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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ojeong Aug 25. 2019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feat. 보라카이 아일랜드

얼마 전 여름휴가로 필리핀에 있는 보라카이 섬을 다녀왔다. 비행기에서 내려 마주한 칼리보 공항은 1년 전과 다름없이 허름하고 덥고 무척이나 오래 줄을 서게 만들었다. 여전히 칼리보 공항은 건물 구조도 시스템도 개선된 게 없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마 우리나라 공항이 이랬다면 바로 엄청난 민원이 쏟아졌을 것이고, 해당 관계자는 질책을 당했겠지만, 여긴 변함이 없었다.


필리핀은 7000개가 넘는 섬으로 구성된 나라다. 그 많은 섬들 중에서 보라카이가 유독 휴양지로 유명해진 이유는 세계 3대 해변이라 불리는 화이트 비치(White Beach)가 있어서다. 바다도, 수상레저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지만 화이트 비치를 보기 위해서 다시 한번 칼리보 공항을 찾았다. 


칼리보 공항의 입국 과정이 몸풀기라면 출국 과정은 본 게임 돌입이라고 할 수 있다.

티켓을 발급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고, 공항세 700페소를 내기 위해 다시 줄을 섰다가,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줄을 선다. 좁은 공간 안에서 어느 줄이 티켓 발급 줄인 지, 어느 줄이 공항세 내는 줄인 지를 알 수 없어서 모두를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칼리보 공항 관리자에게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심지어 수백 명이 줄을 선 공항세 납부 코너에는 오직 한 명의 직원이 있다. (^_^) only one~


여행의 끝자락에서 지친 몸과 캐리어를 이끌고 출국을 시도하는 많은 인파들은 인내와 인내 끝에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저녁을 든든히 먹고, 장시간 진행될 출국을 위해 마음도 단단히 먹었다.


공항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는데 앞쪽에 있던 어떤 한국 사람이 한참 뒤쪽에 서있는 일행들에게 '그냥 빨리 이쪽으로 와'라는 사인을 보낸다. 뒤쪽에 있던 일행들은 눈치를 보며 주춤주춤 한다. 그러니 앞쪽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한국 사람이 큰소리로 말한다.


"저희가 빨리 들어가려고 가이드 통해서 공항 관리자한테 팁을 두둑이 줬는데 뒤쪽 일행이 앞으로 못 오고 있어요. 앞으로 올 수 있게 길 좀 내주세요."


와우! 언빌리버블!

공항 관리자에게 팁(뇌물)을 줬으니 우린 당당히 앞으로 가야(새치기해야) 하는데 좀 비켜줄래?

지금 내가 돈 쓴 보람이 없잖아!

라고 해석되던 그 외침은 순서대로 줄을 서서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을 한순간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어안이 벙벙해져 짜증이 올라오고 한마디 하고 싶어 지던 그때, 다행히도 그들의 일행들은 앞으로 가지 않겠다고 했다.


농구 코트 만한 작은 공항 내부는 항공사별 티켓팅 줄과 공항세를 내는 줄이 뒤엉켜있다. 아수라장이다. 이때부터는 은근슬쩍 새치기하려는 무리로부터 나의 순서를 지키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앞사람과 조금의 틈도 벌리지 않아야 하는데) 모두 내 맘처럼 경계태세를 세우는 건 아니니 어느 순간 앞쪽에서 안 보이던 사람이 앞서서 걷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원래 앞에 있었던 사람처럼 능청스럽게 웃고 대화하는 꼴은 가관이기까지 하다. (님아, 진상 짓은 좀 넣어둬~ 넣어둬~)


참고로 작년에는 빨간 여권 무리들(중국 남자들)이 줄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돌격해서, 녹색 여권 무리들(한국 남자들)이 멋지게 막아낸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빨간 여권과 녹색 여권의 수는 비슷했기에) 공격과 수비가 치열했고 끝내 주먹다툼이 일어났으며 주변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어떤 국적 불명의 여성분이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주변인들은 비명과 함께 긴급 대피하며 사건이 일단락됐었다.


우리는 교양 있게, 품위 있게 살고 싶다.

그러니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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