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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Oct 25. 2016

하와이 체크리스트 #2 바다

바다가 선물해준 기억들

하와이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이번 4박 5일 동안만큼은 해변을 마음껏 보고 오리라 다짐했었다. 몇 년 전 동생과 둘이 떠난 제주도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때에 만나게 된 해변의 모습과, 비를 맞으며 물놀이를 했던 장면이 나에게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을이면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밴쿠버. 저녁 9시에도 해가 쨍쨍했던 이 곳의 여름날이 사무치게 그립기도 했다.


날아오른 엄마

호노룰루 공항에 도착한 저녁에는 호텔에서 야식을 먹은 후 바로 잠에 들었다. 우리의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엄마는 우리를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나갈 채비를 하고 계셨다. 웬만한 소리에는 절대 깨지 않는 나인데도 여행 첫날이어서 그런지 작은 소리에 눈을 뜨고 말았다. 우리는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에 있는 와이키키 비치로 향했다.


와이키키 해변으로 가는 길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쇼핑몰, 로열 하와이안 센터 Royal Hawaiian Center가 있다. 해변을 보러 가는 길, 아직 무릎 관절이 건강한 엄마의 점프를 봐서 그런지 나의 마음은 더 들뜨기 시작했다.





Waikiki Beach 

옷을 잘못 골랐다는 것을 깨닫고 멈칫해버린 나


해변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평온했다. 간단히 산책을 나온 것이었기에 우리는 잠시 사진을 찍고 해변을 바라보다가 다시 호텔로 향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 수영복을 아예 입고 다니면서 물에 퐁당퐁당 들어가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오하우 섬 북쪽, North Shore에 유명한 새우 가게들이 많다기에 우리는 차를 가지고 호텔을 나섰다. 몇 시에 어딜 가서 무엇을 보고 어떤 음식을 꼭 먹고야 말겠다, 라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섬을 한번 둘러나 보자 하고 편안히 길을 나서니 울창한 나무숲들과, 저 멀리에 자리한 언덕의 굵은 등선, 코앞 가까이까지 일렁이는 파도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예상치 못한 자연과의 만남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Kualoa Regional Park



잠시 쉬었다 가야만 했던 아름다운 공원. 바다 뒤로는 Mokoliʻi라는 작은 섬이, 우리의 등 뒤로는 화산의 잔재인 Pali-ku라는 절벽이 있었다. 거센 바람에 머리칼이 온 얼굴을 뒤덮고, 사람다워 보이는 사진 하나 찍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짠내가 가득한 바닷바람 냄새가 우리를 계속 웃게 했다. 


아무래도 인터넷이나 여행 책자에 나온 식당들은 오픈 시간이나 마감시간에 들러야 할 듯하다. 줄을 계속 서고 있다가는 저녁시간에 예약을 해둔 석양 보트 투어를 놓치게 될 것 같아 우리는 그냥 이동하기로 했다. 새우는 그다음 가게에서 대신 샀다. 식당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 것보다는 근처 다른 해변을 찾아 모래사장에 앉아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다시 차를 타고 더 북쪽으로 이동했더니 선셋 비치 Sunset Beach가 나타났다.


Sunset Beach


몇 년 전, 책 작업 때문에 들렀던 강원도 동해에서 마주한 내 생애 첫 동해바다. 나의 키를 훌쩍 넘길 만큼 높은 파도 앞에서 괜스레 마음이 차분해졌던 적이 있었다. 선셋 비치의 파도가 그때의 강원도의 기억을 이끌어냈다. 저 멀리 서퍼들이 보이고, 모래사장에 편안히 누워 휴가를 즐기고 있는 휴양객들이 많았는데도 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머릿속이 조용하고, 마음 또한 깨끗해졌다. 



여행이나 휴가가 주는 묘미는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사진으로만 보던 파도 앞에서 먹는 것이 아닐까? 익숙함과 새로움이 만나서 색다른 기분을 선사한다. 평생을 함께한 나의 가족들과 매번 즐겨먹는 새우 음식. 처음 보는 선셋 비치의 모래사장과 거센 파도. 꽤나 잘 어울리는 세트였다.




여행 전에 미리 예약해둔 석양 보트 투어. 처음에는 어설퍼보이는 보트의 모습 때문에 겁을 먹었지만, 바다로 나가고 나서 곧 안정을 찾았다. 작지만 오픈 바가 있어서 음료를 마음껏 즐길 수도 있고, 가까운듯 멀리에 있는 다이아몬드 헤드 Diamond Head와 아름다운 가을 석양도 볼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한배를 탔지만 금세 인사말도 건넬 수 있었고, 내릴 때쯤에는 모두가 같은 표정이었던 것을 보면, 결국 사람에겐 그냥 흐르는 몇 년, 몇십 년의 시간보다, 2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일지라도 진심 어린 동행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Maita'i Catamaran




누군가가 꼭 가봐야 한다며 추천했던 해변. 오하우 섬의 동쪽에 위치한 라니카이 해변 Lanikai Beach과 카이루아 해변 Kailua Beach은 걸어서 이동이 가능할 만큼, 사이좋은 친구처럼 꼭 붙어있었다. 시간을 여유로이 두고 도착해서 차를 언덕 한 구석에 주차했다. 해변으로 걸어가는 길 위에서도, 해변에 도착해서 비치타월을 펼치는 와중에도, 바닷물에 나의 몸을 담그는 순간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해변. 하와이 여행 중 가장 좋았고, 가장 아름다웠고, 가장 즐거웠던 해변은 나에게 있어서 카이루아 해변 Kailua Beach이었다.


