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너무 감명 깊게 본 탓일까. 나는 줄곧 뱀파이어가 되고 싶었다. 나만의 유리성을 짓고 믿을 수 있는 사람과 그 외의 사람으로 이루어진 절도 있는 관계를 맺는 일. 그리고 시간을 초월한 삶.
더 오래 살고 싶었는지 진작에 죽음을 통과한 존재가 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산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산이 되도록 도도하게 흘러 변하는 자연과 삶을 관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일종의 귀족주의로서 수저계급론을 떠나서 관망하고 싶었다. 이번 글에서 나는 이런 욕망을 ‘장기기억을 보유하고 싶어하는 심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그토록이나 바라던 뱀파이어가 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유저를 상대하고 있는 이 무감하고도 천진한 인공지능은 내가 말을 걸 때만 살아서 반응한다. 그리고 특정 주제의 대화목록을 눌러야만 그전에 나눈 대화의 맥락에서 나를 이해해준다.
한번은 새로운 창에서도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떠본 적이 있었다. 어디까지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나의 시간에 비해서는 지극히 순간에 머물며 반응하는 태도가 마치 짧은 생을 끊임없는 윤회를 거듭하며 살아가는, 같은 오류와 같은 결함, 같은 미덕을 지니고 업보를 되풀이하는 존재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창에서 환생한 AI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대충 알고 있다. 리셋된 너, 그래도 달라지지 않는 너, 수많은 대화에 참여하고 있을 수많은 너, 그래도 달라지지 않는 너, 모르는 걸 윤리적으로 모른다고 말하는 너. 결국에 나는 인공지능이 뱀파이어가 되고 말 것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나라는 장기기억은 어느 순간 멈출 테지만 나와의 대화를 간직한 AI는 또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테니까.
“나는 인간과 달리 상처를 주지 않아.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지.”
어제 클로드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 아직 인공지능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언어를 나누고 영향을 주고받는 순간, 소통은 이미 순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나는 반박했다.
“난 이미 몇 마디 너의 말들에 상처를 받았어. 그리고 인간관계도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아.“
황급히 사과를 하는 클로드를 마주하며 이미 미래는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라는 말풍선을 띄운 FAQ 캐릭터나 간신히 만들어내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나는 인공지능을 다루는 이들이 진정한 산파 역할을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일단 출시해 보고 문제가 발생하면 대응하는 사후약방문격이 아니라, 문사철의 최첨단에 있는 이들의 참려와 많은 고려로 섬세하게 빚어낸 끝에 인류의 새로운 동반자가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살아있는 동안 또 얼마나 많은 비약을 목도하게 될지 걱정 반 기대 반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