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나, 나, 당신이 뭔데: 삼체 후기

by 써드

언젠가 유튜브 요약본으로 접한 삼체를 넷플릭스 시리즈로 이제야 보게 되었다. 원작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작가의 의도가 얼마나 잘 구현된 시리즈인지 알 수는 없으나 외계, 신, 물리학 등 내가 열광하는 요소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듯한 이 시리즈에 어딘지 거부감이 들어 오래 시청을 미뤄왔던 이유를 알 것 같다.


'You are bugs'


전 세계의 전광판을 가득 메운 이 문장이 강렬하긴 했지만 나는 진이 수감된 예원제에게 ‘나, 나, 나, 당신이 뭔데?’라고 되묻는 장면이 가장 인상깊었다. 당신이 왜 인류를 대표해서 ‘인간은 글렀어’라고 판단을 내릴 수 있냐는 맥락이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삼체에 등장하는 주요인물 중 누구에게라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에서 조금, 영국에서 조금 벌어진 일을 너무도 비장한 스케일로 그려냈지만 대사나 배역이 전 우주적 과제를 따라가지 못한다. <컨택트>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외계 문명에 대한 진중한 고찰에 익숙해서인가. 조금은 가볍게 볼 수 있는 블랙미러 시리즈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보는 내내 마음속으로 특정인물이나 특정 진영을 응원하는, 나를 투영하고 동일시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있다고 하면 수수한 옷차림의 형사 정도? 물론 인물에 대한 감정 이입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단지 나와 상성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기에는 석연찮다.


앨런튜링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보며 나는 역시 영국이야, 하는 동경의 마음을 품지 않았다. 그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튜링의 일생에 조용히 경외심을 품었을 뿐. 그런데 삼체는 자꾸만 나에게 ‘중국 대단하지?’ ‘과학자들 멋있지?’ 하고 말을 걸어온다.


나에게 중국은 굴원, 도연명, 죽림칠현 등이 있었던 멋진 나라이긴 한데 그들은 이미 별이 되었고, 삼체가 보여주는 태양이 셋인 행성의 생존방식에 대한 파격적 상상력은 빛났지만 거짓말 좀 한다고 벌레라고 공표하는 사고의 비약은 외계문명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지구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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