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돈 만 원이 아쉬울 때 마지막으로 해약한 생명보험을 끝으로 나는 이 풍진 보험시장계에서, 그리고 성인병이 도사리는 마흔계에서 완전무결한 무보험자가 되었다. 끽해야 200만 원도 안 되는 휴대폰은 몇 만 원짜리 스킨에 사생활 보호 필름으로 무장을 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내 몸 하나는 땡볕에 나부끼는 빨랫감처럼 그저 무방비로 간수하고 있다.
업그레이드의 끝은 순정이라 했던가. 보험에 있어서는 전혀 통용되는 말이 아닐 터다. 일찍이 실비 보험을 들기도 전에 지병으로 인해 가입의 길이 막힌 터라 어차피 암보험 하나로 버티다가 몇 년 전에 지인의 반 강요로 든 생명보험이었다. 그렇다 보니 지금껏 한 번도 진단서나 영수증을 찍어 보험사 어플로 이렇게 저렇게 환급을 받는 과정을 겪어본 적이 없다.
무보험자는 나 자신을 물가에 둔 아이처럼 살펴야 하기에 참으로 신경 쓸 일이 많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도 볼라드 뒤로 주춤 하고 물러선다. 혹시라도 만취 운전자가 인도로 돌진할 일이 두렵다. 위험은 외부에만 있지 않다. 내 안에 그 어떤 병증이 똬리를 틀고 있지나 않은지 뇌 혈관부터 하지정맥까지 모조리 신경이 쓰인다. 명백히 과체중의 구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혈당도 걱정이다. 길을 가다가 조금 이상한 몸짓과 눈빛으로 걷는 사람을 보면 멀리 피해서 다닌다.
무보험자 생활 3개월차, 피크는 한 달 전쯤 발목에 차오른 물을 정형외과에서 주사기로 빼낼 때였다. 별 생각없이 충격파 치료를 받고 수납을 하는데 두 귀를 의심했다. 결국 동생에게 돈을 빌려서 결제해야 했는데 그 후로는 건강이 곧 재산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에스컬레이터에서 절대 걸어서 내려가지 않는다. 줌바 첫 수업 다음날, 발목 통증이 다시 시작되는 조짐을 느끼고는 바로 환불을 받았다.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내 몸에 보험을 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룻저녁 다이렉트 보험을 알아본 뒤로 오후 무렵이면 어김없이 보험사에서 판촉을 위한 전화가 온다. 그래도 받지 않는다. 새로 가입하는 보험은 꼭 필요한 것이었으면 해서다. 전화를 받는 순간 러쉬 강남점에서 지갑을 털린 사람처럼 이런 보험 저런 보험으로 중무장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이 아슬아슬한 무보험자 생활을 끝내야 하는데 자금 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터널의 끝에 어떤 보장의 빛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나도 언젠가 보험금 청구라는 것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보험사에서 인정하는 아픔을 겪어야 되는데, 그 기준을 맞추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일정 수치 이상의 염세적 생각을 할 때마다 통장에 보험금이 꽂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나는 벌써 본전을 뽑고도 남았을 텐데.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마다 만 원씩 환급되는 그런 보험 어디 없을까.