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걸 안 할 수는 없다

by 써드

저녁 무렵이면 집 앞 편의점에서 페트 재질의 소주 한 병을 사는 내가 있었다. 편의점 사장님은 앞줄에 정렬된 물건이 지금 막 넣은 거라 시원하지 않다며 손수 뒤에 있는 술병을 꺼내 주시곤 했다. 계산을 할 때야 반갑게 웃었겠지만 뒤돌아서는 나를 보며 생각하지 않았을까. 저 사람도 참 매일 술을 사가네. 한 번쯤 내 인생의 명암을 헤아려보지 않았을까. 내가 언젠가 강남 한복판의 후미진 골목에서 그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웃음이 따스하지만 위태로워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호박팥차, 페퍼민트, 보이차가 든 봉지가 집 앞으로 배달되었다. 이케아에서 사온 민트색 병에 차를 우려서 저녁 내도록 마시던 어느 계절이 생각났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주방. 그리고 사라진 사람과 사라진 어떤 고양이. 그때 쓰던 투명 주전자를 쓰려고 꺼냈다가 도저히 이 작은 집에서 고양이를 두고 쓸 수 없을 것 같아 여행용 전기포트를 꺼냈다. 끓이는 동안 스테인리스 재질의 몸체에서 발열이 심해, 싱크대로 뛰어오르려는 고양이를 이리저리 쉿쉿 소리를 내 가며 간신히 막아섰다.

회사에 다닐 때 쓰던 텀블러에 호박팥차를 우려서 티백은 버리고 드디어 첫 모금. 이 한 모금이 바로 술 한 잔을 대신한다. 언젠가부터 손에 그러쥐고 놓지 않았던 초월에 대한 욕망이 스르르 사라지는 맛이다. 문득 눈 뜨면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 같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순간에 대한 열망도 안녕. 그리고 생각한다. 하던 걸 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걸로 대체할 수는 있다.


나는 의학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한동안 꼭 술을 마셔야 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 이유를 이 작은 원룸이 답답해서,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갑갑해서, 내 직장이 턱턱 숨이 막혀서라고 생각했다. 그 모든 게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유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또 같은 법칙을 발견했다. 이유를 사라지게 하는 대신 똑같은 조건에 원하는 결과를 접붙인다. 그러면 이유는 더 이상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이유를 손보려고 하지 말고 ‘그러므로 하지 못했던 아주 작은 것’을 무작정 해 보는 거다.


나는 도저히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던 음주의 시간을 차를 마시는 시간으로 교체했다. 그러니 신기하게도 나에게 술을 권하던 이유가 하나씩 지지대를 잃고 무너진다. 소주야 뚜껑 한 번 따면 그만이지만 이 한 잔의 차를 마시기 위해 이런저런 불편을 감수했는데, 감수한 보람이 있다. 술을 마시던 시간. 그때는 이유였던 것이 지금은 핑계로 보인다. 알딸딸하니 텐션이 올라간다고, 나는 텐션이 낮은 사람이라 적정한 술이 독이 아니라 약이라고 되뇌었지. 그 시간의 가치를 폄훼하지 않으면서, 이제는 거창하게 인생의 법칙 운운해가며 스스로를 단도리하는 나를 두 팔 벌려 안아준다.


1을 0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또 다른 1로 교체할 수는 있다. 어쩌면 3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주를 잃고 호박팥차, 페퍼민트, 보이차를 얻었으니. 급매로 내놓아도 도무지 빠지지 않고 있는 이 공간이 소중하다. 여기서 정신을 차릴 수 없다면 그 어디를 가도 무너질 것이다. 무언가 내 정수리를 한 땀 꿰어서 쭈욱 실을 뽑아 올리는 것 같다. 실낱같은 희망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하루를 잘 살아낸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오늘 하루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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