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렵다고? 이게 무슨 말이야?"
"베이식은 래퍼야. 생업을 위해 직장인이 되었다가 다시 쇼미더머니에 나왔거든. 힙합을 꿈꾸는 건 쉬웠지만, 힙합과 헤어지는 건 어려웠나 봐."
베이식의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를 들으면 꿈에 대한 미련뿐만 아니라, 누군가와 헤어질 때 느꼈던 고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나에게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던 친구는 만남에 신중한 편이고, 이별에는 다소 의연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만남이 어찌 쉬울 수 있는지 자기 기준에서 질문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반대로 만남의 시작이 어떠했건 상관없이 이별이 항상 더 힘들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상실감과 관계의 실패를 내 탓으로 여기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호불호가 분명한 걸 관계의 효율로 여겨왔기 때문에 좋으면 한없이 잘해주고, 싫으면 일절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 좋아하는 상대와 헤어질 땐 쏟아부었던 마음만큼 고스란히 고통이 되어 돌아왔다. 대체 내 상처와 결핍은 어떻게 생겼길래 좋아할까 봐 조심하게 되고, 그러다 결국 깊게 빠져버리는 걸까.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선물이 좋을지 함께 하는 즐거움에 몰두하는 건 쉬운 일이다. 진짜 어렵고 중요한 건 가까운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서로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내가 나를 잘 알아야 하고, 상대도 그래야 하며, 서로에게 그걸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가 싫다고 말하는 것들을 주의해서 똑바로 들을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게 말은 참 쉬운데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상대와 함께 있는 즐거움이 너무 커서 다른 것들은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으니까.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이해하는 건, 내가 그들이 가진 무엇을 욕망하는지 아는 지표가 되는 거야. 그러니 좋아하는 사람들의 매력과 취향을 탐구하는 건 스스로가 어떤 인간인지 이해하려는 노력이야."
사람을 잃고 관계는 사라졌지만 그건 결과이고, 함께했던 시간들은 고스란히 경험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알게 된다. 내가 상대에게 강렬함을 느끼고 움직이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어떤 욕망이 건드려져서 마음이 폭주하게 되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열중했던 건 서로가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까지도.
사랑하고 나면 내 안에 다른 자아가 생긴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를 알아버리고 나면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사랑한 이후에 나는 사랑하기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된다. 이것이 사랑이 끝난 뒤에 생긴 내 안의 새로움과 마주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다음에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