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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S Mar 19. 2018

뮤지컬 닥터지바고,  그 사랑에 공감할 수 있을까

생략된 배경 속, 그들의 감정과 선택을 이해하려면

유명한 작품을 원작으로 한 무대공연은 각색 작업에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책/영화의 수많은 등장인물과 스토리 중 무엇을 생략하고 강조해야 할지,
작품의 특징과 메시지는 살리면서도 관객들이 약 두 세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말이다.
특별히 단순 줄거리 요약보다는, 서브 컨텍스트가 잘 살아있어야 주제의식에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뮤지컬 닥터지바고 미니프로그램.  자세히 보면 눈 결정이 보인다

 

6년 만에 다시 관람한 뮤지컬 '닥터지바고' 역시 그 어려움에서 선택이 필요했던 작품이다. .
원작소설은 500p가 넘는 분량의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며, 서사의 전개 외에도 주인공들의 내면의 고민도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를 많이 압축한 영화도 3시간 20분이기에,  노래와 댄스까지 넣으려면 더 많은 축약이 필요하
사치를 누리는 짜르/귀족과 궁핍 속에 사는 시민들의 삶이 극단적으로 나누어졌던 시대, 전쟁과 혁명을 거쳐 2개의 이념이 대립하던 그 시절과 연결하여 이해하지 못한다면 작품 안에 담긴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게다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가 - 호불호는 갈렸으나 - 많은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꼈던 2012년 공연, 흥행에서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2015년 브로드웨이 공연을 생각한다면, 제작진 입장에서는 무언가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고민 끝 제작진이 내린 방향은, 유리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에 집중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작품에 담긴 러시아의 시대적 배경 (제정/1차 세계대전/10월 혁명/독재정으로 이어지는)를 알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상세한 내용을 모른 채 매우 힘들고 혼란스러운 시절이라는 정도의 이해만 가지고 관람하더라도, 올바른 삶을 고민하는 유리에게 운명처럼 다가오는 라라와의 사랑에 관객들이 초점을 맞추도록 이야기를 끌어간다.

이 선택에는 분명 위험성이 따른다. 각 캐릭터가 은유하는 가치/제도/이념 등을 잘  알지 못해ㅗ, 사람 자체와 러시아를 더욱 사랑한 유리의 고뇌와 그것이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작품이 달리 보일 수 있다. '세상물정 모르고 자란 젊은이가 은혜도 모르고 인자한 장인장모와 지고지순한 부인과 순수한 자녀를 놓버리고바람을 핀 불륜 이야기', 대한민국 아침드라마에 딱 맞는 초막장 스토리로 여겨질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가장 력한 부분은 바로 서정적인 음악과 배우들의 연기력. 물론 무대와 조명과 영상의 역할도 있지만(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적으로 그 순간의 감정과 선택이 캐리터의 특성에 맞게 잘 전달되어야, 관객들도 등장인물들의 선택에 함께 공감하고 다양한 인간상들을 이해하며 공연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관계라고 합니다...


서로 다른 캐스팅의 두 번의 공연을 감상한 후,  아직 공연 초반부임을 감안한 나의 평가는... 괜찮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애초에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받기 어려운 선택을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마음에 잔잔히 다가오는 음악들과 배우들의 섬세한 표현이 조화를 이루어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랑일지 아닐지 미루어 놓은 마음을 서로 깨닫는 순간, 삶의 방향에 대해 스스로 다짐을 하는 순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과 타인의 선택을 이해하려는 순간, 사랑을 보내야만 하는 순간의 그 마음이 노래와 연기를 통해 잘 전달되었다. 복잡한 캐릭터인 유리에게도 자기 삶에 당당하고 싶으나 선택에 책임도 져야 하고, 때로는 너무나 중요하기에 회피를 선택하는 복잡한 마음도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두 번째 관람에서는 가족이슈에는 보수적이라 불륜에 큰 거부감을 가진 나도 예상치못한 눈물을 살짝 흘리게 되었다.  

남자의 이름은 자신이 만들지
죄값도 수치도 달게 받으리라
심장이여 뛰어라 더운 피로
내 모든 발걸음을 이끌어 달리게 하라
말해다오 삶은 헛되지 않다고
하얀 재처럼 허무한 눈물처럼 흩어지지 않으리
(Ashes and Tears 가사 중)

그럼에도 여전히 몇 가지 보완해야 할 부분들은,  흥행을 감안해야 하는 대극장뮤지컬이기에 더욱,   분명히 보였다.

뮤지컬넘버의 역할 중 하나는 관객들에게 일정 부분 가이드를 주는 것인데, 음악의 끝맺음이 애매하여 박수를 쳐야 할지 아니면 여운을 남겨 감상에 빠져야 할지 헷갈릴 때가 적지 않았다. 또한 몇몇 장면은 무대 활용 및 배경 설명의 부족 등으로 왜 저런 모습- 방해도 없는데 코마로프스키 저격을 실패하고 체념하는 라라, 전쟁터에서 집에 돌아갈 때까지 볼셰비키 혁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모스크바에서도 의사로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지바고, 신문의 설명에 따르면 자국 군대가 전쟁을 포기한 상황인데 집에 간다고 기뻐하는 간호사들 등 - 을 보이는지 관객들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렵에, 그들의 행동에 이유를 알려주는 디테일한 무대/스토리상의 설명이 필요해 보였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캐릭터의 상징 (유리는 고뇌하는 지식인, 라라는 러시아, 타샤는 현대적 지식인, 토냐는 이해하고 품어주는 모성의 마음 등)까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뮤지컬 내에서 인물들의 선택의 이유라도 알려면 말이다.


두  번째 관람 공연의 캐스팅 보드.


특별히 최근 공연계의 #metoo 이슈가 있기에 더욱 주목해서였을까, 여성캐릭터들과 관련하여 눈에 띄는 장면들이 보였다.
초반에 코마로프스키에게 무기력하게 이용당하는 라라의 모습에서, 왜 옳지 못한 행동에 거부하지 못하느냐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음을 다시 깨닫는다. 또한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강요된 관계를 맺는 왜곡된 집착(마지막에 라라를 살리려고 애쓰는 모습도 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조심스럽다) 의 문제점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유리의 소꼽친구요 부인, 토냐의 경우 관점에 따라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캐릭터로 이해되어 답답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보면 자신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바라볼 수 있지 않을가. 혁명 가운데서도 최소한의 보금자리를 지키고, 유리와 헤어지더라도 다른 가족들을 지키고, 어렵지만 라라의 역할과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모습 등에서 고난과 역경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모습 말이다.
2막 오프닝을 여는 여성들의 합창에서도 흔한 편견과 달리, 전쟁 중에서도  남성에 종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이 가사에서 보여지는 남성들의 유약함과 대비되어 다가온다. 흥행코드는 아니겠으나, 최근 보았던 다른 작품들의 장면들과 연결되어 남성 중심의 사회가 가진 고정관념을 반성하고, 무시되어왔던 소수의  의지와 용기가 세상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 돌아보게 한다.



대극장에서 흔히 기대하는 화려함과 고음의 향연이 넘쳐나는 작품은 아니나 섬세한 연기와 감정선들이 마음을 건드리며  많은 생각 하도록 만들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시대와 연결된 메시지가 생략되어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호연 가운데 각 캐릭터의 모순과 고민이 더 잘 느껴지고,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삶과 사람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으면 한다. 제작진의 도전이 어느 정도 공감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불륜 스토리 이상의 소중한 기억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길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라 느껴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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