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일기
꽃을 보는 연습을 한답시고
주말 아침에 양재 꽃시장을 기웃거리며
신문지에 한 다발씩 둘둘 말아오던 시절이 있었다.
꽃을 보는데 무슨 연습이 필요한가 하면
이파리가 말라가고 색상이 옅어지고
때로는 마치 참수를 당한 듯
고개를 툭 떨어뜨리다 줄기에서 분리되는
장미의 자줏빛 대가리를 받쳐 들고
'이건 목련보다 지독하군' 하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과정이 그 무렵 나에게
유한한 무언가를 보내는 연습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시절 나의 꽃 보기 연습이 효과가 있었는지
최근 들어 소원해진 몇몇 관계에 대해서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섣불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거나
너무 빨리 생각에서 밀어내려 하지 않고 있다.
'왜?'라는 질문 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 것을 느끼며
내가 정한 선도 아니고, 상대가 정한 선도 아닌
그저 이 정도면 서로 충분했다고 생각이 드는
유성매직으로 그은 선이 아니라
분필이든 목탄이든
언제든 희미하게 지워질 수 있는
'교류 단절'이라는 선을 그어놓고
그렇게 되어버린 일에 대해서
그저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며
단순하고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당신과의 교류를 포기한다.
여기 있는 당신도, 저기 있는 당신도
나와 인연이 다한 모두가
안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