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의 격

by 써드

존재를 탐구한답시고 미간을 자주 찌푸리는 사람이 생일을 도외시하면 되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 꽉 찬 생일을 보내려고 새벽 4시 반에 깬 사람이 있다. 포털사이트 메인 로고에는 저마다 ‘OOO님, 생일 축하해요’ 하고 개인화메시지가 뜬다. 스타벅스는 커피 한 잔을 무료로 주고, 무슨 무슨 미용실 등에서는 좀 더 싸게 너를 호구로 만들어버리겠다는 할인 메시지를 보내올 것이다. 친구의 축하 대신 시스템의 축하를 받는 것이 어쩌면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확실히 언더그라운드의 한 축이 되었음을 증명받는 일일까.


내 생일 이전에는 세상이 조금 더 활력이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본다. 빛나는 명작 영화가 이미 세상에 나와 있었고, 역사로부터 이어진 피의 전쟁과 광휘의 평화도 반복되어 온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내 생일을 기점으로 세상에는 특이점이 발생했다. 그 증거가 바로 나다. 내가 태어나서 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쭉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직 이곳이, 이 상태가, 이 느낌이 ‘살 만한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러므로 세상은 나에 대해서 의문의 1패다.


나를 차단한 그리운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찌질한 짓을 해봤다. 분명 여전히 아이폰을 쓰고 있을 텐데 아이메시지로 전환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이 자의 단절 의지도 참 확고하다. 한때 애틋함을 나누었던 사이가 헤어지면 이렇게 철저히 ‘네버 엔딩 스토리’가 아니라 ‘머스트 엔딩 스토리’로 끝나야 한다는 것도 팍팍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현대 연애 제도의 비극이라 할 수 있겠다. 역시 이 판 저 판 둘러봐도 도무지 인간미가 없고 팍팍하구나.


쫌쫌따리로 자잘한 선물을 보내올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조금 신경이 쓰인다. 왜냐하면 지난 1년간 내가 몇몇의 생일을 축하하는 선물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등가교환의 법칙’을 은연중에 주지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머, 너무 감사해요!’ 따위의 말을 몇 번쯤 해야 하는 게 오늘의 숙제 중 하나겠지. 생일은 케익에 초를 몇 번 불었는가, 선물이 총 몇 개인가 하는 간단한 수치로 설명될 수 없다. 나는 사교계의 꽃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우주의 현자가 되고 싶으니까, 오늘은 온통 문명의 태동과 신에 대한 고찰, 실존주의적 상념으로 하루를 채워야지. 꼴값을 떠는 듯하지만 나와 참 어울리는 계획이다.


망원동에 살던 시절, 자주 찾던 통닭집이 있었다. 매장을 운영하는 노부부가 하도 금슬이 좋아 보여, 그들이 기쁘게 씻어서 내는 양배추 샐러드까지도 정갈한 맛이 있었지. 손님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끄는 가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일을 마치고 ‘혼치킨’을 하러 온 중년의 남성들이 많기도 했다. 어느 밤에, 통닭집 한켠에서 옛날통닭을 시켜서 먹고 있는데 저쪽 테이블에서 홀로 닭을 뜯다가 기분 좋게 취한 아저씨가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말했다.


“아아, 역사는 흘러간다~!”


무슨 뉴스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저씨의 흥겨운 톤이 뇌리에 박혀 우리는 한동안 ‘역사는 흘러간다’는 밈을 애용했다. 역사는 흘러간다. 나는 멈추어 있는데 사람들이 바뀌는 건가. 아니다. 비슷한 주제로다가 ‘비가 온다’고 할 때 비가 오는 걸까, 내가 가는 걸까. 내가 딛고 선 땅은 쉴 새 없이 돌고 있는데 어째서 태어나자마자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고 공전과 자전에 익숙해졌을까? 생각하면 멀미가 난다. 지구과학적 진실이 또 한 번 내 온몸을 때리는구나.


나는 우두커니 서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영원인 듯 쉴 새 없이 재배열된다. 이번 생일을 이렇게 황망하게 맞이할 줄 알았을까. “다들 대피해! 인생 쉽지 않다” 하고 과거를 살았던 무수한 11월의 나에게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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