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13층, 굿바이 2025
2018년 봄이던가, 새벽 5시에 일어나 소설을 구상하며 하루 종일 글 생각에 드릉드릉하던 한 시기가 있었다. 그렇게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장편소설 분량의 글이 완성되었다. 그것이 바로 13층이라는 원고다.
불온하고 금지된 것들에 수난의식을 덧붙여 역으로 신성화하고, 대학 때 니체의 저작을 일부 읽어버린 덕분에 선악의 경계에서 유희처럼 서성이는 신적인 존재를 만들기도 했다. 사랑의 삼각함수를 잘 풀면 적어도 인간사 치정에 의한 비극 정도는 막을 수 있겠다 싶어 인간, 신, 고양이가 결국에는 서로 사랑하는 내용을 큰 줄거리로 삼았다. 그렇다. 다른 종 간의 사랑, 인간과 신의 사랑, 나아가서 모든 이분법을 홍길동처럼 해체하고 다니는 둘도 없는 세 존재를 그리고 싶었다.
구상은 거창했으나 2025년도에 다시 열어본 파일을 쭉 읽어내려가는데 엄마 립스틱을 바른 아이의 사진을 본 것처럼 민망함에 모골이 송연했다. 소설이 별로였다기보다 그걸 쓸 무렵의 나는 내 식대로 알아낸 깊이와 진리를 게걸스레 전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사랑의 실험이랍시고 날것의 구성을 펼쳐 플롯처럼 보이지만 플롯이 아닌 기이한 판을 짜놓고 내 딴에는 투명한 듯 절묘하게 슬프다고 여겼던 거다.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이 내 글을 프린트한 종이에 코딱지를 묻혀도 할 말이 없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대한 마음이 웃자란 못난 자식을 보는 것 같은 짠함이 있어 2026년 버전으로 리뉴얼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걸 쓰면서 그때의 나를 끌어올리기보다 내가 되려 이끌려 들어가 파멸의 광산에서 정신적 노역을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때로는 칼을 꺼냈을지라도 자르기 위함이라는 목적의식으로 애꿎은 무나 자르기보다는, 잘못 꺼냈음을 인정하고 칼집에 고이 밀어넣는 것도 무사의 도, 아니 글을 쓰는 사람의 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시간의 아코디언을 들었다가 연주를 포기하고 조금 풀이 죽어 무대 아래로 내려간다. 신의 반열에 오른 고양이가 무의 폭발적인 공허와 사랑으로 스스로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하다가, 인간과 신의 만류로 다시 존재를 인정하는 이 거창하고도 소박한 이야기를 아직은 가만히 품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2018년 유난히 더웠던 그 시기에 대한 한 묶음의 추억으로 간직할 수도 있겠지. 새해의 시작과 함께 소설 13층, 안녕! 아직은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