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에는 참 오랜만에 할머니댁에서 4일을 보냈다.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를, 불충분하더라도 기록하고 싶어서였다.
7년 전 할아버지가 여든셋의 나이로 돌아가실 때, 처음 생각을 했다.
난 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에 대해서 모르는구나.
그 분들도 유년시절이, 신혼 시절이, 청춘이었던 때가 있었을텐데
나에게는 그저 노인으로서의 기억밖에 없구나.
그래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사' 만큼의 거창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그 분이 살아온 이야기를 꼭 기록에 남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야 돌아가시더라도 아쉬움이 덜할 듯 했고,
그분의 생각과 '일치'는 불가능하더라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하지만 그 후로도 난 꾸준히 게을렀고 두려워하였기에,
작년 재작년 내가 어릴 적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양평 출신인줄만 알았던 할머니가
어릴 적 계동에 살았다는 등등)을 단편적으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석을 맞이하여서야 마음을 먹고 할머니와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3일간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1930년생, 한국나이로 87세인 할머니의 연세상 (몸은 상당히 건강하신 편이지만, 기억력이나 집중력은 많이 약해지셨다) 연대기적으로 이야기하기는 불가능하여, 질문은 드렸지만 할머니가 답하시는 순서대로 반응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의 출신배경(?)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었으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유년시절, 전쟁의 경험, 결혼 시기, 이사 이유 등 잘못 알고 있던 부분도 참 많았다.
외증조할아버지가 86세, 증조할머니가 92세에 돌아가셨을 만큼 장수 집안(?)이라는 점에서 놀라기도 하였고.
다시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처음 기대했던 것만큼 할머니의 삶 전체를 듣지를 못하였다.
할머니 삶에서 어렵거나 난처할 만한 부분(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둘째 동생, 부모님의 결혼 후 시집 살이, 아버지의 사업 실패 등)은 물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시절의 이야기는 들은 후, 그 부분을 물어봐야 할지 고민이 들었지만.....
나의 욕심 때문에 할머니에게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려서었다. (물론 이번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지.)
아쉬움도 있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할머니의 웃음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지난 시절의 추억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 분에게는 즐거움이실 수 있으니 말이다.
기록한 내용을 어떻게 정리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결과물에 관계없이, 할머니를 조금 더 잘 기억하고 동생들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다가 찍은 사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창고에서 찾은 23년 사진.
23년 사진에 수북히 쌓여있는 먼지는 왠지 닦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