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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ojeong Jun 19. 2022

제주도 돌담 정도의 벽은 있어야겠어요


그거 어쩌면 블러핑(Bluffing) 일지도 몰라요.

'난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야'라고 남들에게 알리고 싶은 그런 마음요. 본래의 나보다요.

 

블러핑일지도 모른다니. 새로운 표현과 해석이 흥미로웠다. 블러핑은 포커게임에서 자신의 패가 좋지 않을 때 좋은 패를 가진 것처럼 연기하는 것을 말하는데, 게임에서 상대의 기권을 유도하기 위해 블러핑을 하듯 일상에서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블러핑을 쉽게 볼 수 있다.


소개팅에서 상대의 호감을 얻고자 아는 매너를 죄다 선보이는 킹스맨, 면접장에서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지원자, 관리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다른 자아를 꺼내는 직장인…


이러한 블러핑은 여러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몇 판만에 수법을 읽힌 플레이어는 모두의 먹잇감이 되고, 매너의 끝판왕이던 킹스맨은 돌연 자취를 감추며, 뼈를 묻겠다던 지원자는 블라인드에 글을 쓴다. 인사고과 전후의 직장인도 다른 사람이 된다.  


타인은 불확실한 존재이므로 신뢰하기 어렵다.

신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존재는 나뿐이다.


누군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누구의 선택일까?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획득한 정보를 활용할 것인지 여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는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알게 된 <선택이론>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결국 타인이 내게 줄 수 있는 건 정보밖에 없다는 말이다.


한국인은 유독 상황논리에 약하다. 이를 어쩔 수 없는 특성이라고 치부하면, 항상 남 탓만 하며 살게 된다. 지금 내 상황이 이래서, 조직 사정이 저래서, 누구누구 때문에...


어떤 외국인은 한국인의 운전 스타일을 예로 들어 평소 상황에 대한 집착이 어떠한지 설명하는 칼럼을 썼다.


<독일인들은 도로에서 운전을 할 때 필요하지 않으면 차선을 바꾸지 않는다. 반면 한국인들은 옆 차선에 틈이 생기면 차선을 바꿔 그 공간을 차지한다. 한국인들은 도로 상황에 따라 즉각 대처한다>


때론 상황에 맞는 신속한 대응도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피로감도 상당하다. 다른 차들이 내 차 앞을 속속 끼어드는 상황에서 계속 틈을 내주며 거리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선택할 수 있다


나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말을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내 삶에 적용하기까지가 또다시 한참 걸렸다. 돌이켜보면 내 선택이 아니었던 일들은 종종 나를 시험에 빠지게 했다. 결과가 좋을 때는 상관없지만, 결과가 나쁜 때는 내 선택이 아니었으므로 누구의 잘못인지 피 튀기는 책임공방이 일어난다. 이로써 마음의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다.  


하루는 타인에게 개방적인 정도가 어떠한지 친구들과 얘기 나눈 적이 있다. 누구는 금사빠, 누구는 오픈마인드, 누구는 사드급 방어벽을 치고 사는 이유와 장단점을 공유했다. 금사빠는 콩깍지가 벗겨진 후가 힘들고, 오픈마인드는 열린 문으로 들어온 손님이 저녁이 돼도 나가지 않을 때 괴롭고, 사드급 방어벽 소유자는 고독하다고 했다.


"제주도 돌담 정도의 벽은 있어야겠어요"

제주도 돌담처럼 서로의 마당까지는 볼 수 있지만 안방은 침범하지 않는 적당한 거리감이 좋다. 이들은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정보를 건네지만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선택은 당연히 당신의 몫이라며 무엇을 결정하든 응원한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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