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뭐라고

by 써드

넷플릭스 하이틴 퀴어 영드 ‘하트스토퍼’ 시즌 1을 닳도록 돌려보며 행복해하던 전 연애 말기를 미화하지 않기로 하자. 체감상 파도에 바위가 부서져 조약돌이 된 것 같은 거칠고 지난한 시간이 흘렀다. 시간? 이제 ‘세월’이라는 단어를 내 삶에 허락해도 되지 않을까.


그간 가상의 게이 커플을 응원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아 시즌 2를 지나 시즌 3이 공개되도록 근 3년을 묵혀온 보물상자를 열었다. 도저히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몇 편을 남겨둔 새벽이다. 절묘하게도 아픈 애인을 돌보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나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투사한다.


나는 괜찮다. 환한 빛이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 뒤에 배달완료 알림을 받고도 현관 너머 무언가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간신히 피자를 수령했을지라도. 샤워를 하다가 머리를 감을 때 눈을 감는 게 두려워 린스를 건너 뛰었을지라도. 아직도 거울을 보는 게 두려워 온수로 뿌옇게 된 거울을 다행이라 생각했을지라도. 적어도 괜찮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체크할 만큼의 힘은 남아 있다.


하트스토퍼에는 식사에 규칙을 만들고 강박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는 주인공이 있다면 여기 논현동에는 빛을 받으면 딱 그만큼의 농도로 어둠을 인지하는 내가 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하고 이제 막 지구 어딘가에 랜덤으로 꽂혀 동떨어진 기분으로 현재와 순간을 인식하는 습관도 버리지 못했다. 어쩌면 가루가 되어 흩날릴 때까지 이고 지고 가야 할지도 모를 감각이다.


드라마 속 무성애 캐릭터에게서 나와 공통점을 찾은 것도 특기할 만하다. 실상 연애를 하면서도 뼈만 남은 물고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다. 제도를 인식하고 투명하게 동의한 뒤에 투명한 벽을 넘어서 푹 빠져들 수 있을까. 연애, 결혼, 출산, 육아. 육아로부터 다시 성장, 연애, 결혼, 출산, 육아. 그렇게 내가 존재하는데 이 사이클을 거부하고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유유자적 살고 있어서 피터팬이 된 듯 고독하고 행복하다. 잃어버린 내 그림자를 찾아서 잘 꿰매야 할 텐데. 내게 꼭 맞는 적정선의 슬픔과 분노, 절망의 선을 찾아내고야 말겠다.


오늘도 술로 해결하지 않는 저녁을 보냈으니, 어쩌면 다 잘될 거다. 이놈의 알콜사용장애 덕분에 기쁠 때나 슬플 때 어쩌다 한 번씩 술을 마시는 풍경 속에 있을 수 없다는 게 서운하다. 대신에 누군가에게는 불가능한 무언가를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을 테니, 어쩌면 누워서 메모장에 끄적이는 이 글쓰기 비슷한 작업도 슬슬 써 내려가지 못하는 꽉 막힌 가슴이 있겠지.


동생이 쓰라고 준 아이패드 속에 ‘힘들지만 이겨내야지‘라고 쓴 메모를 봤을 때 그 한 줄밖에 생산해내지 못하는 동생이 안쓰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글 좀 안 쓰면 어때서? 차라리 글 대신 하늘의 별이나 한 번 쳐다보고 말지’ 싶기도 했다. 대체, 글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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