Kailua Beach



유명한 곳이라서 사람들이 많았지만 마음 쓰이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나에게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평화로움과, 휴가가 주는 여유로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재미있게도 우리가 자리를 잡은 곳 바로 옆에 신혼부부 혹은 커플로 보이는 한국분들이 계셨다. 여자분은 끊임없이 사진을 찍었는데, 본인 사진 이외에도 주얼리 제품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휴양지에 와서 여행을 즐기며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는 생각이 들다가 이내 카메라를 내려놓고 물놀이를 시작했다.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마음에, 내 눈에 담고 싶었다. 그분들도 촬영 이후엔 분명 그리했을 거라 믿는다. 



짐을 챙겨 15분 정도를 걸으니 해변을 따라 지어진 주택들 바로 앞으로 라니카이 해변 Lanikai Beach을 찾을 수 있었다. 카이루아보다 좀 더 좁은 모래사장과 훨씬 가파른 해변이었다. 그늘이 없어 햇빛에 잼병인 사람들에게는 그리 추천하고 싶지 않은 해변이었기에 우리는 잠시 사진을 찍고 물놀이를 하다가 자리를 떴다.


Lanikai Beach




해변 못지않게 호텔 수영장도 예뻤던 이번 하와이 여행. 도착한 밤에는 수영장의 조명이, 다음날 아침에는 아무도 없는 수영장의 여백이 카메라를 들게 했다. 호주에서 온 어린 자매들이 우리가 가져다 놓은 튜브를 타고 놀면서 내던 깔깔거리는 소리와, 조금 잘 놀다가 곧장 싸우면서 서글프게 우는 소리마저 사랑스러웠다. 


Courtyard Waikiki Beach's Pool


우리 호텔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던 또 다른 호텔에는 작은 커피숍과 소품과 옷을 판매하는 가게가 붙어있었다. 가게를 구경하러 갔다가 그곳 로비와 맞닿아 있는 수영장을 보았다. 혹시나 다음에 호놀룰루에서 또 묵게 된다면, 이 호텔에 와서 쉬었다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황색 의자와 이파리가 큰 식물들, 뻥 뚫린 입구가 인상적이었다. 


Surfjack Hotel & Swim Club's Pool





동생의 생일날, 호텔방에서 예배를 드리고 가볍게 쇼핑을 하다가 나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약을 하지 않아 혹시나 티켓을 구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떨리는 마음이었다. 다행히도 2시에 빈자리가 있어서 티켓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 - 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의 얼굴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파라세일링을 하자고 한 나의 제안 때문이었다. 


호텔에서 차로 10여분을 달려 도착한 하와이안 파라세일 Hawaiian Parasail 티켓팅 사무실은 카하나모쿠 해변 Kahanamoku Beach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얕고 잔잔한 Lagoon Beach와 밀접하고, 호텔 주변에 자리한 해변이라 그런지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Kahanamoku Beach

새로산 액션 카메라의 설정을 수정하지 않은 관계로 잘못된 날짜와 시간이..... 


Lagoon Beach


파라세일링을 예약한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그저 여유롭게 모른 척 아름다운 해변의 뷰를 즐길 수만은 없었다. 우리 자매에겐 태어나 처음이기도 했고 경미한(!) 고소공포증까지 있었으니까. 하지만, 하와이까지 왔는데 두려움 하나쯤은 극복하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다부진 억지를 부려 동생과 나는 600피트 상공에서 와이키키 해변을 바라보며 함께 자연의 고요를 경험했다.


신비로웠다. 높은 건물들과, 저 멀리 펼쳐진 바다와, 방금 전까지도 사진을 찍느라 바빴던 해변이 한눈에 담겼다. 눈은 바빠졌는데 귀는 정반대였다. 드럼 비트처럼 정확하게 끊어지고 다시 시작하는 바람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겁이 난 동생 때문에 말도 없이 그냥 가만히 호놀룰루를 바라만 보았다. 이렇게나 높이 올라와 있는데도 나보다 훨씬 높은 하늘과 나보다 훨씬 깊은 바닷 속이라니. 


처음 하는 파라세일링에 카메라를 가지고 올라갔다가 바닷물로 골인시키는 일을 삼가고자 하늘에서 찍은 사진은 없지만, 대신 보트에 남아있었던 엄마가 여러 영상과 사진을 남겨주셨다. 


정신없이 끝나버린 6분 남짓의 시간. 다음 여행지에서도 가능하다면 꼭 해보고 싶은 파라세일링. 위시리스트가 줄었다가 또다시 늘어나 버렸다.


공중에 떠있던 우리 자매를 담아준 엄마의 손길에 감사를...




