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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Dec 02. 2019

<이별가>가 들려주는 글의 비밀

보컬 플레이를 보면서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다

#한달쓰기 리스트

01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02 <이별가>가 들려주는 글의 비밀







국악이 좋은 나이


집에 돌아오니 동생이 홈트를 하려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아이패드 미니를 앞에 두고 무언가를 열심히 검색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구수하고 청량한 판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마음에 꽂히는 여성 보컬의 소리에 난 재빨리 반응했다.  


누구야, 이 사람?”하고 물으니 동생은 화면을 내민다.  


보컬플레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음악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학교 이름을 걸고 무대에 올라 도전하고 경쟁하고 발전하는 제법 흔하고 익숙한 포맷의 텔레비전 쇼. 그런데, 기타를 들거나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참가자들, 전주만 들어도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는 가요나 팝송들이 아니다. 이 무대는 창을 하는 여자와 대금 부는 여자에 건반 치는 여자가 더해진 국악밴드 온도의 것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집중한 모습, 곧 울 것만 같은 표정, 그리고 박수로 화답했다. 이들은 단지 이별가가 ‘우리나라의 것’이라서 감동한 것이었을까? 보컬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깊고 단단해서 놀란 것이었을까? 대금의 소리가 맑다 못해 투명해서, 피아노가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눈물을 흘렸던 것이었을까? 


며칠 뒤, 친구 어머니에게도 이 영상을 보여주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 노래를 다시 찾아 듣게 되는 이유와 이제와 국악이 가슴에 부딪히는 이유가 같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의 말소리를 닮아서


2019 외국인 국악 아카데미 수료공연 안내 포스터


동생은 몇 년 전부터 국악에 관심을 갖고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에 들어와 판소리를 배우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합창부 활동과 학교 대표로서 독창 무대에 많이 섰는데 이 집요한 근성이 그녀를 재즈 보컬리스트로 만들었다. 밴쿠버에서 곡을 만들고 공연을 한다. 내년엔 재즈와 국악을 접목시킨 The Watermill Project의 첫 앨범을 만들어 보겠다고 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대학시절까지 음악만 해온 동생에게 물었다.  


판소리가 대체 왜 사람 가슴을 울리는 거지?  


다른 노래들, 특히나 우리 자매가 자주 듣는 팝이나 재즈보다 판소리는 ‘진성’을 많이 쓰기 때문이란다. 아주 높은 음역대도 진성으로 발성해서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닌 마치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내 입으로 하는 내 말,

내가 쓰는 내 이야기



모두에게는 입이 하나다. 그래서일까?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나에 대한 말이나,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을 전달했던 경험은 주로 언짢고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 이야기는 내 입으로 해야만 진짜 내 말이 되는 듯하다.  


글도 마찬가지다. 조금 어설프고 어리숙하더라도 내가 직접 남기는 기록은 오롯이 나만의 이야기가 된다. 누가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나의 이야기. 다른 사람이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하는 부가설명 없이도 충분한 그런 이야기.  


‘이별가’를 부른 온도의 보컬 김아영은 "김아영 씨 표정이 어디에 내놔도 우리나라 거다라는 게 확실히 (보였어요)"라고 말하는 김현철의 심사평에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우리나라 거’라는 말은 곧 그 이야기가 ‘너'의 것이기도 하다는 의미였던 게 분명하다. 




사람의 울음소리를 닮아서


밴드 온도의 이별가를 반복해서 듣다가 글쓰기에 대해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또 다른 사실을 하나 더 깨닫고야 말았다.
 

‘이별가’의 후반부는 사람의 말소리뿐만 아니라 마치 사람이 온몸을 다해 울 때 들을 수 있을법한 울음소리를 닮았다. 더 어렸을 때에는 판소리가 귀를 아프게 하는 것 같더니, 요즘에는 심장을 아프게 하는 것 같았던 의문이 여기서 풀렸다. 내가 가장 가까이에서 들었던 나의 울음소리, 그 소리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진성이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것처럼, 울음소리는 다른 소리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진실과 깊음을 전달한다. 그냥 누구나 들으면 안다. 저 사람 아프구나. 저 사람 힘들구나. 저 사람 외롭구나… 




나의 진실, 

나의 깊음



매번 괴롭고 거친 스토리만을 선사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끔찍하다. 대신, 어떤 글이든 진실하게, 또 깊게 쓰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재미는 진실한 재미로, 웃음은 인생을 모조리 웃음 짓게 하는 깊은 웃음이라면 정말 더할 나위 없겠다. 내가 계속해서 읽기와 쓰기를 병행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 너무 부족하니까, 언제든 얼마든 발전할 기회는 많을 테니까. 연약하다는 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부끄러워 숨지 말고, 쪽팔려 발을 동동 구르지 말고, 더 읽고 더 쓰면 된다. 거기에서부터 이미 나의 진실은 시작되는 거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라서


춘향의 애절한 마음, 이라고 하면 딱 그려지는 그림. 처음부터 끝까지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대부분 춘향이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인지는 알고 있다. 저 먼 나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가 아는 춘향이의 이야기라서 가사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것을 ‘우리나라 고유의 한(恨)’이라고 한다. 


네이버 한자사전에는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라고 정의되어 있는 단어이다. LA TIMES는 한국의 한을 영혼의 미스터리, 한국문화의 이해를 돕는 퍼즐, 한국인이라는 극도의 슬픔(a mystery of the soul, a puzzle that many say helps define their culture — the ineffable sadness of being Korean)으로 묘사하였다. 


그래서일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한’ 때문에 청중이 함께 연결되고, 독자가 하나가 된다. 공감할 수 있다는 건 소속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어렵지 않고 아주 간단하게, 너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다가 나의 이야기가 된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너와 나의 이야기



그에 반해 나의 이야기는, 혹은 너의 이야기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이다. ‘아직’이 붙었다는 건 ‘곧’이 임박했음을 알린다. 아무도 모른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아, 그래서 나는 정말 이야기가 좋다. 글쓰기가 좋다. 


쓴다는 간단한 행동으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글이라는 매개체로 다른 대화가 생겨난다는 것은 글쓰기의 매력이다. 나의 이야기가 공감받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으레 겁이 나서 내뱉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다. 게시하고 나면 누군가는, 어디에선가 고개를 끄덕인다. 생명이 없는 텍스트의 집합체가 생명력을 얻는 것이 바로 이러한 순간이다. 






숨기지 않기로 했더니 점점 덜 쑥스러워진다. 브런치 입구에 있는 작가 소개 란도 수정하고, 인스타그램에도 브런치 링크를 걸어두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더라도 뭐든지 계속하다 보면 편해지고 자연스러워진다. 국악 밴드의 무대를 보고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는 걸 보니,  #한달쓰기의 여정을 시작하길 참 잘했다


화려하지 않아도, 신명 나지 않아도, 

잔잔하고 조용하며 조금 구슬프더라도, 

내가 하는 말이라면, 그 말이 진실한 소리이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어서 하나 둘 기록하고 나누어보라고, 


이별가를 부르던 밴드 온도가  

말해주는 것만 같다.




Sources:

Video by Channel A

Images by William Topa, Yo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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