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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Nov 17. 2016

여행에 대한 오해, 행복에 대한 착각

여행과 행복의 상관관계

여행, 이라는 단어 자체에 무척 집착했던 적이 있었다. 한비야처럼 살고 싶다, 라는 뜬구름 같은 소리를 쉽게 내뱉고, 세계일주를 하기 위해 이천만원을 모아야 한다는 강박 속을 헤매던 시절, 나는 불행했다.


신세를 지고 있던 친구네 집을 나와 서울 양천구에 옥탑방을 구했다. 이것저것 사면서 모아둔 돈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그 당시 연애를 시작하면서 통장 상태는 저금 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음을 직감했고, 2년의 휴학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러다 기회가 와서 한국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분들과의 이야기가 책으로 엮어졌다.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는 성취감은 여행이라는 나의 욕구불만을 잊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미국으로 돌아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 다시 캐나다로 돌아오면서 다시, 여행에 대한 판타지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4년의 대학 학비 및 생활비가 가치 있는 투자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취직을 했다. 내 앞가림쯤은 나 혼자서 할 수 있음을 굳이 확인시켜드리고 싶었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을 하고, 어색했던 것들이 익숙해질 무렵, 매일 할인항공권을 판매하는 웹사이트를 기웃대고, 에어비앤비 AirBnB에서 이 곳 저곳을 검색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한해 할당의 유급휴가를 다 써버렸거나 모아둔 여행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믿을 수 없는 가격의 항공권을 구입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다. 


이런 행동이 하루에서 일주일이 되고, 한 달에서 일 년으로 이어지다 보니 내가 속한 직장, 함께 일하는 동료, 주변의 친구들과 매일 마주하는 가족들에게 까지 불만이 쌓여갔다. 어느새 나는 긍정적인 에너지 대신 후회의 언어를 가진 사람, 미래에 대한 소망 대신 어제에 대한 실망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달 전부터 계획하던 하와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한국 방문을 앞둔 엄마와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나와 동생은 휴가를 냈다. 어디를 가야 하고 무엇을 꼭 먹어보아야 하는지,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조사를 하고 계획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인 듯 보였던 한 달이 금방 지나가 버렸고, 나는 훌륭한 가이드의 역할을 하고자 했지만 엄마와 동생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냥 편안하게 쉬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돌아다니다 오자. 


나의 성격상 편안하게 쉬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돌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하와이 여행에서는 이전의 내가 가지고 있던 조급함은 없었다. 사방팔방 뛰어다닌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었던 거다. 

여행이 주는 행복은, 편안함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때에 나에게 오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여행 내내 더위와 습기에 익숙해진 나는, 밴쿠버에 도착한 이른 아침, 내가 이렇게나 신선한 가을 공기를 그리워했는지, 스산한 밴쿠버의 날씨가 주는 청량함이 어떤 의미인지 확인했다. 

여행이 주는 또 다른 행복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정감과, 여행이 추억이 되는 성취감 같은 것이기도 했다.


하와이 여행에서의 깨달음은, 나로 하여금 동료들을 통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했다.


곧 떠날 휴가 생각에 한껏 들뜬 여러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서 새롭게 여행하게 될 나라와 도시, 함께 가는 친구들과 연인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들이 하루에서 이틀 정도 간직하곤 하는 그 행복의 기운을 함께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휴가의 후유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행의 짜릿함이 이 정도로 짧은 것이라면, 내가 생각해온 여행과 행복의 상관관계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것이라는 뜻이었다. 




우리의 주변에는 우리가 가보지 못한 나라,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도시를 여행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여행기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혹은 직접 들어서 알게 된다. 이러한 간접적 경험은 우리에게 영감과 자극제가 되어준다. 여행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여행을 결심하기도 하고, 여행에 대해 두려움이 많았던 사람들의 선입견을 바꾸어 주기도 한다. 여행의 아름다움만이 선전되어 모든 경험 자체를 미화시키는 촉진제가 되는 나와 같은 경우도 있다. 나에게 맞는 여행이 어떤 여행인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나는 여행에 대한 미화된 상상 속에 빠져 있었던 것이었다. 


최근에 1년 6개월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온 커플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에 격앙되어 내가 가보고 싶은 나라들을 끊임없이 나열하는 나에게 남자 친구는 질문을 던졌다.


여행 가면 뭐할 건데?


"걷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라고 대답하는데 왠지 거짓말을 하고 있을 때의 기분이 들었다.


