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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S Feb 16. 2022

1988년. 윌킨슨 부인.

책 '빌리 엘리어트'를 읽고 

작년 트레바리-북뮤지컬 에서 '빌리 엘리어트'를 읽고 썼던 독후감. 


보통 원작을 바탕으로 뮤지컬이나 영화가 나오는데, 
이 책은 영화가 나온 후 출간된 소설로, 등장인물들의 1인칭 시점으로 내용이 진행돼요.

독후감은 주요 등장인물이지만 이 책에서는 시점이 언급되지 않은, 
빌리를 가르친 선생님인 윌킨슨 부인의 시점에서 작성하였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의 빌리 엘리어트 세번째 공연도 끝났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니만큼 
(빌리의 성장기 못지않게, 사회성이 담긴 내용이 좋아요.
Solidarity는 개인적으로 모든 뮤지컬을 통틀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안무이기도 하죠.)
앞으로도 빌리가 종종 찾아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생각할 거리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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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가 로얄발레학교로 떠난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헤어질 때 당부한 대로 대로, 빌리가 로얄발레학교로 간 후 우리 집이나 발레를 가르치는 곳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 마을회관에서 복싱을 가르쳤던 조지를 통해,

그리고 기대치 않았던 토니와 재키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통해, 

빌리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1984년 여름, 빌리와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복싱 실력은 별로였지만, 빌리가 보여주는 리듬 감각은 예사롭지 않았다.

마침 빌리가 열쇠를 조지의 부탁으로 나에게 던져줘야 했던 그날, 

빌리에게 몇 가지 기본적인 동작을 시켜보았다. 예상대로 빌리의 몸동작과 습득력은 대단했다.

물론 그때까지 남자아이에게 발레를 가르쳐 본 적은 없지만, 그리고 더럼 지역에서는 남자가 발레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지만, 이 아이에게는 분명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내 스타일대로 빌리를 자극하였더니 그 아이는 계속 함께 되었다.


이 녀석에게 가장 감동했던 때는 인상 깊은 물건으로 어머니의 편지를 주었을 때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알지 못했는데...

편지를 읽으면서 울컥할 수밖에 없었고, 참 특별한 분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 녀석, 그냥 우리 엄마일 뿐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나는 데비에게 어떤 엄마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황당했을 때도 있었지. 내가 로얄발레학교 오디션을 보기에는 나이가 많지 않느냐고 물어볼 때나, 설마 자기를 좋아하냐고 물어볼 때...

나 역시 로얄발레학교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고, 나름 잉글랜드 동북부에서는 괜찮은 발레 유망주였다. 20대 시절에서는 내가 이렇게 살아가리라 상상하지 못했지만, (꼭 남편 탓만 하지는 않겠다)

그래도 더럼에서 발레를 가르치는 삶도 괜찮았다. 아무튼 빌리가 이런 질문을 할 때는, 확실히 열두 살 아이구나 생각이 들었지.   


가장 화났을 때는 그래도 뉴캐슬 오디션을 못 갔을 때, 그리고 토니가 나를 모욕했을 때였다. (물론 나 역시 맹렬히 대응했지.)

형이 말 엉덩이에 불을 붙이는 바람에, 그게 계기가 되어서 그 기회를 놓치게 되다니. 물론 나 역시 지역 사람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는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지만, 파업이 승리할 수 없음은 저절로 알 수 있었다. 그들과 내가 계층이 다르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대처 정부의 강력 대응으로 볼 때(내년 선거에도 보수당은 승리할 듯하다), 광부가 아닌 내 남편조차 실업자가 된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정부는 기조를 바꾸지 않을 듯했고, 산업구조개편 등의 방법이 런던 등 이 나라를 운영해가는 지역에서 먹혀 들어가고 있지 않나.