주차공간이 적어서 꼭 이른 아침 도착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당한 하노마 베이 Hanauma Bay. 스노클링 성지이자 하와이에서도 방문객들을 따로 교육시키기까지 한다는 그곳에 우리는 아침 5시 50분에 도착했다. 우리 앞으로 3대의 차가 있었고, 5분이 지나자 공원 직원들이 게이트의 문을 열어주었다.



안내 가이드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는 주차를 하고 공원 쪽으로 걸어가려는 우리는 멈춰 세웠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짧은 자기소개를 하고, 모두들 잘 알고 있겠지만 여전히 조심해서, 그리고 깨끗하게 스노클링을 즐겨주라는 권고의 말을 건넸다. 아침 일찍 도착한 부지런한 우리들에게는 공원 이용료를 생략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우리는 아침잠을 포기한 대가를 두둑이 챙겨 해변으로 향했다. 언덕을 걸어내려가는 동안 우리의 왼쪽으로 펼쳐지는 일출을 보면서 이번 여행 동안 함께해준 하와이의 해변들에게 미리 작별인사를 고했다. 


Hanauma Bay Beach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모래사장 근처에서 숨 쉬는 연습을 하고 스노클링을 시작했다. 무늬 있는 물고기, 온몸이 까만 물고기, 단체로 마실 나온듯한 물고기 가족 무리들, 식사 중인 물고기들을 보면서 신이나 가방에 있던 액션 카메라를 꺼내 영상과 사진들을 찍어댔다. 실수로 바닷물도 몽땅 마셨다. 코가 매웠지만 이상하게도 또 웃음이 났다. 


비장한 첫걸음
몸의 프린트가 너무 아름다워 한참을 바라본 녀석


물이 두려운 엄마는 용기를 내어 바다로 들어왔다. 수경을 쓰고 음~파 음~파를 하는데 내 두 팔을 붙잡은 엄마의 손아귀가 쇳덩이처럼 느껴졌다. 물 밖으로 나와 웃음이 터진 엄마를 보면서 나도 따라 웃었다.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 물고기들을 보지 않아도, 잠수 한번 하는 것이 너무 겁이나 딸내미 팔이 떨어지도록 꼭 붙잡아야 한대도, 우리는 즐거웠다. 서로만 알고 있는 서로의 모습. 그 모습이 무척 새롭고 또 정답게 느껴지는 여행이었다.


안녕, 하노마 베이




휴학을 하고 잠시 서울에 살 적에 동생이 밴쿠버에서 먼길 한걸음에 달려와한 여름을 함께 보내주었던 적이 있다. 좁아터지는 옥탑방. 나름의 낭만을 가진 초록 바닥의 옥상. 어렵게 걸어놓은 해먹 위에 누워 동생의 어설픈 기타 소리를 배경 삼아 낮잠을 자곤 했었다. 그 해 여름의 끝자락에 떠났던 우리 둘만의 제주여행은 나의 옥탑방만큼이나 낭만적이었다. 버스기사 아저씨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하이킹 코스는 태풍 때문에 문을 닫았고 도시로 나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비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 정류장을 찾아 끝도 없이 걸었다. 싸구려 비닐 비옷을 걸쳐 입고는 비에 홀딱 젖은 서로를 보며 사진을 찍고 한참 동안 배를 잡고 웃었다.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해가 났을 땐, 계획에 없던 해수욕장을 만났고, 또다시 소나기가 쏟아질 때쯤 우리는 비를 맞으며 물장구를 쳤다. 


바다만이 나에게 줄 수 있는 느낌이 있다. 꽃과도, 산과도 다른 느낌. 하와이의 바다도 제주도의 바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래보다 좀 더 빠르게 뛰는 심장과, 가까이 가고 싶지만 또 멀리 떨어져 있고도 싶은 거리감. 부러우면서도 겁이 나서 숨을 크게 들이쉬게 하는 거대함과 일단 몸을 담그고 나면 나를 감싸는 따뜻함이 있다.  


맑은 공기 때문인지, 눈부신 햇살 때문인지, 아니면 청량한 인디고 블루의 푸르른 색감 때문인지 바닷가에서 머문 잠깐의 시간은 더 뚜렷하고 더 정확하게 기억 속에 남는다. 나처럼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도 모래사장에 앉아 먹은 음식이나, 나를 모래사장으로 밀어내는 파도의 힘. 몸 구석구석을 예쁘게 태우겠다고 이리저리 누워보던 여동생의 몸짓과 두려운 잠수를 해내고만 자랑스러운 엄마의 젖은 머리칼과 같은 것들이 담긴 시간들.


다음번에 하와이를 가게 된다면 다른 섬들을 방문해보고 싶다. 화산이나 폭포, 또 다른 느낌의 해변들을 거니는 나를 상상해본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그분께 드릴 감사한 마음과 함께.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의 깊이와 넓이처럼, 상상 속의 우리도 끝없이 걷고 끝없이 웃음 짓는다.


매일 신은 샌달때문에 물집이 잡혔지만 그래도 힘찼던 나의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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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Yoona Kim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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