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로 삼는 순간 달아난다. 불과 어제 나는 매일 쓰고 있다는 얄팍한 위안으로 짧고 성의 없는 글쓰기의 핑계를 대었으나 오늘이 되자 곧장 ‘매일’이라는 성배를 성급히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쓰기까지 거쳐야 하는 마음의 가시밭길이 생기고 만 것이다. 이제 슬슬 하루를 마무리하며 뭔가를 써야 되는데, 오늘 안 쓰면 ‘매일’의 소박한 위업이 무너지고 말 텐데? 아니, 그런데 매일 안 쓰면 죽나?
왜 나는 ‘매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지극히 자기계발적으로 글쓰기에 임하는 나의 마음을 24시간 속에 가두었을까. 새해라는 망령 때문이다. 조상님들의 살뜰한 배려로 신정이 지나면 구정이 찾아오는지라 무너진 결심은 그때 다시 세우면 된다. 그리고 봄이라는 계절은 또 다시 아지랑이처럼 결심을 피워올릴 것이다. 그러나 될까 말까 하면서 착착착 레일을 밟고 정점에 오르기까지 쌓았다 무너뜨리기를 반복한 결심의 열차는 어느 순간 급강하하면서 여름, 가을이라는 혼돈의 트위스트를 추겠지. 그렇게 혼을 쏙 빼놓을 무렵 초겨울의 알싸한 후회처럼 올해도 다 갔구나 하고 내년에 쓸 다이어리를 사고 말겠지.
그러니 이놈의 결심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결심을 말아야 한다. 정말로 소중히 지키고 싶은 것들은 측면돌파로 운명의 감시망을 피해 조용히 추진해야 한다. 지인, 친구에게 말하는 것조차 금물이다. 골키퍼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코를 후비적거리며 득점에 관심이 없는 척 설렁설렁 다가가다가 경기인 줄도 모르게 발을 헛디디며 공을 날려야 한다. 그래도 간신히 들어갈까 말까다.
잊지 말자. 오늘 또 이렇게 글이 망해버린 것은 ‘매일 어쩌고’ 하면서 청교도적으로 살지도 못하면서 오버페이스를 자초했기 때문이다. 나는 쓰기 위해서 쓰지 않을 것이다. 떽. 이런 문장도 열없다. 쓰기 위해 쓰는 게 어때서? 똥을 닦기 위해 매일 닦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