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천태만상, 그거만 되면 이걸 해야지

by 써드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책상을 정리하는 마음이다. 두꺼운 책 한 권을 사는 순간 이미 읽은 듯한 만족감도 된다. 어떤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반드시 성립되어야 하는 조건이나 환경을 설정하고 그것이 충족되면 비로소 이것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은, 아주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언제나 신종 사기 처럼 다가오는 마음이 있다. 나는 그것을 ‘영원한 미루기’라고 부르고 싶다. 이 영원의 고리를 끊으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해야 한다.


이제껏 이토록 많은 인파가 강남 교보문고에 그득한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새해의 위력이다. 나 역시 급히 준비할까 싶은 시험을 위해 들렀다가 읽는 데 가장 수고가 덜해 보이는 참고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차례만 읽고 고이 덮어두었다. 무엇보다도 지금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도저히 제대로 공부에 몰입할 수 없다. 페이지를 넘길라치면 치고 들어오는 고양이의 앞발도 문제다. 심히 공부에 방해가 되는 귀여움이다.


이러저러해서 스터디 카페를 알아보는데 자유석은 아무래도 옆사람의 기침소리나 체취 등 마이크로하게 신경 쓸 일이 생길 것 같아서 공부가 될까 싶다. 고정석이란 것도 있는데 자리가 고정되면 내 옆의 고정석도 고정이기에, 잘못하면 스터디카페의 빌런을 고정적으로 옆에 두게 될까 두렵다. 학창시절 선생님이 공부에도 때가 있다고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새삼 알 것 같다. 차라리 참고서를 매일 한 페이지씩 맨입에 씹어 먹어서 내용을 소화할 수 있다면 그 편이 쉬울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은 미뤘다 하기가 안 되는데 공부, 운동, 청소, 설거지 등은 왜 이렇게 엇박으로 미루게 되는 것일까. 그나마 내가 하는 유일하게 생산적이라 믿고 싶은 일이 고양이의 방해를 피해 메모 어플로 글을 쓰는 일이라니. 그래서 다행이고, 이놈의 글도 영 신통치가 앉아서 언제나 유감이다. 오늘은 조금 더 제대로 써야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치열하게 써야지 해놓고 몇 문단 쓰고 나면 벌써부터 호흡이 딸려서 떡메를 치다가 도망가는 장정처럼 소리소문없이 글쓰기 시간이 끝나고 만다. 더 써서 문제인 걸까, 덜 써서 문제인 걸까. 아니면 애초에 문제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해가 바뀌기 전에도, 해가 바뀌고 난 후에도, 악천후에도 맑게 개인 날에도, 시켜도, 안 시켜도 여전히 조건 없이 하고 있는 무언가에 내 행복의 열쇠가 있다. 일상의 궤도에 공부를 추가하고 싶어서 내 마음 속 ‘제대로 살기 위원장’은 절규하지만 과연 정상 궤도에 진입할지, 과식이나 멍때리기 같은 기존의 위성들과 충돌해 우주 저편으로 사라져버릴지 알 수 없다. 무엇보다 공부를 하기에는 너무 좁다. 나의 도량과 집의 면적, 그리고 통장의 잔고로 끊임없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재물신의 아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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