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읽고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각자의 해답만이 있다는 말이 있다. 김영하 작가는 수학 문제 정답지처럼 여행의 이유를 정리한 게 아니라,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늘어놓듯 이야기를 모았다. 내가 요새 회사와 커리어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시기여서 이런 생각이 든 것 같기도 하다. 이참에 내 상황과 연결해서 인상 깊은 문구와 내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내 삶을 내가 편집하다
라이프 에디터?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편집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다르게 흘러간다. 건강하고 이성적인 합리화는 이롭다. 김영하 작가는 예전에 어떤 강연에서 '상담은 각자의 이야기를 새로 편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2016년 10월 28일 메모장에 적어둔 것을 보니, 이때쯤 했던 강연인 것 같다. 그의 이런 가치관은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서도 드러난다. (출처를 표기한 페이지는 모두 리디북스 전자책 기준)
나는 어느 나라를 가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너무 고심하지 않는 편이다. 운 좋게 맛있으면 맛있어서 좋고, 대실패를 하면 글로 쓰면 된다.(15쪽)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23쪽)
작가라는 직업 특성도 있겠지만, 여행지 식당에서 일부러 아무거나 시킨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맛있으면 맛있는대로 좋은 거고, 실패했다면 그것을 글로 쓰면 된단다. 성공담도 실패담도 모두 우리 인생이고, 다 가치가 있으며, 쓸모 있게 만드는 건 내 몫이다. 그래서일까. 이력서에 자주 나오는 항목은 실패 경험과 극복 방법이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겪고 있다면, 내 인생에 이야깃거리가 나왔으니 반가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힘든 상황에 처한 당시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 감정 소용돌이에 파묻히는 것보다, 이성의 힘으로 내가 나를 토닥여주는 게 낫다. 막연히 마음을 다해 감정적으로 위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객관적으로 합리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리는 게 더 효과적인 치유법이라고 생각한다.
알을 깨뜨려서 성장할 때
감수해야 하는 것들
나라는 사람은 생각이 많아서, 감정이 많아서, 깊은 속은 뒤죽박죽 복잡하다. 그러한 기질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그것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한다. 괜한 근심과 과도한 후회, 버거운 감정에 짓눌리면 너무 힘들다. 살아가기 조차 힘들어지니까. '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60쪽)'는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잠시 내버려두기도 하는 것이다.
경험이 쌓이고 자신을 잘 알게 되면서, 쓸데없는 걱정과 감정 소모는 훨씬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하기 버거운 소용돌이가 칠 때가 있다. 과거에 받은 비슷한 충격을 받았을 때, 중요한 결정을 내려서 큰 변화를 앞두고 있을 때. 요즘 내가 그렇다. 위기에 닥치면 본성이 나온다던가.
전체적으로 나는 에피쿠로스나 스토아학파의 입장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알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냥 현재를 즐기자. 현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 마주 앉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미래는 포기하고 현재에 집중하자고 생각했고 그것은 사실 내가 모든 여행에서 택하는 태도이기도 했다.(95쪽)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95쪽)
김영하 작가는 '여행'에 국한 지은 생각을 쓴 것이라고 보인다. 그는 현재 그 순간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필요한 때는 여행뿐 아니라, 일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에 공감한다. 미래 걱정만 하느라 현재 행복을 만끽하지 못하는 건 안타깝다. 하지만 때로는 현재만 즐기느라, 현실적으로 필요한 고민과 미래 계획을 등한시해서도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보다 미래를 그리고 변화를 하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와 고통이 들어간다. 알을 깨서 더 큰 그릇을 갖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요즘 혼란스러운 이유도 이와 같겠지.
정신 바짝 차려서 상황을 파악해서 나를 지키려고 애써본다.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며 토닥인다. 앞으로도 내 삶을 잘 편집하고 해석할 것이다. 평온한 상태의 순간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으려면 혼란스럽고 아파도 변화와 도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변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를 위한 고통을 기꺼이 겪어보자. 지금 겪는 이 혼란과 고통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