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연애를 배우다
시작 전에 참고하면 좋은 글 리스트:
라라랜드에 대한 글을 쓰지 말까, 하고 고민하게 한 이동진 님의 글
결국 라라랜드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도록 응원해준 허지웅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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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에게 글 거리를 주는 영화 라라랜드. 미아와 세바스챤은 예상치 못한 재회 후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마음 너무 괴롭지 않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연히 만난다.
한번 스쳐 지나간 당신의 얼굴이 마음에 남고, 흔하디 흔한 당신의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
어깨를 마주하고, 손을 맞잡는다.
관심이 애정이 되어간다.
누구의 방해 없이 오롯이 둘만의 추억을 쌓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추억의 공간과 시간이 늘어나고, 애정은 그렇게 사랑이 된다.
세상에 어떤 사람도 일부러 가슴 찢어지는 슬픈 사랑을 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행복한 결말을 맞는 영화처럼, 화사한 봄날 같고 선선한 가을바람 같은 연애를, 우리는 꿈꾼다.
꿈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찬란한 오색의 그곳을 배경으로 한 라라랜드의 두 주인공들도 처음부터 헤어짐이라는 결말을 예상하고 사랑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사랑은 여러 모양을 한다.
어떤 이들은 함께함으로, 또 어떤 이들은 헤어짐으로 각자의 '사랑'을 펼쳐나간다.
서로의 곁을 지키는 것으로, 결혼이라는 약속으로 연애를 마무리짓고자 하는 연인들에게 라라랜드는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실수들을 이야기한다.
미아만의 잘못, 혹은 세바스찬만의 잘못이 아니었다.
둘은 함께 실수했다.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연애의 ‘엔딩’을 함께 책임져야만 했다.
가급적 당신이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에게만큼은 하지 말아야 할 실수들이 여기 있다.
영화 속 미아와 세바스찬도 이 실수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미아. 세바스찬은 그런 미아에게 모든 일을 접고 너만의 연극을 쓰고, 네가 직접 연기를 해보라고 제안했다. 오디션에 계속 떨어지다 보니 연기에 대해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미아는 세바스찬의 충고를 실천해보기로 마음먹는다.
우리는 삶의 많은 곳에서 영감을 받는다. 특히 연애라는 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새로이 만드는 일인 데다가 그 사람과 일상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마음먹는 것이기도 하다.
특별하다. 특별하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큰 결심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새롭게 내 인생에 자리 잡게 된 그 사람이 나의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방법이 그 사람의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조언을 하고, 함께 고민을 나누고, 더 나은 방식을 위해 대화해야 한다. 하지만, 내 의견이 늘 옳은 것처럼, 내가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훈수를 두는 건 10살 어린 막냇동생에게나 하자.
미아는 세바스찬이 듣고 있는데에서 엄마와 통화를 했다. 다른 것도 아닌 세바스찬에 대한 이야기를, 그가 듣는 곳에서, 중얼거리는 것 같지만 실은 모두 다 들리게 하고야 말았다. 문고리는 그냥 뒀다 어디에다가 쓰려고 하는 것인지, 나는 그녀를 추궁하고 싶었다.
연애를 한지 오래된 것도 아니고, 온 가족이 둘의 사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하는 일에 대한 충분한 배경 지식도 없었다. 그저 세바스찬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 경험을 쌓고 있는, 나름의 몸부림을 치고 있던 가난한 재즈 뮤지션일 뿐이었다.
그런 세바스찬의 이야기를 ‘조만간 자신만의 재즈 바를 열 사람’으로 만들어 엄마에게 소개한 미아. 그녀의 소개를 들으면서 세바스찬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지금이라도 당장 목돈을 만들어 가게를 차려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믿음은 중요하다. 당신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 큰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룰만한 능력과 비전이 있음을 믿어주어야 함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말로 꺼내서 불안해하시는 부모님을 달래는 것에 사용할 필요는 없다. 꼭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가 없는 곳에서, 그의 마음을 흔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알아서 잘, 똑똑하게 중간 역할을 하면 된다.
자기 일이 잘 안 풀리고 있으니까, 괜한 남자 친구 끌어다가 부모님의 걱정 근심 덜어내려고 했다면, 미아야, 그건 네가 실수한 거다.
세바스찬도 세바스찬이다, 참. 미아가 엄마랑 속닥거리는 소리를 듣고 머리가 천근만근 해졌으면 대화를 시작해서 말로 풀었어야 했다. 아무런 티도 안 내고 그냥 옛날 친구를 찾아가 덥석, 일자리를 잡고 만다.
만약에 말이다,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대화를 꺼냈다고 가정해보자:
"네가 엄마에게 하는 말 들었는데, 나는 사실 아직 재즈바를 열만 한 여유가 없어. 지금은 그저 피아노 연주하면서 생활비 버는 게 다야.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야. 하지만, 우리가 경제적인 여유를 갖고, 좀 더 자유롭게 예술을 하려면 재즈바를 여는 게 시급하긴 하지.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내가 그때 그 친구가 제안한 일을 해보는 건 어떻게 생각해? 대신 난 엄청 바빠질 거야.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 거고, 집에도 자주 못 들어와. 투어라는 게 맨날 집 밖으로 도는 일이라서.."
