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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Dec 03. 2016

여전히, 색에 미친 청춘

5년전의 모험을 떠올리며

2007년에 입학한 대학교를 2년만에 휴학하고 사회생활에 뛰어들었을 때, 

나는 내가 생각해온 패션이 실제 패션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만나온 많은 디자이너 선배들 중에서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브랜드에서 근무하는 몇년동안 자켓 소매 혹은 바지만 디자인했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사무실에 와쿠와쿠 침대를 가져다놓고 집에 일주일째 못들어갔다며 냄새나는 정수리를 쑥쓰러워하던 사람도 있었다. 먼저 졸업한 또래 친구들중에는 마켓 리서치랍시고 백화점 탈의실에 들어가서 수십가지 옷을 입어보고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 촬영한다음 작은 디테일만 살짝 바꿔치기한 디자인으로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었다. 2학년 시절, 인턴생활을 했던 J브랜드에서는 총괄 디자이너가 유럽 대도시에서 가져온 빈티지(6~80년대) 샤넬, 디올 드레스를 벽에 걸어놓고 스케치하는 것이 내 업무였기 때문에, 서로 바꿔치기 하는 디자인, 돌려막는 디자인, 카피하는 디자인? 사실 그렇게 놀랍진 않았다.


하지만 놀랍지 않다고 해서 계속 그곳에 머물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분명 내가 꿈꿔온 직업으로서의 패션의 모습과 너무 달랐으니까. 인도에 공장을 가지고 있던 프로덕션 회사에 취직을 했다. 회사의 주고객이 뉴욕패션위크에 출연하는 여성복 브랜드들이었다. 각 브랜드의 디자이너들과 디자인 개발 미팅, 샘플 미팅, 프로덕션 미팅을 함께 하면서도 이 회사나 저 회사에 취직해서 이 사람이나 저 사람처럼 일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은 들지않았다. 게다가 2년만 공부하고 학교를 쉬어야했던 나를 고용해줄 회사도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지하철을 타고 미드타운으로 출근을 하고, 8시간동안 맨하탄을 뛰어다니다가 

해가 늬웃늬웃 지기 시작할때 다시 지하철을 타고 업타운으로 퇴근하던 일상. 

여느때와 같은 출근을 하던 날이었다, 회사 건물이 있는 8 애비뉴를 걷다가 회사 건물을 지나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었다.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으로 메이트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떠나고 싶다. 떠날수 있을까. 떠나야만 한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마음을 전했다. 집으로 돌아갈래요. 엄마는 오라고 했다. 어떤 마음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마음까지 묻고 들어볼 여유가 없었던 나는 곧바로 회사에 2주 노티스를 주고, 비행기 티켓을 끊고, 짐을 쌌다. 그리고 밴쿠버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살면서 한번도 보도못한 구식 자동차 하나가 내 앞에 멈춰서는 것을 보았다. 우리 가족의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내가 집이라 불러온 이 곳에도 오래 머물수 없겠다는 것을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당장 복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밴쿠버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하지?

밴쿠버에 머물던 두어달동안 나는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아무런 발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친구가 보내준 이메일 하나를 받았다. 천을 염색하는 전통방법인 천연염색에 관한 웹툰이었다. 한국에 가보는건 어떨까? 한국에서 일하면서 그 돈으로 천연염색을 공부하다 오면 되겠구나. 답은 없지만 질문은 있으니, 갑자기 용기가 샘솟았다. 나를 고용해주겠다고 한 회사도, 숙식을 해결해주겠다는 친척도 없었다. 그냥 무작정 서울로 가자. 그럼 어떻게든 될거야. 엄마는 이번에도 나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으셨다.


2010년 서울의 여름


2010년 초여름, 서울에 도착했다

주말엔 북촌에서 천연염색 수업을 듣고, 주중엔 영어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계절의 틈 사이로 남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과외를 하거나 다른 학원에 일을 구해서 투잡, 쓰리잡을 뛰었고, 한국사람들에게 전화로 영어를 가르치는 전화영어, EBS에서 만들고 있었던 다큐멘터리에 필요한 원서를 한국어로 번역해주는 번역작업, 멀티샵에서 PR 인턴자리를 구해 프리랜싱을 했다. 


