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tojeong Jun 11. 2019

다큐멘터리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세상을 만나는 열린 공간

세상을 만나는 열린 공간, 다큐멘터리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뉴욕 라이브러리에서>(감독 프레드릭 와이즈먼)는 세계 5대 도서관이자 뉴요커들에게 사랑받는 뉴욕의 명소 ‘뉴욕 공립도서관’을 배경으로 12주간의 기록이 담겨 있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민간의 기금으로 설립되고 뉴욕시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뉴욕 공립도서관은 그 역사가 무려 100년이 넘었고, 현재 3개의 중앙 도서관, 4개의 연구 도서관, 85개의 지점 도서관을 운영 중입니다. 뉴욕 한복판에 자리 잡은 대규모 도서관과 지역 곳곳에서 운영 중인 소규모 도서관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가 이용해본 도서관의 모습과 저 너머 다른 세상에 있는 도서관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있었고, 100년 넘게 사랑받으며 잘 유지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면서 접한 다양한 공간의 경험을 상기해보고 내가 머물고 싶고 우리에게 필요한 공공 공간에 대해 잠시나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뉴욕 공립도서관이 100년 넘게 사랑받는 이유


도서관은 무료로 책을 보거나 빌릴 수 있는 곳입니다. 요즘은 공용 컴퓨터를 쓸 수 있도록 준비된 곳도 있고,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도록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죠. 여기까지는 도서관을 이용해 보신 분이라면 다 알고 계실 텐데요. 요즘처럼 급변하고 복잡다단한 시대에 도서관처럼 정적인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까요?


이번 영화를 통해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뉴욕 공립도서관 운영진이 주요한 안건의 의사결정에 앞서 자신들의 사명(mission)을 상기하는 장면이에요. 어느 조직이든지 예산 문제, 운영 방침, 주요 사업, 프로그램 편성 등 다양한 결정이 필요한 일은 주기적으로 또는 일상적으로 생겨나죠. 그때마다 우리의 결정이 옳은지, 존재 이유를 벗어나지 않았는지, 시대의 요구에 부흥하는지 점검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빠르고 관습적인 의사결정은 효율적인 일처리로 비치기도 하고, 고착화된 구조와 역할은 안정되고 전문적인 운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시대의 변화와 요구를 수용하고 끊임없이 고민하기 위해서는 많은 학습과 노력, 수용적인 태도를 필요로 합니다. 말은 쉽지만 그게 과연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까요?


영화는 12주 동안 뉴욕 공립도서관의 모습을 상황을 달리해서 화면에 담았어요. 설명하자면 그 도서관 안에 있는 사람은 직원과 방문객으로 나뉠 텐데요. 그렇게 두 대상을 나누어 모두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과 방문객의 이용 장면을 자연스레 담았습니다. 도서관 건물은 전경과 배경으로 나눠서 보여주고, 외부와 내부를 비춥니다. 공간의 용도와 쓰임에 따라서도 화면에 담습니다. 전시 공간, 공연장, 교육장, 열람실, 연구실, 소장 공간, 노트북 사용 공간, 직원들의 작업 공간 등등 공간마다 설계된 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서관 운영진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다양한 컬렉션을 보유한 박물관으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뉴욕 시민들의 삶을 반영한 살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어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기술 소외 계층이 생겨납니다. 디지털화된 정보는 디지털 기기가 없으면 접근이 불가능하죠. 정보화 시대엔 정보가 돈이고 정보를 살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열정과 호기심을 충족할 수 없는 좌절감을 맛봅니다. 이러한 기술과 정보의 격차를 줄이고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뉴욕 공립도서관에서는 다양한 문화 예술 공연과 전시를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직업 교육과 채용 정보를 적극 제공하며, 다양한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기술과 정보의 소외계층에게 더욱 집중해서 말이죠. 많은 예술가들은 영감의 원천을 찾아 뉴욕 공립도서관으로 향합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수많은 예술자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죠.


뉴욕 공립도서관이 100년 넘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지점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사명에 충실하되 시대에 맞는 유연함으로 운영하는 노력 말입니다.



누구나 존중하고 모두를 수용하는 공간


뉴욕 공립도서관의 운영진은 여러 안건을 놓고 어떻게 할지 고민합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니 매년 어디에 힘을 더 실을지 논의하는 장면도 보여줍니다. 화면에는 상세한 자막 설명이나 인물 소개는 없습니다. 그래서 화면의 배경과 등장인물의 발언으로 도서관 운영진일 거라는 추측을 했는데요. 운영진의 다양한 발언이 흥미로웠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종이책과 전자책의 구입 예산의 비중을 어떻게 나눌지였어요. 해마다 발행되는 종이책 중 베스트셀러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는데 베스트셀러 책은 수요자가 많으니 여러 권을 구매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책이더라도 소수의 이용자를 배려한 구매는 필요해요. 그런데 전자책의 이용자가 최근 30배나 급증해서 그만큼 이용 라이선스의 수를 늘려서 대출 대기자를 줄여야 한다는 안건이 나옵니다. 그럼 종이책 구매 예산을 줄여야 하는데 그게 과연 현시점에 현명한 선택인지 운영진은 고민하기 시작해요. 영화에서는 종이책별, 전자책별 대출 현황과 종류를 데이터로 뽑아서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회의를 일단락합니다.

두 번째 장면은 노숙자 방문객에 대한 대처방안이었어요. 도서관은 모든 방문객을 돕고 환영할 의무가 있는데 방문객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기도 하고 서로 섞이는 게 불편한 분들도 있기 때문이지요. 누구나 존중하면서 어떻게 모두를 수용할지 운영진은 고민합니다. 이 상황에서 도서관의 적절한 역할이 뭘까요? 누구든 환영할 공간에 그칠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노숙자 방문객이 잠을 자려는 목적으로 도서관에 들어오거나 이용 규정을 어긴다면 나가 달라고 해야 한다는 거죠. 노숙자 관련 사회정책에 어떻게 개입할지도 고민합니다. 뉴욕시나 이미 같은 문제를 다루는 다른 전문기관에만 의존하는 걸 넘어서 말입니다.


미국의 대부호 앤드루 카네기는 “시민이 걸어서 갈 수 있는 15분 이내에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지점 도서관 설립 비용을 기부했어요. 대신 뉴욕시가 운영을 책임지기로 하고 말이죠. 현재 뉴욕시는 매년 도서관 운영 예산을 편성하고 운영진은 어떻게 배분해서 사업을 할지 고민합니다. 지점 도서관마다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수요와 만족은 어떠한지 확인하죠. 어린이를 위한 방과 후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 점자책을 제작하고 읽는 법을 교육하는 곳, 오디오북을 만드는 곳 등 지점별로 특화된 도서관의 모습도 볼 수 있었어요. 누구나 교육의 기회를 갖도록 소외 계층을 배려하는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여러분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나요? 있다면 가고 싶은 공간으로 잘 운영되고 있나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숙제를 풀어가야 할까요. 저는 이 영화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이어가는 시간이 되었는데 여러분에게는 어떠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기생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