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의 대부분을 사무직 직장인으로 보낸 나에게 몸을 쓰는 일이란 언제나 깔짝거려 보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저지른 일이 김밥집 알바 두 시간 만에 뛰쳐나오기, 편의점 알바 3일, 대형마트 보안 사원 4개월 만에 무단 결근 및 퇴사 등이니 열심히 그 자리에서 일하고 있던 이들을 농락하는 수준으로 산발적이고 간헐적인 일탈을 시도했다가 죄다 시도로 그친 경우가 많다.
핑계도 많다. 설거지 아르바이트는 주방에 왠지 벌레가 많을 것 같아서, 홀 서빙은 반드시 한 번은 음식을 손님의 테이블 위에 쏟을 것 같아서, 택배 정리나 배달 일은 근력과 지구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결국 나는 내 몫의 파티션이 만든 사각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 한글이나 워드, 파워포인트에 갇힌 채 텍스트와의 씨름으로 안도감을 찾았다. ‘역시 이게 내 천직이야’가 아니었다. ‘기어이 다시 이 일로 돌아왔구나’가 맞다. 조금만 노력하고 보통 정도로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언 발에 오줌 누듯 붙들고 있었던 거다.
새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지역 자치센터에서 마련한 줌바 강의가 있어 주문에 걸린 듯 수강권을 끊었다. 또 다시 몸 쓰는 일에 대한 동경의 변형이다. 일을 마치고 미처 운동복을 준비할 사이도 없이 줌바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저층 아파트단지가 대부분인 동네라 죄다 아파트 주민이고 나 홀로 다른 지역에 적을 둔 군살 가득한 이방인이다. 억지 텐션을 올리다 보니 진짜 텐션이 된 강사의 희망찬 외침은 목청이 탁 트여서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나는 모기만 한 소리를 예에- 하고 질러대며 겁도 없이 50분이라는 시간에 내 몸을 헌납했다.
사방이 거울이다. 다들 익숙한 동작인지 곧잘 손과 발, 가슴과 엉덩이를 적재적소에 흔든다. 나는 실시간으로 내 옆태와 앞태, 슬며시 보이는 뒷태를 훔쳐보며 터져나오려는 실소를 참았다. 아직 30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이대로 주춤주춤 출입문쪽으로 이동해 집으로 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의 하중을 견디고 있는 두 발목이 가여웠다. 시계를 여섯 번째쯤 들여다 보았을 때 드디어 종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짐을 챙기는데 강사분이 다가와서 물었다. “괜찮아요?” 괜찮냐니. 내 영혼에 지진이 나고 육체에는 쓰나미가 덮치며 펼쳐진 광란의 엇박을 지켜보며 꽤나 아슬아슬했던 모양이다. 나는체감상 영하의 날씨인데 땀 때문에 한동안 점퍼를 손에 들고 걸었다. 이 몸으로 지하철을 타야 한다니. 중력이 3.5배쯤 낮은 행성으로 도망가고 싶다. 얼마나 오랫동안 내 몸에 녹이 슬어가는 것을 방치했던가. 앞으로도 계속 모를 수 있지 않을까. 원금은 영원히 거치하고 이자만 계속 내는 시스템을 그려본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닌 몸, 적당히 움직이다가 이 푸르른 대지에 반납하면 될 몸. 몸몸몸.
몸이 둔한 것에 대한 이유와 변명은 무한 도돌이표로 썰을 풀 수 있다. 부분 환불을 하면 다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겠지. 동시에 나도 줌바 클래스 안에서 리듬에 몸을 맡기고 정박으로 딱딱 떨어지는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그런 날이 올까. 몸을 쓰고 싶다. 아낌없이 잔고가 0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