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직장에서 내가 이룬 것들
연인이 이별하는 이유와 방식이 다르듯이, 퇴사 이유도 다양하다. 다만 같은 점이 있다면, 어찌 됐든 고통스럽고 아프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마음이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건 당연하다. 아무리 아름답게 헤어진다고 해도, 이 세상에 온전히 아름다운 이별은 거의 없다. 사람 사이처럼, 회사와 개인 사이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건강하게 합리화하고 똑똑하게 경험을 편집해야 한다.
연인과의 이별 = 퇴사 ?
이별과 새로운 만남으로 더 성숙해질 나를 그리며
지금 다니는 회사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지난날을 되새겨 본다. 원래 고뇌는 괴롭다. 아픈 곳을 적나라하게 직면해야 하고, 복잡하고 진지한 것들 투성이니까. 그래도 인생에서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이 자아 탐구와 성찰이다. 아니다, 잠깐, '나란 사람에게 필요하고 내 삶에 유익한 것'이라고 정정한다. '뭐하러 이렇게 깊숙하게 내면으로 파고들면서 자신을 괴롭히냐'라고 제게 물으신다면, '타고난 기질이 이렇답니다'라고 밖에 답할 수 없다.
요즘 넘쳐흐르는 생각과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이것들을 껴안고 있다가는 내가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글을 쓴다. 아니, 배설한다. 우울은 예술가에게 창의성의 원천이라던가. 뭐 이런 거 비슷한 듯하기도 하다.
아, 잡생각 멈추고 다시 돌아와서. 섣부른 판단, 감정적인 결정, 진한 상처만 남는 이별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감으로써, 내 커리어를 더 확장하고 나 자신도 더 성숙해지도록. 사보사에서 2년간 일하면서 어떤 것을 이루었는지 정리해보겠다. 이번 기회에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의 방향이 어디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다시 정립해보고 싶다.
사보 에디터로서 내가 이룬 것들
이 회사에서 일한 지 만 2년이 지났다. 나쁘지 않았다. 성과도 꽤 많았다. A사 사내 웹진을 오픈해서 2년 동안 운영해왔고, B 기관 웹진도 6개월 간 총괄했으며 C 기관의 학술지도 만들었다. 그밖에 다른 팀원의 프로젝트에 취재 지원을 나가서 원고를 작성하기도 했다. 장기 휴가를 갔던 직원 두 명의 프로젝트를 한 달씩 대신 맡은 적도 있다. 회사의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운영해본 셈이다.
대행사 업무는 클라이언트가 어떤 스타일인지에 따라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 정도가 정해진다. 다행히 내가 주로 맡은 A사는 내가 마케터였을 때를 통틀어 가장 스마트하고 합리적이며 손발이 잘 맞았다. 오픈했을 때부터 내가 담당했기 때문에, 웹진 운영에 필요한 프로세스를 모두 내가 만들고 수월하게 돌아가도록 이끌었다. 클라이언트 실무자는 웹진 운영이 처음인지라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월별 콘텐츠 계획 시기와 기획 방식, 콘텐츠 성격에 따른 기사 형태 선정 등도 내가 능동적으로 클라이언트에게 알려주고 함께 운영해 갔다. 웹진 오픈 초기에 클라이언트가 인터뷰이에게 취재계획서를 미리 전달하지 않는 바람에, 현장에서 인터뷰이가 당황하지 않게 내가 대신 상황을 설명해주고 인터뷰했던 기억이 난다.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지만 모두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과 애정이 가득하다. A사와 2년간의 업무 경험은 나중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성공 경험을 준 프로젝트이고, 이전에 클라이언트에게 받았던 상처를 치유해주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자기 효능감을 되찾았다. 인정받은 주요 역량은 운영 관리력과 기획력. 나는 내가 을이라서 끌려다니지 않았다. 꽉 막히지 않았던 A사 특성과 내가 웹진 오픈 초기에 투입되었던 덕분인 것 같다. 주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제안해야 할 사항이 있으면 주저 없이 의논했다. 상반기와 하반기마다 모든 콘텐츠의 조회 수, 댓글 수 등을 엑셀로 정리 후 분석해서 개선할 점과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임직원 대상 영상 제작 체험단과 영상 제작법 관련 유튜버 초청 강연, 드라마 영화 패러디 창립 축하 이벤트 등이다. B 기관의 학술지의 경우에는 나와의 작업을 마음에 들어하시면서, 다음 해의 학술지도 함께 작업했다.
사람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건 행복한 경험이기도 하지만, 끔찍한 고통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예전 퇴사 경험 중에서 가장 괴롭고 힘든 기억이 나를 괴롭힌다. 내가 잘못한 건 무엇인지, 이번에는 또 무엇이 부족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자기 비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적어보니 지난 2년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해진다. 회사 사정이 이렇게 나빠지지만 않았다면, 이 회사에 더 오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회사에서 담당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한정적이라서, 더 다양한 업무를 해보기 위해 언젠간 떠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