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브런치를 시작한 것은 올해 초였다. 한국에 다녀온 후, 노인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이 자꾸 생각이 나서, 벽을 향해 누워있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할머니에 대한 글 하나를 올렸다. 아주 가끔, 브런치에 로그인을 해서 그 글을 다시 읽곤 했다. 저장해놓고 혼자 보다가 나중에 엄마 혹은 동생에게 보여주어야지, 했다.
그렇게 여름을 맞이했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퇴사를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인에게서 꾸준히 글을 써볼 것을 권유받았다. 올해 1박 2일로 짧게 다녀온 여행의 에피소드로 글을 하나 완성했다. 연습 삼아 영어로 먼저 쓰고, 한국어로 번역해두었다. 그 글을 브런치에 2번째로 올렸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친구에게 글을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다. 브런치를 즐겨하지 않던 그녀는 어렵사리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찾아내 글을 읽고, 지금껏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올해 8월부터 엄마와 동생 이야기를 시작으로, 나 자신을 응원하는 내용이나 내가 모은 정보를 소개하는 글들을 꾸준히 올리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글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내가 즐기는 기록의 주제들이 좀 더 선명해졌고, 그에 맞는 매거진들을 만들었다.
그러다 지난 11월 4일, <아끼면 똥 되는 것 4가지>라는 제목의 글을 썼고, 브런치에 올렸다. 삼일이 지난 11월 7일, 146,728명이 이 글을 읽었다는 알림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 여가 지난 지금, 이 글은 총 200,533명이 읽었다고 한다.
나는 유명 작가도 아니고, 글로 돈을 버는 사람도 아니다. 감사하게도 5년 전, 좋은 인연이 된 미다스 출판사와 <색에 미친 청춘>이라는 인문학 서적 하나를 출판하게 되었지만, 사실 오늘까지도 작가라고 나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낯간지럽기만 하다. 이 곳에 글을 올리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나의 생각을 공유하겠다 결심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제목 하나 믿고 나의 글을 클릭해준 사람들이 20만 명이 넘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준다.
나는 나의 글을 읽은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글을 한 문장만 읽고 멈추었는지 아니면 끝까지 다 읽고 창을 닫았는지 알 수 없다. 문지기도 없고 매니저도 없는 온라인 세상이라는 게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보다는 글을 쓰는 나 자신에 대해, 나의 글의 주제가 되는 삶의 많은 요소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아끼면 똥 되는 것 4가지>라는 글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시작되었다. 말 한마디 곱게 할 수 없나, 댓글 하나 곱게 달수 없나, 라는 인간 심리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 하나가 글이 되었다고 하면 옳으려나. 중요한 순간에 마음 약해지는 본래 성격 때문에 대놓고 싸움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나라도 한번 사는 인생 아낌없이 살다 가자, 라는 의미에서 썼던 글. 어쩌면, 이 글을 읽은 사람들도 언젠가 한번, 자신의 삶 속에서 이런 답답함을 느꼈었겠구나, 싶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다. 일시적이라는 시간의 한계를 갖고 있다. 게다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의 특성상, 끊임없이 모양이 변한다. 어제는 분노였던 것이 오늘은 안타까움이 되기도 한다. 어제는 죽고 못살았던 연인이 오늘은 꼴도 뵈기 싫어질 때도 있다. 변심에는 이유가 되지 못할 것이 없지 않나.
그래서 그 감정에 파묻혀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하기를 제안하고 싶다. 운동이나 요리. 산책이나 독서. 잠기지 말고 빠져나와라. 그렇게 상황에서 멀지 감지 서서 그 상황을 다시 바라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아끼면 똥 되는 것 4가지>를 쓰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인간관계 속에서 내가 설정해놓은 기준들. 기준에 맞지 않으면 마음속으로 큰 엑스자를 그리는 못된 습관. 그리고 이들을 멀리서 발견하고 난 후, 부정적이었던 나의 감정은 미래지향적인 감정으로 변해있었다.
<아끼면 똥 되는 것 4가지>는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17번, 페이스북을 통해 8번, 총 25번 공유되었다. 무심코 소셜미디어를 통해 글 하나, 비디오 하나를 공유하는 것에는 나의 예상 이상의 파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념무상으로 웹서핑을 하다가 웃긴 영상 하나를 발견하면 링크를 복사에서 친구에게 보내고, 감동적인 글을 보면 트위터에다가 공유하는 것. 그 공유는 또 다른 공유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소셜 미디어 마케팅이다, 블로깅이다, SEO다 하는 것들이 모두 '나눔'이라는 키워드에서 파생된 단어들이 아닐까. 내가 써보니 너무 좋아서 그러는데 너도 한번 써봐, 내가 읽어보니 너무 감동적이어서 그러는데 너도 한번 읽어봐, 보다 더 나은 마케팅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나눔의 전에는 물론, 나눌 가치가 있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글을 쓰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숙제이자 도전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나의 생각을 함께 공유해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아끼면 똥 되는 것 4가지> 보다 더욱 나눌 가치가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 그런 다짐을 해본다.
인터넷이 온지구에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테크놀로지가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물었다고는 하지만, 오늘이라는 24시간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좁은 시야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사실 하나는, 내 부족한 머리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이라는 하루를, 나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지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12월 8일, TVN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에 출연한 조승연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는 5천만 명 중에 내가 관심 있는 분야와 같은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지만 지금은 50몇 개 국가에 흩어져있는 10억 인구 중에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 몇천 명만 찾으면 나는 그걸로 먹고살 수가 있다는 얘기예요.
20만 명이 되는 사람들이 짧은 내 글 하나를 읽었다는 기록을 보면서,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국가와 언어와 문화를 넘어 소통할 수 있다는 온라인의 힘을, 나는 조금이나마 체험하게 된 것이다.
어떤 일이든, 그 일 이전에는 사람이 존재한다. 하와이 여행을 다녀오면서 내가 내린 결론도 여행 이전에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인지, 생각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또한,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의 방향이 무엇인지도 자주 되짚어 보아야 한다.
브런치의 통계 시스템은 매섭도록 자세하거나, 징그러우만치 꼼꼼하지는 못하다. 그래서, 내 브런치를 방문한 사람들의 나이라던가, 출신 지역이라던가, 글을 읽는 평균 시간 등을 알 길이 없다. 그들의 취향을 저격한 맞춤 글들을 쓰고 싶기도 하지만, 브런치가 가진 단점을 오히려 나의 장점으로 보완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누가 읽는지 모르기 때문에, 특별한 마케팅의 목적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글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삶에서 겪어야만 하는 갈등을 글로 풀어내고, 이기적인 체질로는 너무나도 어려운 '나눔'을 실천해보고, 나뿐만이 아니라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한 줄의 문장이 누군가의 오늘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기에, 글의 제목을 믿고 클릭해준 당신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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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Image by Tony Lam Hoang
Caption Images by Ming Jun Tan, Anna Dziubinska, Evan Kir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