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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ojeong Jan 16. 2021

1. 쾅쾅!

"쾅쾅!"  


손인지 발인지 무언가로 문을 성의 없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문이 활짝 열렸다. 그늘진 복도에 가라앉아 있던 찬바람이 열린 문으로 들어와 순식간에 방 안을 훑었다. 덮고 있던 이불이 펄럭였고 몸이 움츠러들었다. 


"다들 자습실로 모여!"  


취침 점호를 마치고 방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방금 침대에 누웠는데 다시 나오라니. 나는 2층 침대의 위층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밑으로 내려가는 일에 신중한 편이었다. 그래서 화장실도 되도록 가지 않았다. 침대에서 꼭 내려가야 하는 상황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나는 누운 채 고개만 살짝 침대 밖으로 내밀어 문 밖을 쳐다봤다. 그런데 아무도 없이 문만 덩그러니 열려 있었다.


기숙사는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이 마주 보는 대칭 구조로 설계되었다. 복도의 오른쪽은 101호부터 105호, 왼쪽은 201호부터 205호라는 방호실이 붙어 있었는데 숫자만 없었다면 거울 속을 보듯 복사해 놓은 모습이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으로 된 복도의 끝에는 전학년이 함께 쓰는 자습실이 있었다. 칸막이 달린 책상들로 가득 채워진 자습실에 다같이 모여서 뭘 하자는 걸까? 혹시 사감 선생님 생일인가?


"빨리 집합해!"  


누군가 기세 좋게 외쳤다. 흡사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수 같았다. 우리 방에 공지말을 남기고 사라진 사람과는 다르게 거칠고 사나운 말투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집합소리에 서로 눈치를 보는 사이 추가적인 안내 메세지가 나왔다. 


"이제 선착순이야. 마지막 사람은 가만 안 둬!"  


기대만큼 일사불란하지 않아 실망한 이의 마지막 선전포고였다. 이 선착순 공략은 꽤나 효과를 발휘했는데 내가 그 선동자라면 상당히 뿌듯했을 정도로 이 방, 저 방에서 타다닥 뛰는 발소리가 났다. 


점점 격해지는 집합 재촉 소리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내가 뒤늦게 자습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차서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그와중에도 유독 눈에 띄는 무리들이 있었다. 자유롭게 뒤엉킨 사람들과 상반되게 한쪽 벽면을 따라 일렬로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1학년 동기들이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옆이었다. 


"눈 안 깔아?" 

"벽에서 등 안 떼!"

"야! 짝다리!"

"옆사람이랑 줄맞춰!"


왜 이밤중에 좁아터진 자습실에서 누군가의 구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각잡고 움직여야 하는지 의문이 가시질 않았지만, 내 몸은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체육 시간에 익혔던 대열 맞추기 훈련이 이렇게 응용되다니 놀라웠다. 


"자, 주목! 오늘 1학년 간부 뽑을 거야. 그래서 불렀어. 우리가 정하는 사람은 앞으로 3년 동안 너희 학년의 간부가 될 거다."  


휴, 제식훈련이 끝나고 본론인 다음 순서로 넘어간 거 같아 기쁘기까지 했다. 간부를 뽑건 말건 내 알 바가 아니었고 3학년이 준비한 진행순서가 빨리 끝나기만 바랐다. 3학년들은 한참을 자기들끼리 쑥덕거렸고, 2학년들은 조용히 서서 결과를 기다렸다. 


"야! 나영진! 그래 너! 네가 앞으로 1학년 장이야."


뭐라고? 그건 내 이름인데. 다른 사람의 이름과 착각했거나 동명이인 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 이름을 호명한 이를 포함하여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저는 하기 싫은데요."

"? 요는 뭐야?  2학년! 너희 아직 얘기  했어? 앞으로 다나까로 말해!"


갑작스런 군대말투 요구에 이건 또 무슨 웃기는 소린가 싶었으나 지금 시급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저는 하기 싫습니다."

"시키면 그냥 하는 거야. 누가 너보고 선택하래? 됐고, 다음 부장에는"

"전 안 할 건데요."

"요?"

"아. 저는 잘 모르고, 못해서요, 아, 못합니다."


갑작스런 서술어 옵션사항에 말을 조금 버벅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힌 거 같아 그것으로 나는 만족스러웠다. 


"야! 됐고, 1학년 장은 나영진, 부장은 김은미, 총무는 이영애. 끝. 해산해."


해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다들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간부 지명을 거절하는 나의 이야기를 더 듣겠다고 기다려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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