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당신에게도 쓸거리는 많다
나는 에버노트에 글을 쓴다. 예상 못한 순간에 글감이 떠오르면 아이폰 메모장, 공책, 종이쪽지를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어코 길어지는 글은 에버노트로 옮겨와 마무리한다.
한글 글, 영문 글 이외에도 여러 카테고리로 폴더를 나누어두고 그 안에 차곡차곡 글을 쌓는데, 한국에 온 이래 브런치에 소개되지 못하고 에버노트 안에 머무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 충분히 쓰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조금씩 더 시간을 들여 브런치에 내보냈어야 했다는 후회가 많다. 하지만, 이 마음도 글로 승화시켜내야 한다고 믿는다. #글을씁시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글을 쓰고 공유하고자 마음을 먹자마자, 사실 내 주변에는 온통 쓸거리가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에버노트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글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머뭇거리게 되는 때에 내가 사용하는 팁이 몇 가지 있다. 머뭇거리다가도 다시 열정적으로 글을 쓰게 해주는 신박한 이들을 소개한다.
사람을 만나면 지나온 일상들은 물론,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내가 알고 있던 소식을 상기시켜주기도 한다. 말과 아이디어들은 서로 오가는 동시에 더 빠른 속도, 더 넓은 면적으로 튀어 나간다. 수많은 서론 거리들이 여기서 탄생된다.
주로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 처음 만나는 어르신들, 잘 알고 지냈지만 새로운 면을 찾게 된 친구에게서 글의 아이템을 얻기도 한다. 대화 자체를 언급하며 글을 시작할 수도 있고, 누군가가 했던 질문을 시작으로 글을 써나갈 수도 있겠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있지 않은 시기라면, 읽고 있는 책이나 보고 있는 미드, 요즘 빠져 있는 노래의 가사나 우연히 엿들은 타인의 수다로도 글은 시작될 수 있다.
무언가 나를 상념에 빠지게 하고,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만남이라면 그 상대가 무엇이 되었든 글을 시작하기에는 충분하다.
만남에서 시작하는 서론. 내일은 멋진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떨림이 느껴진다.
서론을 지나면 드디어 본론이다.
본론에는 인용을 사용해서 탄탄하게 글의 무게를 실어주는 건 어떨까? 타인의 주장과 연구결과로 나의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다. 책, 기사, 산문 등에서 공감되는 문장이 발견되면 이를 주제로 글을 완성해볼 수도 있고, 글을 쓰다가 머리를 식힐 겸 읽을거리들을 뒤적거리다가 마음이 합한 표현들을 찾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이미 대중과 공유한 사실이라고 해서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보고 듣고 알 수 있도록 이 세상에 발표된 것들이 팩트라면, 내 마음을 통과하고 내 생각이 더해져 탄생한 것은 나만의 글이다.
쓸 거리란 어떤 법규와 제도에도 구애받지 않는, 눈에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원래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거나 나로 말미암아 존재할 모든 것이다.
본론의 끝에는 결국 결론이다. 서론과 본론이 시작되면 본론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서론과 본론을 쓰면서까지 내가 하고자 하는 말,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오늘이 나의 결론이 되는 것이다.
나의 오늘에서 결론을 찾으란 말은 나의 오늘 속에서 결론을 내리라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글을 시작했다면 끝내라. 이 글을 시작한 이유와 이 글의 본론에서 전달한 중점적인 내용을 다시 한번 함축하여 정확한 메시지를 공표해야 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버스 창가에 앉아 어둑해진 바깥세상을 바라보면서 내가 읊조렸던 나만의 생각. 누군가의 글을 읽고 나서 오랜 시간 내 안에 남아있는 그의 메시지, 철학, 관점. 이들을 한데 엮어 나만의 마지막 문장으로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래야 글은 서론과 본론을 지나, 결론을 맞이한 하나의 글로써 완성되니까.
어쩌면,
1) 쓰고 싶은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2)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와 같은 고민들은 목적이 불분명해서 생기는 고민들 인지도 모르겠다. “쓴다”가 목적이 되면 무엇으로도 글이 시작될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도 글을 써나갈 수 있다.
누군가에게 실망한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그것을 꼭 일기로 써두어야만 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나.
좋아하는 친구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편지를 선택했던 청소년기의 나.
글을 쓸 때가 가장 나답다고 느끼며, 어떤 누구라도 자신이 아닌 세상 누군가와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 지금의 나.
늘 목적은 ‘씀’이었고, 그래서 어쩌면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당신에게도 ‘쓸거리’ 많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 하나면 쓸거리가 넘치고, 또 ‘나’라는 사람 하나가 쓰는 방법도 되어준다. 2018년을 (지금 것) 무사히 걸어와준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써주어도 좋고, 우연히 마주친 지인의 이름의 뜻을 상상하며 일기를 써도 좋고, 뉴스에서 본마음 따뜻해지는 사회 이슈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아도 좋다.
진정 글을 쓰고자 하는 당신,
그런 당신에게 쓸거리는 이미, 너무, 많다.
Source:
Cover image by NeONBRAND
Caption images by Liam McKay, David Iskander, The Roaming Platypus, Steve Joh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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