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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툐툐 Dec 03. 2018

가슴 뛰는 일,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나요

영화 <행복한 사전>을 보고

남이 뭐라 하든 남이 싫어하든 말든, 내가 좋아하고 괜찮으면 그만이다.

마지메 군에게는 사전을 만드는 일이, 카구야 양에게는 요리가 그랬다. 영화 <행복한 사전>에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삶을 바꿀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업과 적성을 찾아내고 열정을 쏟는다. 주인공 마지메 군은 영업팀에서 사전편집부로 옮긴 후 그제야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사전편집부에서의 첫 회의와 첫 회식 후, 그는 온갖 사전을 잔뜩 사 들고 퇴근한다. 그토록 무거운 사전들이 그의 손에는 가벼워 보였다. 사전과 사랑에 빠진 마음이 느껴졌다. 사전을 만드는 데는 10~20년이 걸린다. (영화 배경 1995년 기준) 인내심과 단어 사랑이 매우 커야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전과 단어의 매력에 빠졌다. 다음 대사는 마지메 군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했으리라 추측된다.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이죠. 그건 타인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 아닐까요. 그러니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사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도해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전이 돼야 합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당신, 쫌 멋진데?


나는 내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어서 성인이 된 후로 어휘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내가 내 마음, 생각, 취향을 못 읽겠는데 남에게 어떻게 표현하고 또 남을 어떻게 알 수 있으리. 표현 가능한 그릇이 커지면서 나 자신도 내 인생도 튼튼해지고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다.

“내 손끝이 단어를 만진다는 건 세계와 접하는 기쁨이라 할 수 있지. 그게 사전 편집 일의 참맛이야.”

“단순 작업이라 지루하지?” “아뇨.”

“젊은 나이에 평생 할 일을 찾은 것만으로도 미쓰야는 행복한 거야.”

내가 글의 매력에 빠진 순간을 돌이켜 보았다. 어휘, 표현, 소통, 공감, 인터뷰 등을 좋아하게 된 계기. 그리고 과연 현재의 나는 내 일을 얼마나 사랑하고 의미 있게 여기고 있는가.

일을 영리하게 잘하려면 무조건 열심히 하고 무리하게 애쓰면 안 된다. 현재까지 내 결론은 우선 그렇다. 하지만 미련하게 몰입해서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는 단계는 분명히 필요하다. 마지메 군도 처음에는 느릿하고 괴짜 같았지만, 15년 후에는 썩 여유롭고 든든한 면모가 보였다. 마지메 군이 설마 15년 동안 단 한 번의 슬럼프 없이 사전을 만들진 않았겠지. 어쨌든 대도해 사전을 끝까지 만들어낸 점은 본받을 만 하다.

사전은 교정을 5번이나 한단다. 잡지는 보통 2~3교 정도.
거의 가족인 사전편집부, 그래도 난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


“다른 사람 마음이야 모르는 게 당연하지. 모르니까 상대한테 관심도 생기는 거고, 모르니까 대화를 하는 거잖아.”

그러게, 사람 마음을 모르는 게 당연하지.

사회성 제로인 마지메 군이 사랑에 빠진 건 사전과 단어뿐이 아니다. 바로, 미야자키 아오이가 연기한 하야시 카구야. 사전을 더 잘 만들고 싶어서 동료와 친해지려 노력하기 시작하고,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자 그만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을 찾아간다. 서툴지만 마음을 다하는 모습이 귀엽고 멋있었다.

“‘사랑’의 해석은 마지메 씨에게 맡깁시다. 분명 생생한 풀이를 쓸 수 있을 겁니다.”

“사랑이란,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자나 깨나 그 사람 생각이 떠나지 않고,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며 몸부림치고 싶어지는 마음의 상태. 이루어지게 되면 하늘에라도 오를 듯한 기분이 된다.”


내 맘을 전해요, 편지로


좋아한다. 무언가를 읽고 보고, 어떤 사건을 겪은 후에 느낀 것을 글로 쓸 수밖에 없는 상태를. 진하게 기억해두고 싶어서 한글자 한글자 내뱉고 편집하는 과정을.

일을 하며 가끔 갈증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을 글로 만지는 게 아니라, 다른 회사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자본주의와 기업 마인드로 글을 만져서인 것 같다. 현재 내 직업이 그런 것이라 어쩔 수 없다. 글로 밥벌이하는 것의 한계. 전업 작가가 되지 않는 이상 극복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문학가를 꿈꾸나? 그렇진 않은데. 그럼 다시 기자가 되고 싶나? 그렇지도 않은데. 그럼 그토록 지금의 내가 싫니? 그렇지도 않은데. 뭐 그럼 된 것 같기도.


일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 한 사람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 언어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접하고 난 후 떠오른 이런 저런 조각들. 나중에 발견하거나 생기는 조각들과 잘 맞춰보겠습니다! 마지메 군, 다음 사전은 언제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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