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인가요?”
#한달쓰기 리스트
01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한달쓰기는 “당신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되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브런치로 돌아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인스타그램/브런치를 통해 연이 닿은 진선님 덕분에 함께하는 기회를 건네받았다.
남이 말하는 나, 사회가 원하는 나, 내가 꿈꿔온 가장 이상적인 내 모습 말고, 진짜 내가 누구인지, 어떤 모습인지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또 내가 아는 내 모습이 충분하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이 짧지만 무거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지난주, 어썸스쿨이 진행하는 히어로스쿨 교육에 참여했다가 요즘 나의 관심사 두 가지를 적어 발표해야 할 시간이 있었다. 2019년 후반이 되면서 평생 관심사만큼은 미니멀해지지 않는 나에게서 부쩍 집중을 받은 두 단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플랫폼과 콘텐츠였다.
지속적으로 소리를 높여야 할 가치가 있다면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 자체가 플랫폼이 된다고 믿는다. 2017년에 읽을거리와 영감을 나누기 위해 뉴스레터를 만들었던 나의 작은 시도도 플랫폼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어느 장소에 같은 취향과 미션을 가지고 모인 사람이 단 둘 뿐이라도 그 모임은 플랫폼이다. #한달쓰기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한 달 동안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집중하여 해내겠다는 다짐을 기반으로 모인 사람들이 하나의 플랫폼을 형성했다.
반면, 콘텐츠는 메시지다. 형태는 다양할 수 있지만 나는 내가 가장 애정 하는 글을 택했고, 내게 영감을 주는 많은 이들이 그림, 사진, 영상, 오디오 등의 모양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콘텐츠를 통해 재창조되고 자신을 넘어서 다른 이들에게까지 확산되어간다.
플랫폼과 콘텐츠라는 키워드를 손에 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달쓰기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었다. 내 이야기를 꺼내면서 플랫폼과 콘텐츠라는 관심사를 떠올린 이유는 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이 바로 플랫폼과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첫 번째 요소는 바로 경험이다.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소개할 때 내 이름 석자에 늘 보태는 것이 있다. 내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왔다는 사실이다. 내가 어디에서 나고 자라 살아왔는지를 말하지 않고 나의 경험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장소는 경험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이 속한 나라나 도시, 기관과 공간이 주는 영향이 크다. 나의 거주지가 한국에서 캐나다로 바뀌어 본토 사람이 아닌 이방인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것은 나의 중요한 바탕이다.
장소는 사람에게 역할을 준다. 나에게는 세 남매의 큰 딸로서 언니이자 누나라는 일이 주어졌고,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캐내디언일 수 있는 TCK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러한 역할이 마음과 시선과 의견이 통하는 친구들과 동료들을 얻게 해 주었다. 만남은 대화를 낳고, 대화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배움들을 남겼다.
나는 플랫폼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의 바탕화면처럼 개인의 바탕이자 그가 속한 장소, 그 장소가 빚어낸 한 사람의 역할과 그 역할에서 파생된 만남. 이 모든 것들이 경험으로 엮어져 두 발로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지지대가 된다. 성장을 독려하고 도전을 응원하는 지지대.
앞서 콘텐츠를 메시지라고 표현했다. 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두 번째 요소는 관점인데, 관점은 한 사람의 평범할 법한 이야기를 메시지로 탈바꿈시키는 굉장한 에너지이다.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는 누군가를 절대 잊을 수 없는 누군가로 만드는 비밀은 관점에 있다. 다를 것 하나 없는 일상을 감사가 넘치는 생애 최고의 날로 만드는 비밀도 관점에 있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던 시절, 나는 우연히 천연염색에 빠지게 되었다. 약초 뿌리와 줄기, 잎과 꽃이 선사하는 자연의 색감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국내에서 천연염색으로 옷을 짓고 그 방법을 나누고 있는 장인들을 만나고 싶어 졌다. 이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나누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과의 대화가 일회성의 이야기로 사라질 수도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책이 되어 남았다. 그러한 관점으로 바라본 천염염색과 장인들의 삶이 <색에 미친 청춘>에 담겼다.
미국 유학생활을 끝내고 밴쿠버로 돌아가 의류회사에 터전을 잡았다가 돌연 듯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에 가겠다 결심한 2017년. 주택 대출을 받아 큰 집을 사고 남편과 함께 오순도순 아이 셋을 키우는 직장 동료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나, 라는 인생의 질문이 던져졌던 그 날에, 나는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찾고 싶었다. 삶의 방향과 목적을. 그리고 알고 싶었다. 내가 나여야 하는 이유를. 그때는 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신학원에 입학해서 2년을 보내는 동안, 나의 내면에는 깨달음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유나, 뿌리가 단단해진 것 같아,”라고.
누군가에게는 관점이 가치관이라 표현될 수도 있다. 나의 기쁨이나 만족보다는 타인과 사회의 안녕을 바라는 관심,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도모하는 열심, 혹은 지금의 결과보다 미래에 이룩할 개혁을 구체적으로 꿈꿔보는 비전 의식. 아니면, 상황이나 사람을 대하는 자세일 수도 있다. 위기 앞에서 신념을 지키는 자세, 사건 앞에 내 고집을 죽이고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과도 같은.
내가 한달쓰기 플랫폼에 속해서 한 달 동안 글쓰기를 하겠다 결심한 것도 기록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고, 이러한 가치관은 내가 글쓰기를 대하는 자세를 바꾸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꾸준히 해보겠다는 기준을 설정하게 했고, 이번 시간을 통해서 나의 이야기를 메시지로 바꾸는 일에 보다 집중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일으켜 주었다.
“당신이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은 결국 나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 것 내가 지나쳐온 공간과 만남이 경험이 되고, 내가 소유했던 가치관이 관점이 되어 나라는 한 사람을 형성했다. 플랫폼 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고, 콘텐츠만으로도 충분히 묘사할 수 없다. 플랫폼과 콘텐츠, 경험과 관점은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나만의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바로 #한달쓰기 라는 플랫폼이고, 나의 이야기의 내용이 콘텐츠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간단한 한 문장으로 내가 누구인지 전달할 수 없다. 직업란에 직업의 명칭(학생/프리랜서)을 하나 써넣거나, 전공란에 학과 이름(목회학과)을 적어 넣는 것으로는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말할 수가 없다. 아마도 #한달쓰기를 하는 31일 내내 글을 통해 내가 아주 조금씩, 천천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내 삶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이 사실들이 지금의 나를 형성한 요소일 테니까 말이다. 플랫폼과 콘텐츠를 통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점점 더 선명하게 배워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은 떠나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있기에 하루가 던지는 질문이 더 무겁고 깊은 의미를 담는다. #한달쓰기의 여정도 끝(12월 31일)을 미리 알고 시작하기에 매일의 글쓰기가 조금은 색다르게 다가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스며들었던 경험과 내게 장착되어있던 관점을 텍스트로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면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되겠지. 괜히 떨리고 설레는 데, 이런 긴장이 싫지만은 않다.
Sources:
All images by Yoona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