주말에도 늦잠 자고, 일어나서 무한도전 틀어놓고, 청소를 하다가도 뭔가를 더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저런 기사를 읽고 글을 끄적여야만 속이 시원한 나인데, 걷고 쉬고 구경하고 먹는 것으로 내가 과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여행, 자체를 놓고 바라기만 했었지, 진짜 내가 원하는 여행이 무엇인지는 나 자신에게 질문해본 적도 없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고 싶어서. 

남들이 많이 안 가본 곳이니까 다녀오면 나는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현실은 매일 똑같은 직장생활인데 여행을 가면 잠시라도 이런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라는 한참이나 모자란 핑계들만 갖고 있었다.




이주 정도가 지나고 최근 1년 6개월의 세계일주를 마친 친구 한 명을 다시 만났다. 그녀는 지난 여행길에서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나만의 여행이 내게 가장 옳은 여행이라는 것을.


여행은 체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행위이다. 마음이야 전 세계를 걸어 다니며 숱한 경험을 쌓고 싶지만, 실제로 나는 장시간의 달리기는 물론 걷는 것도 자신이 없다. 노인이 되었을 때의 나를 생각해서라도 체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실제로 체력은 눈 깜짝할 사이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노력이 긴 시간 모여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여행은 지금의 나의 체력에 맞게 계획해야 하는 것이 맞다.


또한, 취향 또한 감안해야 한다. 자연이 좋은데 빌딩 숲을 여행할 순 없는 노릇이다. 도시가 좋은데 산속을 헤매는 스케줄은 혐오 그 자체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성격에 맞게, 입맛에 맞게 여행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편협적인 여행보다는 다양한 체험을 우선하는 사람이라면, 살짝 의외의 여행코스로 도전을 감수해보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여행을 오해했고, 행복을 착각했었다. 나의 현실을 벗어나기만 하면 모든 것은 괜찮아질 것이라고,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고 나 자신에게 계속 외치는 꼴과 같았다. 내가 나 자신에게 저지르는 실수였다. 바로 그런 내가 문제였다. 


왜 나는 이런 실수를 저질렀어야만 했을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행복에 대한 착각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1.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었으나, 본래 등잔 밑이 더 어두운 법이랬다.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나에 대해 곰곰이 고민해본 적도 없고, 나를 이해하기 위해 딱히 노력해본 적도 없으며, 나를 누군가에게 자세히 소개할 기회를 가진 적도 없었다.


이제와 나에게 가장 맞는 일이 무엇 이는지,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있는지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인생에 있어서 나라는 사람을 캐내어 볼 좋은 시간이 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2. 내가 해보지 못한 것을 미화시키는 버릇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이 있고, 미국에도 남의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인다는 속담이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것, 내가 가지 못한 곳, 내가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판타지가 강했다. 그렇다 보니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내가 있는 곳에서 찾아낼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놓치며 살았다. 현실이 모여 꿈이 된다는 것을 나는 어느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의 도시, 나의 사람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회복하고 있다. 

가을엔 시원한 가을비를 내려주어서, 겨울엔 가끔씩 흰 눈을 구경시켜주어서, 봄에는 따뜻한 바람과 여름에는 늦은 시간까지 빛나는 나날들을 선물해주어서 감사하다. 관심사 다양하고 대화의 주제를 마구 바꾸어대는 나 같은 사람도 친구라며 나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3.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가 없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다. 일례로, 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작업을 하다가도 다른 아이디어가 불쑥 끼어들기 십상이다. 때론 바쁜 일상이 좋지만, 바쁜 스케줄은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할 기회를 앗아가기도 한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읽고 듣고 알게 된 모든 이야기들이 영감이 되었다. 꾸준히 기록하는 습관을 쌓고, 그 글들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용기를 내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하나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글'이라는 목표가 생기고, 생각과 계획들이 정리되어져 가고 있다.




지금도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나의 여행,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여행은 무엇일까 고민한다. 아무 목적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이 무조건 생각 없는 여행인 것도 아니고,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이 복잡하고 어려운 여행인 것도 아니다. 그저 여행이 하나의 도구가 되어 나라는 사람을 더 성장하게 하고, 나의 마음을 더 넓혀준다면 그 길에서 나는 행복할 수 있다. 내가 여행을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여행을 하지 못해 불행하다고 생각했었던 과거의 실수를 과거에서 멈추기로 한다. 

그리고 여행과 행복의 정의를 다시 내린다. 

나의 마음을 굳건히 다지고 내가 가장 하고자 하는 일을 매일매일 지속해 나간다. 


나는 믿는다. 나의 의도를 잘 나타내 주는 단어 하나가, 나의 기분을 설명해주는 문장 하나가 나를 또 어디론가로 데려가 줄 것을. 

또한, 행복은 내가 여행할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속에 나와 함께 있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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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Steven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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