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록하는 사랑
백수린 작가의 <친애하고, 친애하는>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와 함께 보낸 몇 달을 떠올려 보며, 사랑하는 할머니가 문득문득 생각나는 일상의 여러 모습들을 나열하면서, 극 중 주인공이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랑이 뭘까,라고.
사랑이 뭘까?
기말 페이퍼를 준비하면서 읽었던 여러 책 중에 작가 파커 파머의 <To Know as We Are Known>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북이었는데 밑줄을 긁고 싶어서 종이책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좋은 부분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배움은 변화를 마주하는 것(to learn is to face transformation)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일생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을 만나,
하루하루 서로를 얼싸안고, 서로가 서로에게 부딪혀 깨지기도 하고,
쿵작이 잘 맞는 날엔 춤도 췄다가, 이러쿵저러쿵한 주제로 시부렁시부렁 하기도 하는 시간을 4년째 보내다 보니,
사랑은 나와 너에 대한 배움이고, 곧 변화 속을 함께 살아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너는 어느새 아내와 남편을 넘어 엄마와 아빠가 되었고, 내가 육아휴직을 하며 집에서 아이를 보육하는 동안 너는 직장과 근무환경이 한번 크게 바뀌었다. 복직을 앞두고 나는 졸업 작품 이후 처음으로 다시 가죽을 만져보고 싶어서 커뮤니티 센터에서 하는 가죽공예 101 수업에 마지막 참여자로 아슬아슬 등록을 마쳤고, 너는 근처 대학교에서 수업을 하나 더 들어볼까 고민을 시작했다. 매일 나이를 먹어가는 것만큼이나 우리의 환경과 우리의 상황과 우리의 원함이 변해간다.
우리 두 사람만 이래저래 잘 건사하면 단조롭고 나름 편안한 생활이 지속되던 나날들이 지나고, 이제는 우리를 빼닮은 1살 아들의 아침 기상부터 저녁 취침까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그의 발달과정과 그에 맞게 매 순간 변하는 변덕스러운 관심사가 우리를 만족케 하다가도, 또 괴롭게 한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낮잠을 잤는지, 그 낮잠의 퀄리티가 어떠했는지, 일어날 때 아이의 표정이 어떠했는지, 이런 사소하고도 아무것 아니어야 할 내용들이 나의 하루의 감정 전체를 파워풀하게 다스린다. 내 안의 화살표가 오직 나와 너만을 향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저 작은 인간에게로 향하여 있다.
중심이며,
가장자리이기도 한,
겨우 작은 꼬맹이 한 사람이지만,
내 전부만 한 사람.
그에게로 우리의 모든 방향이 쏠리고 있다.
병원 예약 때문에 내일 하루 휴가를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12살 소녀처럼 신이 나 웃으며 발을 동동 구른다. 우리 내일 오손도손 차도 한 잔 마지고, 손 꼭 잡고 산책도 할 수 있겠다.
나도 너도, 우리 주변 모든 가족과 친구들이 변하고,
우리 삶의 방향과 삶이 지닌 의미가 모두 다 변한다 해도,
결국 그 변화 속에 우리가 함께일 거라는 사실.
그게 사랑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너를, 너만을 알겠다는 다짐.
끊임없이 너를 알아가겠다는, 배워가겠다는 맹세.
그래서 우리가 함께 나이 들며 성숙해지며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성화의 과정 동안 너와 함께 걷겠다는 약속.
이것이 오늘 내가 기록하는 사랑이다.
이 사랑을 나의 남편인 너에게, 나의 아들인 원에게, 그리고 나의 구원자인 예수께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