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망했다_청빈하고 싶은 소비일지
회사 근처에 슈크림 붕어빵을 파는 곳이 있어 근처로 밥을 먹으러 갈 때 주기적으로 생각이 난다. 파는 분의 마인드가 좋아보인다. 한가득 반겨주시고, 같이 파는 구운 밤을 꼭 2개 맛 보라고 주신다. 나는 앞으로도 구운 밤을 살 일이 없을 것이다. 밤이란 언제 그 단단한 속살을 파고 들어간 애벌레를 동반할지 모르는 위협적인 음식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짜로 구운 밤을 얻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적어도 맛보기로 받은 밤에서는 한 번도 벌레가 나오지 않았다.
해피클럽이라는 엄연한 카페의 상호명을 두고 함께 밥을 먹은 회사 동료에게 ‘해피타임에서 사드릴게요’를 연신 외쳐댔다. 굴짬뽕을 얻어먹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대접받고 바로 갚을 궁리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우아하고 고상한 삶의 태도가 아니지만, 내가 생겨먹은 것이 그렇다. 붕어빵도 그랬지만 커피를 꼭 사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해피타임이 아닌 해피클럽은 언제나 점심이 붐빈다. 가게 안에 테이블 하나 없이 테이크아웃 전용 카페를 만들어놓고 점심에 바짝 팔고 저녁이면 문을 닫는다. 이런 쿨한 영업 방식이라니. 점심에 나같이 발걸음을 옮겨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가능한 일이다. 일찍 문을 닫은 사장님은 뭘 하면서 저녁을 보낼까? 나처럼 내일을 위해 책상에 던지고 온 일 걱정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원자재 공급에 대한 소소한 걱정을 제외하면 완벽한 워라밸을 누릴 것 같다. 부럽지만 내 길이 아닌 것을.
퇴근길에 무인양품 생각이 났다. 원래 쓰던 미니 돌돌이의 리필을 대량으로 구매했는데 돌돌이의 본체와 리필이 맞지가 않아 덜컹거리는 참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본체에 맞는 리필을 구매하면 되지 않나 싶다가도 이미 호환이 되지 않는 두 물체에 대한 정이 떨어져버렸다. 내 나름의 핑계다. 이대로 무인양품에 가면 필시 몇 만원어치는 사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지만 기어이 걸음을 옮겼고, 내친 김에 먼지털이와 칫솔꽂이, 도자기 트레이까지 샀다. 이 작은 게 이렇게 비쌀 일인가 싶은 칫솔꽂이와 도자기 트레이는 다이소에 가면 분명 비슷하지만 훨씬 싼 제품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참 그렇다. 칫솔꽂이는 매일같이 보는 물품인데, 이왕이면 다이소보다는 무인양품 생각이 나는 쪽이 좋을 것 같았다. 이런 허영심만 버려도 절약되는 돈이 어마어마할 터인데. 마찬가지로 미니 돌돌이와 리필용 테이프도 옷에 붙은 먼지를 제거할 때 보다 기분이 좋아지겠지. 세상에는 절약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브랜드의 가치를 소비한다는 측면도 있지 않은가. 나에게 무인양품은 꽤 괜찮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집에 있는 납작만두를 구울 생각을 했으나 결국 버거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인양품에서 꽤 시간을 지체한 터라 만두를 굽자니 8시를 넘길 것 같았다. 그러면 그때부터 만두는 저녁이 아닌 야식이 되므로, 어설픈 다이어트 생활에 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치킨너겟만 2개를 주문하자니 햄버거를 주력으로 팔고 아마도 감자튀김으로 이윤을 남길 것 같은 그곳에서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졌지만, 프랜차이즈가 편한 건 이해관계자가 직접 매장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닐까. 점장이 내 주문을 받는 게 아니라는 점에 마음이 놓였다. 내가 먹으면 먹는 건데 왜 이런 피곤한 걱정에 시달려야 할까. 어쨌든 저녁 한 끼 해결하는 돈으로 5천 원을 쓰는 것은 꽤 합리적인 소비 아닐까. 점심을 먹을 때도 최소 9천 원은 든다. 집에 와서 치킨너겟 2봉지를 펼치고 앉아있으니 재빨리 ‘이건 과식이다’라는 자각이 뒤따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사할 때 사놓은 고든스진 몇 잔과 곁들여 빠르게 헤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