뭐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빌리 정도의 Exceptional 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재능을 펼칠 기회를 줬어야 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후 재키가 찾아왔을 때, 놀라면서도 반가웠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빈 마을회관에서 빌리의 춤을 보고, 빌리의 재능을 그 역시도 느꼈나 보다.

나는 열과 성을 다해서 그를 설득했고, 결국 재키는 빌리에게 오디션 기회를 주기 위해 그에 기존 생각과 다른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 후 빌리가 오디션을 보러 갈 때까지의 일들은 대부분 이미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뒷이야기를 하자면 발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소액이나마 모금에 참여한 경우가 있었고(데비도 고민하다가 자기 용돈을 일부 털었다), 소수이지만 토니가 중산층이라고 불렀던 사람들도 조용히 모금에 동참하기도 했다. 나 역시 심사위원들에게, 특별히 20대 발레스쿨에서 함께 했던 제니를 기억하며 추천서를 썼는데.... 빌리의 합격에 추천서가 큰 영향을 끼친 건 아닌 듯하다. 나중에 제니에게 듣기로는, 면접장을 나가기 전 빌리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과 마음을 가진 친구에게는, 꼭 기회가 필요하다고.



빌리가 간 지 3년이 지난 지금, 에버링턴 지역은 점차 쇠락해가고 있다. 

탄광은 유지되고 있지만 그 규모는 점차 작아지고 있고, 적잖은 사람들이 떠나는 중이다. 정부에서 물론 사회복지 정책을 피고 보조금도 주지만, 그들이 만들었던 커뮤니티에서 주었던 안정감과 유대감에 비하면 부족하겠지. 

발레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줄어들고 있어서, 나 역시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방법에 대해 생각 중이다. (데비는 발레에 소질은 없는 듯하고, 예상외로 언어에 적성을 보이며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 한다. 가끔 빌리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는 빌리에게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빌리의 절친이던 마이클과도 친하게 지내는데, 이 녀석 패션센스가 남다르다. )


처음에 이야기했던 대로 재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두 번, 토니에게 카드를 한 번 받았다. 지금 에버링턴의 삶은 쉽지 않지만, 탄광노조 지도자였던 아서 스카길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때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빌리에 재능을 알아봐 줘서 고맙고, 그 때는 미안했다고. 다행히 전액 장학금을 받아서, 학비에 대한 걱정은 덜게 되었다고. 


빌리를 볼 기회가 있었으나 가지 않았던 적이 있다. 바로 작년에 있었던 빌리 할머니의 장례식. 마을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할머니는 치매를 겪으며 마지막에는 빌리가 런던으로 떠난 것을 잊어버릴 떄도 자주 있었지만, 그래도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빌리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 녀석, 나와 춤추는 것도 좋아했다고. 나와 사라의 DNA가 분명 영향을 끼쳤다고.



글을 끝내기 전 마지막으로.

사실 빌리가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편지는 세 번 정도 보냈었고, 마지막 편지는 1주일 전에 왔다. (내가 답장을 보냈다면 그래도 몇 번은 더 작성했을 거다.)

바로 뜯어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뜯어보니 이제는 잘 적응하고 있다고. 나중에 단원이 되어 정식 무대에 설 기회가 되면 꼭 초대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난 이렇게 답장을 보낼 예정이다.
"아직 멀었어, 빌리. 너의 재능 정도면 로얄 발레단에서 공연한다는 것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건 재능을 낭비하는 거야. 

너가 로얄 발레단에서 주연을 세 번째로 맡게 된다면, 그때는 초대해줘도 괜찮다. 첫 번째 주연일 때는 너희 가족들을 초대하고, 두 번째 주연일 때는 조지 등 너에게 도움을 주었던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렴. 그 정도 시간은 지나야 너가 날 초대할 자격이 있다고 난 생각해."


10년 안에는, 빌리를 코벤트 가든 오페라 하우스에서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때 빌리를 안는다면 나도 평상시와는 다른 기분을 느끼겠지.

약간은, 그냥 우리 엄마 같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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