미아는 엄마와 통화했던 내용을 되새겨보고, 세바스찬과의 관계를 위해, 둘의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세바스찬이 입을 다문 것의 진짜 의미는 미아의 통화내용에 대한 불안함과 조급함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미아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불안해지고, 당장이라도 어떤 결정을 내려야만 할 것 같아 조급해졌을 것이다. 충분한 대화 없이 큰 결정을 내려버리고, 그 결정 때문에 둘의 관계의 본질이 서서히 변해가는 걸 상상하지 못한 채.
정작 연극을 연출하고 연기해보라고 조언했던 세바스찬은 그 자리에 없었다. 소수의 관객만이 함께했던 미아의 첫 공연에 세바스찬은 함께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다 끝나고 공연장을 떠나는 미아의 앞에 나타난 세바스찬. 허겁지겁, 꽤나 당황한 몸짓, 표정, 말투였다. 하지만, 그의 뒤늦은 노력은 미아에게 어떠한 위로도 되지 못했다.
대본을 쓰고, 공연장을 구하고, 포스터를 만들고, 공연을 홍보하는 동안은 혼자여도 괜찮았다. 해가 지는 늦은 오후, 둘이 함께 생활하는 아파트에 혼자 있는 것이 조금은 허전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의견 차이가 있어서, 맛있는 저녁을 앞에 두고 큰 소란을 벌여도 연애라는 건 그런 거니까, 서로의 다름을 배우고 인정하고 맞추어나가는 것이겠거니,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이었고, 두렵지만 설레는 시작이었다. 미아에게는 아르바이트와 오디션이라는 현실을 제쳐두고, 새로운 꿈을 이루겠다고 용기를 낸 인생의 중요한 날이었다.
그곳에, 그 시간에 세바스찬은 미아를 위해 함께 해주었어야 했다. 꽃을 건네고, 뜨거운 포옹과 자랑스러움의 키스를 전했어야 했다. 나에게는 네가 최고야,라고 말해주었어야 했다. 함께 해준 작은 수의 관객들에게 고마움의 악수를 건네고, 그녀의 연출과 연기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어야 했다.
인생이 타이밍이라고 하는 만큼, 사랑도 타이밍이다. 세바스찬은 그 중요한 타이밍을 놓친 바보였다.
집으로 떠난 미아에게 찾아온 또 한 번의 오디션의 기회. 세바스찬은 지금 것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고 싶다는 듯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 그녀를 향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디션을 마치고 세바스찬은 예감했다. 그녀가 파리로 떠날 것이라는 걸. 그녀는 유명한 여배우가 될 것이라는 걸.
미아와 세바스찬의 연애가 영화 같은 또 하나의 이유는 '대화의 부재'에 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읽었겠거니, 서로가 서로의 꿈을 이해하고 있겠거니, 서로가 서로의 사랑을 알고 있겠거니. 영화관에 앉은 관객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상황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본인들의 연애가 판타지라도 되는냥, 대화하지 않고 침묵했다.
다투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마음이 상하고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염려했던 게 이유였을까. 대화하지 않고, 서로의 삶에 일어나는 변화들을 묵묵히 받아들였던 미아와 세바스찬.
파리로 떠날 미아와 파리로 함께 떠나지 않을 세바스찬만이 남았다. 이미 내린 결정에는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했다면, 세상의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둘을 이별하게 한 것은 두 사람, 자신들이었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이별이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던 것에는 두 사람의 침묵에 있었다. 만약 세바스찬이 연주를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와 미아와 길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면 어땟을지 상상해보자:
"어떻게 지냈어, 미아?"
"응, 난 바쁘게 지냈어. 넌?"
"바 여느라고 정신없었지. 옆에 있는 사람은?"
"남편이야. 인사해…"
구질구질하고 어색한, 무슨 말로 대화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옆에 멀뚱히 서서 언제 집에 가나 눈알을 굴리고 있을 남편까지. 대화는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 5년 후가 아니라, 꿈을 이루어 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리던 5년 전에 했었어야만 했다.
과거가 과거가 되는 이유는, 어떤 방법으로도 결과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엔딩이 정해진 영화, 마지막 문장이 써져버린 소설, 서로에게서 등을 돌려버린 연인 사이. 아무것도 그 사람을 당신 옆에 돌려놓을 수는 없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연애에 서툴고 부족한, 개인의 꿈에 인생을 바쳐야만 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잘한 것이 하나 있다면, 침묵해야 하는 마지막 때를 알았다는 것이다. 서로를 조용히 바라보는 것으로 과거 속 자신의 아픔을 달래고, 상대방의 미래의 행복을 바라 주는 모습. 지난 모든 실수를 되돌릴 순 없겠지만, 둘의 추억을 아름답게 장식할 수는 있었다.
사실 연애의 슬픈 결말은 작은 실수에서 시작된다. 작은 실수는 좀 더 큰 실수들로 이어진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실수 없는 연애 또한 없다.
실수는 우리를 성장시키고, 관계를 더 돈독케 한다.
마음먹은 대로 고쳐지고 나아질 수 있다면 세상에 어려운 연애 하나도 없을 일이지만, 나는 실수투성이의, 시간만 나면 투닥투닥 대는 연애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믿는다.
한 번의 실수를 통해 당신과 나에 대해 배우고, 우리가 어떻게 연애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잊지만 않는다면.
작은 실수를 작은 실수에서 멈추게 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미아와 세바스찬의 엔딩은 라라랜드 속에만 존재할 것이다.
나와 당신의 엔딩은 좀 다를 것이다.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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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4월 기준, 에세이쓰기에 관심 있으신 분들 여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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