교롭게도 그런 부다페스트에 하루도 채 되지 않는 시간만 머물렀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짧게 머물렀던 도시들을 가장 좋았던 곳으로 꼽는다. 호주에서도 브리즈번에 하루 있었는데, 그 여행에서도 내 최애 시티는 브리즈번이고, 이때는 부다페스트였다. 썸머 브레이크 최고의 시티.


늦은 오후 도착한 부다페스트는 이미 조금씩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상태였다. 해가 점점 그 자취를 감춰가는데 주황빛의 하늘이 어느새 분홍빛으로 물들고 단 한 가지 색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색들로 가득 물들기 시작했을 때의 감동이란. 멍하니 강가에 서서 지는 해를 멍청하게 바라봤다. 모기 밥이 되는 줄도 모르고. 정말 멍하니 지는 노을을 꽤 오래 바라보며 운치를 즐겼다. 많은 여행지를 다녔지만, 수많은 노을 명지가 있지만 나에게는 이곳이다. 다뉴브 강변에서 봤던 그 노을들.




DSC01035.JPG
DSC01028.JPG
DSC01013.JPG
DSC01019.JPG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고 우리는 세체니 다리를 건너 부다에서 페스트로 넘어가기로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수도 없이 누른 셔터. 돌아가며 서로 찍어주느라 세체니 다리를 건너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잔뜩 모기에게 뜯긴 다리를 하고 뭐가 그렇게 즐거웠던지. 우리 셋은 요즘 틱톡 같은 음악이 깔린 동영상을 찍으며 추억을 새겼다.




4ef8e8c50159ba0c71593aa584628535.png
c3c9bb473719154f996042cf7ef272df.png


다리 건너기 전, 야경을 보며 찍은 사진이다. 흑백으로 찍었는데도 분위기 있게 나왔고, 우리의 웃음과 즐거움 그리고 젊음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이제는 막내인 나까지 서른을 넘겼으니, 사진을 보니 문득 우리가 얼마나 어리고 아름다웠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 당시에 우린 정말 천방지축 여행객이었는데.




DSC01166.JPG
DSC01114.JPG
DSC01179.JPG
DSC01115.JPG


우리보다 하루 일찍 도착해서 원데이 투어를 했다는 오빠가 이번에는 가이드로 나섰다. 오빠를 졸졸 따라 부다페스트 궁전과 건물들의 설명을 들었다. 우리에게 설명해 주려고 열심히 들었다는 말에 감동이었다. 어둠에 잠긴 다뉴브강에 반사되는 황금색의 건물들.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궁과 요새가 있는 언덕을 올라가는 길은 정말 끔찍이도 덥고 습했지만 정상에 선 우리는 감탄사를 끊임없이 내뱉었다. 습기와 더위를 껴안고라도 꼭 봐야 하는 그런 장관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언덕 위에서 맞이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올라오며 힘들게 했던 습기와 더위를 다 잊게 했다.





b776461ac01f1f2a95d3070662a0e8d8.png


나는 이 사진을 가족사진이라고 불렀다. 이씨 남매들 셋이 모여 찍은 사진이라. 이날의 추억에 딱 어울리는 노래가 지금 에어팟에 울려 퍼진다. Taylor Swift - Cornelia street, 내가 영상 편집가에 이날 여행 브이로그를 만든다면 이 노래를 쓰고 싶다 배경 음악으로. 그리고 저 왕궁 언덕을 마구 뛰어다니는 나를 담고 싶다.


그 언젠가 저 노을이, 형형색색의 하늘이 그리워진다면

짐 싸들고 떠나고 싶은 곳.

죽기 전에 다시 멍하니 다뉴브 강가에 서서 바라보고 싶은 곳,

부다페스트.








4.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 & 할슈타트


DSC01230.JPG
DSC01254.JPG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곳, Salzburg. 소금 광산이라는 뜻인 걸로 알고 있다. 앞에 Salz가 독일어로 소금 - burg는 언덕, 산 이런 뜻이고. 우리는 짐을 내려놓고 서둘러 미라벨 정원으로 향했다. 오스트리아는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진짜 정원 관리는 잘하는 것 같다. 아름답게 꾸미는 것도 정말 잘하는 것 같고. 눈앞에 펼쳐진 정원의 모습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관리를 얼마나 잘하는 건지, 정말 모든 것이 섬세했다. 꽃 하나도 허투루 두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달까.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곳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DSC01288.JPG
DSC01315.JPG


느지막하게 도착해서 그런가 해가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윤슬이 어찌나 빛나던지. 눈이 부셔서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잘츠부르크는 미라벨 성과 모차르트 생가를 빼면 딱히 관광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바쁘게 열흘을 여행한 우리에게 여유시간을 주기로 했다. 우리는 쇼핑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 여행 중에 배우 신세경 님을 만나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본 첫 연예인이라 신기했다.




DSC01341.JPG
DSC01336.JPG


숙소로 가는 길 다시 들린 미라벨 정원. 어둑해진 하늘 아래에서도 아름다웠다. 열흘에 걸쳐 지냈던 여러 도시와 다르게 관광객도 적어서 심적으로도 많이 여유로웠다. 천천히 이곳을 감상하고 이곳에서 언니와 많은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여기 가면 장미가 예쁘고 반대로 가면 다른 이름 모를 어여쁜 꽃이 또 예쁘고. 렌즈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꽃을 다 담을 수도 없는 법. 그냥 눈에 열심히 더 담고 우리는 이른 저녁 숙소로 향했다. 다음 날 마지막 여행 일정을 위해서.





DSC01400.JPG
DSC01402.JPG
DSC01413.JPG
DSC01537.JPG

비가 안 와야 마을을 비로소 마주할 수 있다는 할슈타트. 산 중간에 놓여 있는 마을은 정말 요정들이 살 것 같은 신비의 세계 같았다.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있고 그 사이에 알록달록한 꽃으로 잔뜩 장식되어 있는 곳. 우리가 할슈타트로 향하는 길목 내내 비가 세차게 내렸고, 결국 우산을 쓰고 어렵게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나마 기차역에서 마을로 가는 길에 소강상태라 배가 떴지, 아니었다면 마을로 들어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DSC01430.JPG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다 발견한 빛, 빛 한 줄기가 마을 가운데 놓인 호수로 내려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 holy 했다. 성스러움 그 자체. 뭔가 앞으로 우리의 길에는 빛이 가득하리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종교가 없는 내게도 되게 성스럽게 다가왔는데, 가톨릭인 언니는 오죽했을까. 꽤 많은 사진을 찍었다. 먹구름 사이로 내려오는 한 줄기의 빛을.





10일간의 여행은 프라하를 시작으로 할슈타트에서 마무리되었다. 여행하는 내내 날이 너무 더워서 이래서 썸머 브레이크를 학교에서 줬구나 싶었지만, 더위를 먹어가면서 한 여행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힘들고 지친 매일이었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즐거움을 발견했고, 한시도 웃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매년 여름이 다가오는 6월이 되면 나는 이때의 여행이 떠오른다. 학생 시절이라 돈도 별로 없고, 카메라도 망가지고, 내리쬐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 걷고 또 걷느라 지쳤었지만 그럼에도 행복했다. 이 열흘간의 추억을 매년 갉아먹고 살 정도로 말이지.


이제는 조금 흐릿해진 기억이지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되새겨보았다.


2014년 6월의 나는 정말 행복했구나 하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평생 그리울 나의;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