엄청나게 바쁜 1년을 보내고 있을 즈음, 모아놓은 돈도 생각보다 너무 적고, 다시 복학 이야기를 꺼내기엔 부모님께 죄송해서, 내가 여기 있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재미있는것, 의미있는 것을 해봐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양 두레박 가는길


어릴적부터 책을 좋아했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인생, 지금 당장, 책을 써봐야겠다, 라는 마음에 서점으로 향했다. 내 취향의 책들을 골라서 출판사 이름을 확인하고 핸드폰에 쭉 적어내려갔다. 집으로 돌아와 출판사 웹사이트를 검색하고 이메일 주소를 찾아서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저는 누구누구고 무슨무슨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기획서 보내드리오니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몇일 지나지않아 몇 출판사에서 답변이 왔다. 죄송합니다, 저희 출판 기획과 맞지 않습니다, 좋은 소식 응원합니다. 그러다 한번 만나보자는 출판사 대표님의 연락을 받고, 출판사가 있는 서교동으로 향했다. 나의 기획서의 의견말고 다른 아이디어가 있느냐고 물으셨다. 한번씩 생각하고 말았던 모든것들을 다 꺼냈다. 그리고 대표님으로 하여금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던 아이디어가 국내 천연염색 여행이었다.


서천 두메산골물듬이 가는 길


2011년의 반동안 전국의 12여군데의 도시를 방문했다. 

각 지역에서 천연염색을 업으로 삼은 염색장인들을 만났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저녁을 챙겨주신 분들도 계셨고, 다음 장소까지 라이드를 제공해주신 분도 계셨다. 천연염색 시연을 직접 눈앞에서 보여주신 분도, 잡지에 실릴 사진들을 사용하라며 잔뜩 보내주신 분도 계셨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걷고 또 걸어서야만 닿을수 있었던 그들의 작업실에는 지구가 줄수있는 모든 것을 사용해서 얻어낸 자연의 색, 빛, 결이 있었다. 바람이 있고, 물이 있고, 나무가 있고, 햇살이 있었던 12도시:

서울, 청도, 대구, 서천, 담양, 광주, 동해, 부산, 제주, 원주, 문경, 예산.


원주 천연염색학교


나로써는 책을 내고나서 계속 한국에 머물수만은 없는 상황이었기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복학을 하고 졸업을 했다. 고향인 밴쿠버로 돌아온 것도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출간한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시간동안, 대학졸업에 필요한 수업들을 듣고, 대학원 준비를 한다며 시험공부를 하고, 취직을 했고, 연애를 하고, 책을 읽고, 팟캐스트를 듣고, 글을 썼다. 나의 관심사는 천연염색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던가 페미니즘, 현명한 돈관리 방법, 글쓰기 같은 다양한 것들로 뻗어나갔다.


색에 미친 청춘은 지금것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서 천연염색을 해오고 계신, 당시 내가 만나보았던 선생님들께 훨씬 더 어울리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과의 감사했던 만남 덕분에, 색에 미친 청춘이라는 문구를 떠올릴 때마다 그들을 마주했었던, 그들의 빛깔에 감동했었던 당시의 나, 색에 미친 청춘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은 오늘의 나에게 더한 감사와 희망을 전해준다. 


문경 누비진


오늘의 나에게도 다른 색들이 존재하고 있다. 

캐나다와 한국이 갖는 색이 각각 다른 것과 같이, 내가 하는 모든 것에 각자의 아름다운 색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나를 더욱 깊은 색으로 물들여주고 있다.


여전히, 색에 미친 청춘.

책의 제목은 당시 출판사에서 먼저 출간되었던 '책에 미친 청춘'에 이어, 청춘들을 타겟으로한 인문학 시리즈를 마음에 두고 정해진 대표님의 추천이었다.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리기만 한, 철이 덜들어 하고 싶은것이 너무나도 많은 나 자신이 신념과 믿음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당당히 걸어갈 것을 상상해본다. 

이 길을 걸어가는 동안 만나게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색에 미친 청춘들의 더 붉고, 더 푸르고, 더 진하고, 더 선명한 내일을 향해.




Source:

Images by Yo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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