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릇에 맞는 고통을 내리소서

by 써드

프로도는 기꺼이 절대반지를 모르도르로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몇몇 현자들은 프로도의 결심이 곧 그의 일상적 삶과의 영원한 안녕을 뜻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엘프, 마법사, 빌보 베긴스와 함께 프로도가 배를 타는 것으로 묘사된 여정의 끝은 실상은 현세에서의 죽음이다. 나는 끝내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프로도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구원이란 무엇인가?


절대반지를 품었던 경험은 프로도의 손가락 하나를 앗아갔고, 나는 그걸로 충분히 대가를 치른 줄 알았는데 구원받지 못했다니, 그의 마음 속에는 혹시 빌보 베긴스만큼이나 없어진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갈망하는 마음이 독버섯처럼 자리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라곤이 왕좌에 오르고 호빗들이 마을로 돌아간 뒤에도 프로도의 얼굴은 창백하기만 하다.


반지의 제왕을 여러 번 다시 보면서 프로도의 죽음을 감지하고 눈여겨본 것은 이번에 처음이다. 누구나 절대반지 하나쯤은 품고 있다가 생의 용광로에 떨어뜨린 뒤 자신을 지탱하던 어둠을 잃는다. 물론 빛도 함께. 그렇게 사람이 갑자기 변한다. 그러다 죽는다.


양치질을 하다가 문득 이러다가 생이 끝나겠다 싶었다. 내 마지막 양치질에는 얼마만큼의 악력이 남아 있을까?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는 인연, 그런 간사한 마음을 품고 누군가를 좋아해도 될까?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기약이 있는 만남이 아닐까? 기약이 없더라도 당신이 사라지고 난 뒤에 너무 아팠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이런 인연에 선악을 따지려 했던 나를 반성한다.


내게 주어진 거미줄 같은 인과관계에 맺힌 물방울 하나하나에, 나와 연을 맺은 이들의 마음이 맺힌다. “99퍼센트의 확신은 곧 100퍼센트 실패다”라고 했던 어느 미국 예능 프로그램 속 IT업계에 종사하는 분의 말이 맞다. 모든 물방울이 다 100퍼센트고 나는 주어진 인연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물방울은 맺히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크고 작음이 있지만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생각해 보자. 이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대면해야 했던 무수한 얼굴과 사랑이 없는 눈동자. 그들이 만든 응달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시절은 추웠지만 그래서 따뜻하다는 게 뭔지 알게 되었다. 나의 신체가 어떤 소명을 받았다는 확신이 들면 들불처럼 일어나서 살아가야겠지. 기나긴 백수시절이 만든 사막 한가운데에 누워서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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